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엔진이 AI 서버 돌린다, HD현대 AI 인프라 기업으로... 정기선號의 변신
전력 생산·인프라·유지보수 전단계 기술력
대형 선박을 움직이던 엔진이 데이터센터의 새로운 전력 공급원으로 부상하면서 HD현대그룹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의 수혜를 전방위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전력의 생산(엔진)부터 인프라(변압기·배전), 설치·운영·보수(솔루션)를 폭넓게 아우르는 사업 구조가 부각되면서 HD현대가 데이터센터 밸류체인을 포괄하는 대표 그룹으로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HD현대그룹의 사업은 크게 조선해양(HD한국조선해양·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 에너지(HD현대오일뱅크·HD현대일렉트릭·HD현대에너지솔루션), 기계·로봇(HD현대사이트솔루션·HD건설기계·HD현대로보틱스) 3개 부문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업황 주기가 서로 다른 개별 사업으로 인식됐지만,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3개 부문이 유기적으로 시너지를 내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주 7일·24시간 멈추지 않는 ‘전기 먹는 하마’ 데이터센터의 전력원으로 선박용 엔진이 부상한 덕분이다. 선박용 엔진은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면서 기존 전력원인 가스터빈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HD현대그룹주를 데이터센터 핵심주로 재평가하고 있다. 기폭제가 된 것은 HD현대중공업이 발표한 6271억원 규모의 대형 수주였다. 회사가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 업체에 엔진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가 급등했다. 선박 엔진이 서버실을 돌리는 전력원이 될 수 있다는 소식에 삼성중공업과 한화엔진 등 관련 종목 주가도 덩달아 올랐다.
선박·엔진 MRO(유지·보수·관리) 업체인 HD현대마린솔루션은 최근 실적을 발표하는 기업설명회(IR)에서 중고선이나 바지선을 활용한 ‘부유식 데이터센터(FDC)’에 대한 초기 문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아직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초기 단계라고 하지만, 증권 업계에서는 3년 내 관련 MRO 수요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회사 측은 “FDC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시장의 관심이 확인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LNG FSRU(부유식 저장·재기화 설비), FSU(부유식 저장 설비) 등의 개조 경험을 쌓아온 덕에 FDC의 기술적 제약도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배기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중고선이나 바지선을 활용한 FDC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HD현대마린솔루션의 리트로핏(Retrofit·개조) 역량을 접목할 수 있다”며 “조선업에 데이터센터 훈풍이 불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력·배전기기를 생산하는 HD현대일렉트릭은 데이터센터 급증에 직접 수혜가 나타나고 있는 계열사다. 3년 전 HD현대일렉트릭의 연간 매출액은 2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3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매출액이 4조원, 영업이익이 1조원 규모로 대폭 증가했다.
데이터센터와는 연관이 없어 보이는 HD건설기계도 관련 일감을 확보했다. HD건설기계는 올해 하반기 전북 군산에 새 엔진 공장을 가동할 예정인데, 이 공장에서는 AI 데이터센터용 초대형 엔진을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사업 부문이 AI 데이터센터 사업과 맞닿은 구조가 갖춰지면서 HD현대그룹의 시가총액은 최근 200조원을 돌파했다. 2002년 계열 분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HD현대의 주요 계열사가 전통적인 제조기업을 넘어 인프라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손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HD현대그룹은 데이터센터를 타겟으로 한 핀포인트 전략을 추진 중”이라며 “엔진 기반 온사이트(On-Site·자체 전력 생산·소비) 발전이 가스터빈 공급 부족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발전기에서 시작한 수혜가 전력기기 패키지로 연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그룹 다수 계열사가 데이터센터 수혜로 주가가 급등한 만큼 해당 이슈에 그룹 주가가 한꺼번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세계 경기와 빅테크의 투자 사이클에 따라 데이터센터 증설 속도 조정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데이터센터의 과잉 투자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HD현대가 데이터센터 시대에 맞는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최근 주가가 해당 이슈로 크게 오른 만큼, 실제 수주 확대와 수익성 개선이 이어지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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