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찔이, 채식주의자, 모두가 평화로운 식탁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한겨레 2026. 4. 30. 05: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피터 래빗’(2018년)은 토끼들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식품으로 공격해 논란을 일으켰다. 소니 픽처스 제공

이명석 | 문화비평가

살다 보면 차를 얻어탈 때가 있다. 대부분 불편하지만 때론 환상적인 경험을 얻기도 한다. 언젠가 청평에서 열리는 댄스 행사의 스태프 버스를 얻어 탔다. 멀미가 심한 나는 잠에 빠져들 준비를 했지만, 곧바로 포기해야 했다. 프랑스 밴드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뿜빠라밤빠 집시 재즈를 연주했고 댄스 강사들은 흥겨운 탭 리듬을 더했다. 나 역시 노래를 흥얼대며 미친 듯한 재즈 관광버스를 즐겼는데, 주최자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부탁이 있는데요.”

나의 불협화음이 거슬렸나 했는데 아니었다. “식당 좀 찾아줄래요? 외국 친구 중에 채식주의자가 많네요.” 버스 값, 음악 값을 할 기회가 왔다 싶어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하지만 썰렁한 국도변엔 순댓국, 짬뽕, 삼겹살 따위들…. 그러다 딱 채식인을 위한 식당을 찾았다. 다만 큰 문턱이 있긴 했다.

“오 마이 갓!” 식당에 들어선 외국 친구들은 코를 막으며 소리쳤다. 나는 다급히 말했다. “노 프라블럼, 코리안 치즈!” 잘못된 설명이었지만 의도는 분명히 전달되었다. 내가 추천한 곳은 청국장집이었고 그들의 이런 반응을 살짝 기대하기도 했다. 우리가 외국에 가서 고약한 치즈나 향신료에 괴로워하던 기분을 그들도 느껴주길. 다행히 모두 재즈처럼 열린 마음으로 흥겹게 콩 요리를 즐겼고, 코가 뻥 뚫린 덕분에 더욱 멋진 연주를 했다.

얼마 후, 나는 좀 더 어려운 임무와 맞닥뜨렸다. 행사가 끝난 뒤 외국 댄서들을 위해 경복궁 번개를 했는데, 국적의 다채로움만큼이나 가리는 게 많았다. 다양한 층위의 채식주의자들, 돼지고기를 못 먹는 유대인, 밀가루에 예민한 사람. 다행히 할랄 인증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내겐 확실한 카드가 있었다. “걱정 마. 두부면 다 해결되지.” 아니었다. “미안한데 두부 알레르기가 있어.”

고심 끝에 결정했다. 제일 메뉴가 많은 곳으로 가자. 뭐든 하나씩은 건지겠지. 그래서 시장의 ‘잔치 집’에 갔는데, 뜻밖에 모두가 만족스럽게 한끼를 즐겼다. 제일 인기 있는 메뉴가 도토리묵, 아예 묵을 처음 먹어본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채식하는 친구들이 한국에서 전문 음식점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대부분 너무 비싸서 힘들어했는데 작은 나물 반찬들에 뜻밖의 해답이 있었다며 좋아했다.

겉보기에 나의 식당 찾기 임무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게 지속 가능한 방법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간다. 제각각 ‘못 먹는 음식’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식당들은 어느 정도의 포용성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 나 자신조차 맛있고 맛없고를 떠나, 평범하게 배를 채울 식당을 찾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요즘은 모든 메뉴가 매워져, 마라탕도 맵기 0.5단계로 시키는 나 같은 ‘맵찔이’들은 빠져나갈 틈이 없다.

“한국에 왔으면 김치를 먹어야지. 풋고추도 고추장에 찍어서 먹어요.” 티브이 예능에 나오는 외국인들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입맛을 가진 것으로 사랑받는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 잠깐 여행을 왔다면 문화 체험의 의미로 전혀 취향이 아닌 음식도 도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오래 머물러 사는 사람들에게는 한끼 한끼가 즐거운 선택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사람의 입맛은 변한다. 한국인이 고수 때문에 동남아 음식을 못 먹는다는 이야기도 옛말이다. 아예 ‘고수 사랑해요’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베트남 여행을 간다. 하지만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상황들도 있다. 채소가 싫다는 아이는 어떻게든 설득해 먹여야 하지만, 유전적으로 오이의 쓴맛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에겐 그걸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음식 속에 숨어 있는 약간의 갑각류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지방에서 원어민 교사를 하는 친구가 김밥의 계란을 빼 달라고 했단다. 주인이 “와요? 묵으마 죽습니까?” 무섭게 말하더니 대신 유부를 넣어주더란다. 모두가 모든 걸 잘 먹는 나라는 없다. 그러니 못 먹는다면 흔쾌히 빼거나 바꿔줄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음식만의 문제는 아니다. 배척과 차별이 득세하는 세계, 어떤 신념과 문화가 낯설지라도 존중하며 어우러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