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 멈춘 자리, 로봇이 걷는다"...매연 내뿜던 中 철강공장, 휴머노이드 허브로 [현장]
16년 만에 휴머노이드 산업기지로 재탄생
'산투연동' 기반 국유자본·정부·기업 결합
부품부터 인재까지 묶은 중국식 산업 육성

"여긴 과거 1,300도 쇳물이 흐르던 용광로였지만, 이젠 관람객들이 커피를 즐겨요."
28일 중국 베이징시 스징산구 서우강원 제1용광로 내부. 한때 붉은 쇳물이 끓어오르던 거대한 용광로 내부는 원두를 갈아내는 소리와 커피향으로 가득했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들던 공장은 이제 로봇과 첨단기술을 체험하는 테마파크로 바뀌었다. 매캐한 연기를 내뿜던 굴뚝 아래 공장 건물에는 '로봇 데이터 트레이닝 센터'라는 간판이 새로 붙었다.

서우강그룹은 중국 근대 철강 산업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기업이다. 톈안먼광장에서 16㎞ 떨어진 베이징 서부 공장을 기반으로 중국 대표 철강기업으로 성장했지만, 2005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환경오염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당시 연간 분진 배출량은 1만8,000톤으로 베이징 전체 산업부문 배출량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공장을 허베이성으로 이전하기로 했고, 2010년 12월 마지막 쇳물을 끝으로 가동을 멈췄다.
16년 뒤, 아직 쇳가루가 흩날릴 것 같은 공장지대 도처에는 '휴머노이드', '데이터', '로봇' 같은 '신품질생산력' 관련 표지로 가득하다. 이곳이 지난해 로봇 산업 클러스터로 재탄생하면서다. 약 3만5,000㎡ 면적으로 조성된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기지'에는 현재 3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체화지능, 지능형 인지, 운동 제어, 핵심 부품 등 산업 전반이 모여 있다. 단순 입주 공간이 아니라 연구개발 단계의 소규모 실험부터 양산 직전 파일럿 생산까지 연결하는 중간 허브다.

'로봇손'부터 행동 데이터까지...휴머노이드 산업 총망라
'로봇손' 분야에서 업계 선두권으로 평가받는 '인스로봇'은 입주 기업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 중 하나다. 전 세계 로봇손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는 이 회사는 닝더스다이(CATL), 비야디(BYD) 등 굵직한 중국 기술 기업을 협력사로 두고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붓을 쥔 로봇이 붉은 종이 위에 '복(福)' 자를 쓰고 있었다. 서예처럼 힘 조절과 방향 전환이 필요한 정밀 작업은 사람 손목 움직임과 가장 닮은 동작이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연간 출하량 1만 대를 돌파한 이 로봇손의 대부분은 갤봇 등 중국의 주요 로봇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있다. 천자오위 인스로봇 부총감은 "휴머노이드의 핵심 경쟁력은 보행보다 손"이라며 "정밀 조작 능력이 실제 산업 적용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웃한 '리얼맨 베이징 휴머노이드 데이터 훈련센터'에서는 로봇 108대가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침대 시트를 정리하고, 수건을 접고, 컵을 집어 옮기는 동작이었다. 겉으로 보면 단순 반복 노동처럼 보이지만 실제 목적은 '작업'이 아니라 '학습'이다. 사람이 원격으로 로봇을 조작하면 그 동작 경로와 손목 각도, 힘의 강도, 실패 과정까지 모두 데이터로 기록된다. 이렇게 쌓인 행동 데이터는 다시 인공지능(AI) 학습에 투입된다. 양선휘 리얼맨 솔루션 전문가는 "이곳은 베이징 첫 휴머노이드 데이터 훈련센터"라며 "수집한 8시간 데이터 중 실제 활용 가능한 건 절반 정도지만, 실패한 데이터도 중요한 학습 자산"이라고 말했다.
투자·기술·공간 묶은 ‘산투연동’…중국식 속도전

서우강의 변화는 휴머노이드 산업을 단일 기업 경쟁이 아니라 클러스터로 육성하려는 베이징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핵심 부품 기업과 완성품 로봇 개발 기업, 데이터 훈련센터, 창업 인큐베이터를 한곳에 집적해 개발·학습·투자·상용화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한 것이다.
정부 정책과 국유자본 투자를 큰 축으로 하는 '산투연동(산업+투자 연동)' 방식의 전형적 중국식 산업 육성 모델이다. 단지 내에는 총 507가구 규모의 인재 아파트도 마련돼 있다. 기술과 자본뿐 아니라 사람까지 묶었다. 수빙칭 서우강기금 관계자는 "주차장과 상업시설 같은 실제 생활 공간도 로봇 기업들에 테스트베드로 개방하고 있다"며 "서우강은 산업 육성과 투자 기능을 한 몸처럼 묶어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속도를 붙이는 '폐쇄형 로봇 산업 생태계'를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이혜미 특파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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