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재용 자택 옆 천막농성 전삼노 “우리가 원하는 건 투명성···총수가 결단하라”

박채연·하주언·박민규 기자 2026. 4. 3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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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권없는 사람이 ‘확인해보겠다’고만 해”
하이닉스 사례 들며 이재용 회장 ‘결단’ 촉구
시민 일부는 파업에 거부감 “마음이 복잡”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29일 서울 용산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교섭 진전을 촉구하며 무기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높이 3m 가량의 붉은 외벽을 단풍나무와 소나무, 초록색 덩굴들이 뒤덮고 있는 집이 한 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자택이다.

검은색 대문은 오늘도 굳게 닫혀 있다. 집 옆에 지난 27일부터 모래색 천막 하나가 자리 잡았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총파업을 앞두고 이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세운 천막이다. 고급 저택 옆에 허름한 천막이 더부살이 하는 모습이 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노조원들은 천막에 ‘천막은 투박하지만 우리의 진심은 간절하다’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지난 28일 밤부터 29일까지 천막 농성장을 찾아 이들의 말을 들어봤다. 노조원들은 “우리가 원하는 건 성과급 산정의 투명성 보장”이라고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파업을 앞두고 있다. 전삼노와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삼성전자노조동행 등으로 구성된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올해 사측과 임금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들은 교섭 중단을 선언하고 내달 총파업을 예고했다.

천막에서 만난 전삼노 법률노동부장 A씨는 “매스컴에서 떠드는 ‘성과급 5억4000만원 거부’니 하는 얘기에 동의하나”며 “회사가 이익이 발생했을 때 성과급을 어느 정도 받겠다는 예측이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이 싸움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 집 앞에까지 농성장을 차린 것은 “직접 소통이 문제 해결책”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전날 천막에서 만난 우하경 전삼노 위원장 직무대행은 “교섭에서 결정권자가 없는 사람이 나와 계속 ‘확인해보겠다’ 말만 반복했다”며 “총수인 이 회장이 나와서 결단해달라”고 말했다. A씨도 “지난해 SK하이닉스 성과급을 투명화하는 데도 최태원 회장이 결단이 컸다”고 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29일 서울 용산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교섭 진전을 촉구하며 무기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농성장 근처를 지나는 시민들 일부는 노조 파업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천막을 구경하던 70대 김모씨는 기자에게 “따지고 보면 귀족 노조인데, 월급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이러는 건 잘못된 것 같다”며 “모든 것을 취하려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인근 리움미술관에 온 B씨(64)는 “농성은 본인들 권리지만 마음이 복잡하다”고 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우리 경제를 이끄는 기업”이라며 “내 친구들은 은퇴하고 매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보며 일희일비하는데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농성장에서 만난 노조원들은 “노동자들이 설비 부품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반도체 실적 호황에 걸맞은 성과급 인상 요구가 총파업의 핵심 이슈로 다뤄지는 상황에서 노동 환경 실태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 직무대행은 “24시간 반도체 생산 라인이 쉬지 않기 때문에 명절을 가리지 않고 라인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현장을 지키면서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흥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손가락이 휘는 등 고강도 노동에 처해있다”고 했다.

이날 3일째를 맞은 천막 농성 기간 중 경찰이나 사측과의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전삼노는 “경찰과 소통하며 소음 규제를 맞추는 등 주변과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하주언 기자 eon@kyunghyang.com, 박민규 기자 mingyu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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