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가 '대저택 도련님'이라는 착각… 야생동물 학교가 필요한 이유
동물원 법적 정의 '교육 통한 정보 제공'
현장선 교육은 명분일 뿐, 상업 시설 전락
저질 민간 동물원들 하루빨리 폐업하고
공영동물원은 보호소·배움터 기능해야

2년간 살던 집을 탈출했다 돌아와 일약 스타덤에 오른 늑대 '늑구'에게는 '늑준표'란 별명이 붙었다. 늑구가 지내던 방사장이 축구장 다섯 개 크기란 사실이 알려지자 드라마 '꽃보다 남자' 주인공 구준표에 빗대 부잣집 도련님으로 대하는 것이다. 열흘간 포위망을 피해 떠돌던 늑구에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잡히지 말라"며 응원을 보내던 시민 중 일부도 돌연 도련님의 일탈로 사건을 일축했다.
하지만 늑구는 사실 대저택에 살지 않는다. 늑구가 사는 공영동물원 대전 오월드의 늑대사는 국내 최대 규모 그 면적만 3만3,000㎡, 축구장 네댓 개 크기다. 넓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늑대 20여 마리가 함께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영역동물인 늑대는 하루에 수십㎞를 이동하기에, 한 무리가 살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 이상의 영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 잣대로 동물원을 평가하는 행위는 그래서 위험하다. 늑구 탈출 사건이 동물원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물은 지금이야말로 동물원을 단순 관람의 공간이 아닌 야생동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탈바꿈시킬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의 벗어난 동물원, 불행한 동물들

본래 동물원의 법적 정의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책임이 담겼다. 2017년 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상 동물원은 '야생동물 등을 보전·증식하고 그 생태·습성을 조사·연구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보전, 국민에게 전시·교육을 통해 야생동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 제공하는 시설'이다.
하지만 교육은커녕 관리부터 부실하다. 야생동물 특성을 오롯이 고려하지 않은 환경에 동물들이 버젓이 노출됐고, 스트레스는 동물원 탈출 사고로도 이어졌다. 2023년 3월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해 주택가를 누볐던 얼룩말 '세로'가 대표적이다.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진 고립감과 좁은 우리에서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담장을 넘었다. 같은 해 여름 부경동물원은 경영난을 핑계로 사자 '바람이'를 굶긴 채 방치해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마른 채 구조됐다.
종 보전과 교육을 명분으로 운영되는 동물원을 찾은 아이들이 과연 불행한 동물들을 보고 배울 점이 있을까. 수준 높은 동물복지를 논하기 이전에 기본적인 관리 체계부터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현장에선 관리감독이 허술한 틈을 타 동물을 단순 수익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전국 동물원 121곳 중 96곳(79.3%)을 차지하는 민간 동물원이 더 심각하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지난해 6월 전국 각지의 민간 동물원 6곳의 체험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모든 곳에서 체험용 먹이를 판매하면서 급여량, 구매 횟수 제한을 두지 않았다.
2022년 12월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에는 공중의 오락 또는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만지기나 먹이주기 등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됐지만 교육용은 있으면 예외로 인정해줬다. 정작 종 보전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도 없는 곳이 태반이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민간 동물원 중에선 정말 동물원이라고 부를 수 없는, 야생동물 카페들이 굉장히 많다"며 "동물을 먹이 주고 만지고 체험하는 도구로 보는 상업 시설"이라고 지적했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이슈행동팀장은 "민간 동물원들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 감독에 빈틈이 많다"고 꼬집었다.

비극이 되풀이되는 동안 다행히 시민들의 동물복지 인식은 조금씩 나아져 왔다. 정부도 이런 인식을 반영해 동물원 관리 대책을 주기적으로 내놓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늑구 사태를 계기로 22일 발표한 동물원 대책에서 동물원 허가제의 유예 시한을 1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다만 동물단체들은 "부실 시설을 걸러내기보다 제도권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기후부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동물원들은 퇴출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마지막 숙명은 '오갈 데 없는 동물 쉼터'

동물권 단체들은 "우선 상태가 안 좋은 민간 동물원들부터 문 닫게 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자유연대,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등 9개 동물권 단체는 24일 공동 성명을 내고 "민영 동물원은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공영 동물원은 전문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원 폐쇄 이후 오갈 곳 없는 동물들을 돌보는 데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영 동물원은 야생동물 보호 시설과 교육기관으로 기능을 전환할 때 비로소 공적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이런 개념이 생크추어리(sanctuary·인간에게 붙잡히거나 구조된 야생동물들이 자연사할 때까지 여생을 보내거나 재활을 돕는 시설)다. 생크추어리에서도 동물을 구경할 수는 있다. 대신에 관람객들에게 '왜 이 야생동물이 여기 갇혀 있는지' 등을 설명해준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선례는 있다. 청주동물원은 농장에서 구조된 사육 곰들을 보호하고 있다. 동물복지 동물원을 지향하는 이 동물원은 콘크리트 바닥, 철조망 같은 인공적인 구조물을 걷어내고 나무 그늘이나 동굴 등 동물들이 살던 환경을 최대한 재현해내고 있다. 보유 동물종은 68종, 개체 수는 296마리로 다른 동물원에 비해 적은 편인데, 동물들이 좁은 곳에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쾌적하게 생활하도록 하는 차원이다.

해외에선 이런 생크추어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일찌감치 종별로 사육 환경 깐깐하게 설정해 종 보전 공간으로 기능을 전환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 동물원에선 동물원을 뜻하는 'zoo' 대신 '언주(unzoo)'라는 개념을 앞세우고 있다. 울타리 안에 동물을 전시하는 전통적 개념을 뒤집고 지역에 서식하는 야생동식물을 관찰한다.
당장의 과제는 예산과 인력이다. 정부 방침에 따라 2028년 초 무허가 동물원들이 줄폐업하면 해당 시설에 살던 동물들이 옮겨갈 보호시설을 더 지어야 한다. 돈도 돈이지만 동물원 품질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인 전문가 풀도 부족하다. 노주희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사육사 월급과 복지가 좋은 편이 아니고 정신적, 육체적 부담도 커 금방 그만둔다"며 유인책을 주문했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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