삼성전자 성과급 논쟁, 무엇이 가려지는가

정혜윤 2026. 4. 30. 06: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재용 얼굴 밟고 기념 촬영" "선 넘었다" "성과급 잔치"

며칠 사이 삼성전자 노조의 5월 총파업 예고를 둘러싼 기사와 논평에서 반복된 표현이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하고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영업이익 10% 지급과 장기보유 주식 패키지를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교섭은 결렬됐다. 본래 이 문제는 숫자를 놓고 협상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논쟁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협상의 언어는 사라지고, 시선은 어느 순간 다른 곳을 향한다. 분배의 기준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화살이 향한다. 정파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익숙한 시선의 이동, 이 글은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치환은 윤리의 언어다. 성과급은 본래 기업이 창출한 이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관한 분배의 문제고, 파업은 그 기준을 둘러싼 정당한 협상 수단이다. 그러나 '성과금 잔치' '귀족노조'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순간, 협상은 도덕적 비난의 용어로 옮겨간다. 노동자의 요구는 더 이상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너무 많이 가져가느냐"의 문제가 된다. 이윤을 함께 만든 주체로서 노동자의 정당한 협상 자격은, 도덕의 심판대에 오른다.

협상의 언어는 사라지고

두 번째 치환은 국가의 언어로 향한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의 핵심이라는 사실과 결합되는 순간, 삼성은 하나의 기업을 넘어 국가경제 그 자체로 호명된다. 노사 갈등은 '국가 리스크'로 번역되고, 기업 내부 분배 문제는 곧바로 공적 부담의 문제로 둔갑한다. 그 결과 노조의 요구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와 억제해야 할 것으로 재규정된다.

두 번의 시선이 옮겨간 끝에 논쟁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이윤 분배의 기준을 다시 묻는 대신, 자본 우위의 기존 질서 유지가 당연한 전제로 자리 잡는다. 화살은 협상 테이블에서 벗어나, 협상을 요구하는 노동자쪽으로 향한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시선의 왜곡이 도덕의 어휘를 거치지 않을 때조차 작동한다는 점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학계와 정책 담론에서 익숙한 개념이 그러하다. 이 개념은 대기업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노동자 사이의 격차를 강조한다. 설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다. 김철식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지적처럼 이중구조론은 격차를 기술할 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진 못한다. 아니, 사실은 정확하게 묘사하지도 못한다. 오늘의 노동시장은 정규직·비정규직의 이분법보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 하청과 재하청, 프리랜서가 겹겹이 얽힌 다층적 분절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중구조라는 말은 문제를 노동자 내부의 분할로 환원한다. '내부자'와 '외부자'의 구도가 강조되는 순간, 격차의 원인은 자연스럽게 노동자 집단 내부의 차이에서 찾게 된다. 그러나 노동시장 분절의 핵심 동인은 내부자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을 외주화하고 불안정화해 온 사용자 전략과 산업 구조에 있다. 일부 노동자가 내부자로 남는 과정조차 그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결과일 뿐이다.

이 환원의 효과는 단순한 설명 부족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과 사용자에 대한 분석이 주변으로 밀려나고, 노동시장 문제는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간 갈등의 문제처럼 이해된다. 그릇된 인식은 대안 역시 납작하게 만든다. 문제가 노동자 내부의 격차와 갈등으로 바뀌는 순간, 논쟁은 자연스럽게 "노조가 무엇을 양보해야 하는가"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으로 뒤바뀐다. 도덕의 어휘가 시선을 노동자쪽으로 돌렸다면, 이중구조론은 같은 일을 더 정교하게 해낸다.

이중구조, 시선의 왜곡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를 보아야 하는가.

첫째, 기업과 자본을 향한 질문을 제대로 제기하자. 지금까지 노조의 태도와 인식은 반복해서 평가되지만, 기업의 지배구조나 원·하청 관계, 이윤 배분 방식에 대한 질문은 쉽게 주변으로 밀려났다. 분명 노조가 하청노동자와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같은 무게로, 어쩌면 더 크게 제기돼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이윤은 누구의 것인가. 삼성전자의 300조원은 1차·2차 협력사, 중소 부품업체, 사내하청과 파견·용역까지 수직으로 늘어선 위계 전체에서 만들어진 이윤이다. 그런데 이윤은 위로만 올라가고, 비용은 아래로만 내려간다. 자본이 위험을 감수했다는 이유로 분배의 최종 권한을 쥐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인가, 합의된 적 없는 전제인가.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위계는 자연스럽게 생긴 것인가, 비용을 떠넘길 자리를 정한 자본의 누적된 선택인가. 그리고 자본은 왜 이 위계를 유지하는가. 원청과 하청을 가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하고, 협상 테이블을 좁게 닫아두는 것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이러한 질문이 먼저 제기되지 않는 한 노조에 '연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공허해지기 쉽다. 노동시장 분절을 만들어온 것은 노동자의 선택이 아니라,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를 통해 비용을 전가해온 기업의 전략과 산업 구조다. 그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노조에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는 일이다.

둘째, 우리가 봐야 할 또 하나는 시간이다. 지금의 논쟁에는 역사가 없다. 삼성은 수십년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왔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위상과 어울리지 않게 전근대적이었던 노사관계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와 이재용의 수감을 거치며 비로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주체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 위에 지금의 노사관계가 이제 막 시작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막 형성되기 시작한 관계를 이미 완성된 기준으로 재단한다.

배제됐던 그들의 협상

노조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는 처음부터 연대적이거나 공익을 지향하는 주체로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각자의 이기적 욕망과 이해관계를 가진 존재이고, 노동자들 역시 그 속에서 때로 충돌하고 결사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공통의 이해를 만들어 왔다. 공익 또한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충돌과 조정 속에서 형성되는 잠정적인 결과에 가깝다. 지난 200년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이러한 역사와 맥락을 지운 채 현재의 요구만 놓고 노동을 평가하면, 비판은 표피에 머물 수밖에 없다. 수십년간 배제돼 왔던 노조가 이제야 협상 테이블에 앉기 시작했음에도, 우리는 그들을 이미 오래된 관계의 한쪽 당사자처럼 다룬다. 어떤 조건 속에서 지금의 요구가 만들어졌는지, 무엇이 쌓여 이 자리까지 왔는지 묻지 않는다. 남는 것은 "얼마를 더 달라고 했는가"라는 단면뿐이다. 그 결과 책임의 방향도 뒤집힌다. 갈등을 낳은 구조와 조건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요구하는 사람들의 태도만 문제로 남는다.

물론 최근 논의에는 한국의 노조가 기업별 시야에 머물며 사회적 연대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충분히 제기될 만한 문제의식이다. 또한 일부 대기업 노조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도덕적 요구로 환원하는 순간 문제는 지나치게 평평해진다.

사회과학이 해야 할 일은 특정 집단의 인식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식이 형성되는 조건과 구조를 해명하는 데 있다. 노조 역시 그 구조와 조건 속에서 형성된 주체다.

그럼에도 어조가 보수언론과 닮아가는 데 머문다면, 변화를 향한 문제제기가 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구조를 향한 분석과 그를 넘어서는 상상력이다. 학자라면 그 구조와 조건을 규명하는 일이고, 활동가라면 이 교착을 어떻게 넘어설지 고민하는 일이다. 도덕과 국가의 언어로 옮겨가던 시선을, 협상 테이블 너머의 구조로 되돌려야 한다. 그 작업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하기를 희망해 본다.

Copyright © Copyright © 2026 매일노동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