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영의 칸타빌레] 쫓기듯 사는 일상 때로는 느긋하게 … 삶을 위로하는 선율
차이콥스키 현악 사중주 ‘안단테 칸타빌레’
벽난로 수리공이 부른 노래서 영감받아 작곡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 눈물 흘린 일화 유명
1악장 에너지 넘치고 박력있는 종결구와 달리
2악장의 바이올린 처연한 멜로디 독보적 인기
‘멜랑콜리’ 음악적 특징 가장 돋보이는 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Andante cantabile’는 음악 나타냄말로, 직역하자면 ‘느리게 노래하듯이’다. 여기에서 ‘느리게’는 숫자적인 의미의 느림도 해당하지만 ‘여유롭게’라는 뜻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많은 작곡가가 작품에 ‘안단테 칸타빌레’를 사용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번과 10번의 2악장,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대공’의 3악장, 슈만 피아노 사중주 Op.47, 3악장 등 주옥같이 아름다운 음악이 많다. 그중에서도 ‘안단테 칸타빌레’가 단순한 나타냄말이 아닌 곡명처럼 사용되는 유명한 곡을 들어보자.

전체 4악장 구성으로 1악장은 11분, 2악장은 7분, 3악장은 4분, 4악장은 7분 정도의 길이인데, 차이콥스키 음악치고는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작곡가들은 악장별로 빠르기말이나 악상 지시어를 표기하는데, 2악장에 명시된 지시어가 바로 ‘안단테 칸타빌레’다. ‘안단테 칸타빌레’하면 많은 이들이 차이콥스키 현악 4중주 1번 2악장을 떠올린다.
차이콥스키는 두 살 어린 여동생 샤샤(알렉산드라의 애칭)와 사이가 매우 좋아서 그녀가 결혼해서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카멘카 시골 별장을 자주 찾았다. 현악 사중주 1번의 2악장의 멜로디는 1869년 카멘카의 별장에서 페치카(벽난로) 수리공이 부르는 노래에 영감받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바냐는 긴 의자에 앉아 술잔에 럼주를 가득 따른다. 술잔이 절반도 채워지기 전에 벌써 예카테리나를 그리워한다…”라는 가사다. 이 곡에는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의 일화도 유명한데, 같은 러시아 정서를 가져서인지 1876년 12월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른 톨스토이가 이 곡을 듣고 눈물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차이콥스키는 광산촌의 감독관인 아버지 일리야와 그와 재혼한 프랑스계 여덟 살 연하의 여인 알렉산드라 차이콥스카야 사이에서 태어난 예민한 아이였다. 차이콥스키는 여섯 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유난히 쌍둥이 형제인 아나톨리와 모데스트, 엄마보다 더 다정했던 여동생 샤샤와 친했다. 차이콥스키가 태어난 1840년에는 집안이 매우 부유했고, 프랑스인 유모 파니의 손에서 자랐다. 엄마는 독일어와 프랑스에 능통했고, 유모 또한 프랑스인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여러 언어에 노출되어, 후에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 작곡가하면 차이콥스키나 라흐마니노프 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1672~1725) 이전에는 엄격한 정교회의 영향을 받아 세속 음악과는 거리가 있었고, 18세기부터 차츰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가를 받아들이며 유럽 음악을 적용했다. 러시아 전통음악을 세속 음악 영역에 접목시킨 최초의 작곡가 글린카 (1804~1857)를 비롯해, 발라키레프(1837~1910)와 림스키-코르사코프(1844~1908), 무소륵스키(1839~1881), 보로딘(1833~1887), 큐이(1835~1918)로 구성된 ‘러시아 5인조(The Mighty Five)’도 있다. 이후 안톤과 니콜라이 루빈시테인 형제가 설립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의 음악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차이콥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출신이고 라흐마니노프는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이다.

1악장은 당김음을 사용한 주제 멜로디가 흐르고, 장식적인 리듬이 빈번하게 등장하면서 에너지 넘치고 박력 있는 종결구로 마친다. 2악장은 1악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러시아 민요를 바탕으로 한 1주제와 첼로가 함께하는 2주제가 반음계 음형으로 반복되다가 바이올린의 슬픈 선율로 조용히 곡을 마친다. 전체 184마디의 2악장 중 54마디부터 첼로가 피치카토(음을 튕기며 연주)를 사용하며 베이스를 받쳐주면 바이올린 멜로디가 처연하게 울리는데, 유난히 이 부분을 좋아하는 마니아가 많다. 2악장은 멜랑콜리로 대표되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적 특징이 가장 돋보이는 악장이다. 짧은 3악장은 열정이 가득한 경쾌함이 느껴지고, 4악장은 ‘알레그로 비바체’ 빠르기말처럼 격렬한 악상이 진행된다.
차이콥스키의 삶은 드라마 같은 예술가의 삶 자체였다. 성소수자로서 사회에서는 꺼내지 못할 비밀을 간직해야 했고,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36살부터 자신의 영혼의 동반자라 불리는 미망인 폰 메크 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속내를 드러낼 수 있었지만 이듬해인 37살에 그에게 집착했던 제자 밀류코바와 억지 결혼을 하며 우울증이 심해졌다. 슬픔과 걱정을 마일리지처럼 쌓아두지 않고 여유롭게 노래하듯이 흘려보냈다면, 마지막에 스스로 세상과 이별하는 불행을 겪지 않았을 텐데. 죽은 예술가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어본다.
차이콥스키 현악 사중주 1번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에 비해 유명하진 않지만,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만큼은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숨 쉴 틈 없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느긋하고 차분하게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피아니스트·아트 앤 소울 대표
▲독일 쾰른 국립음대 전문연주자과정 졸업·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최고전문연주자과정 졸업
▲저서 ‘365일 클래식이라는 습관’ ‘네 인생에 클래식이 있길 바래’ ‘연표로 보는 서양음악사’ 등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전남도교육연수원 등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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