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9·11 때 나토 함께 대응”… 대서양 동맹 흔든 트럼프 비판

2022년 즉위 후 부부 동반으로 첫 미국 국빈 방문에 나선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8일 연방의회에서 연설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최 만찬에 참석했다. 찰스 3세는 미국 건국 250주년을 축하하면서 미국과 유럽 간 대서양 동맹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식민 통치 세력과 독립 세력으로 충돌했던 두 나라의 역사를 소재로 두 나라의 우정을 강조하고, 트럼프의 일방적 외교 노선을 우회적으로 나무랐다. 만찬장에서는 영국식 유머를 잇따라 구사해 좌중을 사로잡았다. 이번 국빈 방미는 이란 전쟁 참전 문제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와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행정부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진행돼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렸다.
◇찰스 3세, 美 의회서 대서양 파트너십 역설
찰스 3세는 이날 영국 국왕으로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 이후 35년 만에 워싱턴 의사당에서 연설했다. 연설의 상당 부분은 두 나라가 주축인 동맹의 중요성에 할애됐다. 그는 올해가 9·11 테러 25주년임을 부각시키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9·11 직후 나토는 집단방위 조항 5조를 발동하고 함께 대응했다”면서 “양국은 한 세기가 넘도록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기,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고 했다. 이어 “그와 같은 굳은 결의가 우크라이나 방어에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안보 무임승차론을 펴며 나토 탈퇴를 주장해 온 트럼프 노선을 겨냥한 것으로도 풀이됐다.
찰스 3세는 나토뿐 아니라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의 3국 안보 동맹체)까지 언급하면서 “내가 군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호주와의 협력 속에 이루어지는 역사상 가장 야심 찬 잠수함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찰스 3세는 미국 주민들이 영국 식민지 통치 세력을 상대로 저항하며 내걸었던 구호 ‘대표 없이 과세 없다’를 언급하며 “한편으로는 우리 사이의 근본적 의견 차이였지만 동시에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물려받은 공통의 민주적 가치”라고 했다. 이어 “우리의 동반자 관계는 분쟁에서 태어났지만 그로 인해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찰스 3세는 미 연방대법원이 ‘마그나 카르타(영국 대헌장)’를 160차례 이상 판례에 인용한 점을 들며 “무엇보다 행정권이 견제와 균형의 대상이라는 원칙의 기초”라고 강조했다. 이때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쳤다. 그는 “우리 두 나라는 250년 전의 깊은 분열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동맹을 만들어냈다”며 “우리 동맹이 유럽과 영연방, 그리고 전 세계의 동반자들과 함께 공동 가치를 계속 수호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고 했다. 트럼프의 일방적이고 고립주의적인 통치 스타일의 변화를 촉구한 것으로 읽혔다. 찰스 3세는 지난 25일 워싱턴 DC 힐턴호텔에서 있었던 암살 미수 사건도 언급하면서 “여러분 나라의 지도자를 해치려 더 큰 공포와 분열을 조장하려 했다. 그러한 폭력 행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영국인보다 가까운 친구 없어”
1기 취임 때부터 영국 왕실에 대해 여러 차례 호감을 피력해 온 트럼프는 찰스 3세 부부를 환대했다. 백악관 국빈 환영식에서 “미국인들에게 영국인보다 더 가까운 친구는 없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같은 가치를 지향한다”고 했다. 특히 스코틀랜드 출신인 작고한 모친을 언급하며 “어머니가 젊은 시절 찰스 국왕을 보며 ‘너무 멋지다’고 했다. 내 어머니는 찰스에게 반했었다”고 했다.
국빈 환영 만찬에서는 찰스 3세의 ‘영국식 유머’가 빛을 발했다. 앞서 트럼프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유럽 동맹을 겨냥해 “미국이 없었다면 유럽은 독일어와 약간의 일본어를 쓰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참전이 없었으면 독일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 승리해 유럽을 지배했을 것이라고 조롱한 것이다. 찰스 3세는 당시 발언을 소환하면서 “감히 말씀드리자면, 우리(영국)가 없었다면 여러분(미국)은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 과정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몰아냈기에 지금의 미국이 있다는 ‘뼈 있는 농담’이었다.

찰스 3세는 트럼프가 2기 취임 후 근사한 연회장을 짓겠다며 백악관 건물 일부를 철거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유감스럽게도 우리 영국도 1814년에 백악관 재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했다. 찰스가 말한 ‘재개발’이란 영국군이 백악관에 불을 지른 일을 말한다. 이날 만찬에는 밀가루를 입힌 프랑스식 생선 요리 ‘솔 뫼니에르’와 백악관에서 직접 기른 허브를 곁들인 라비올리(이탈리아식 만두) 등이 올랐는데, 찰스 3세는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 메뉴가 훨씬 좋아졌다”고 말해 만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보스턴 티 파티는 미국 식민 세력이 영국에 저항하며 독립전쟁 도화선이 된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의 현지 명칭이다. ‘party’가 ‘무리, 집단’이라는 뜻 외에 ‘잔치’ ‘파티’라는 뜻도 있는 걸 활용한 언어유희였다.
찰스 3세는 백악관 집무실에 있는 ‘결단의 책상’의 1879년 설계 도면 복제본을 건넸고, 트럼프는 1785년 존 애덤스 전 대통령이 조지 3세 영국 국왕과 만나 우호적 관계에 합의했다는 내용의 서신 사본으로 화답했다. 찰스 3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영국 잠수함 ‘트럼프호’의 종도 선물했다. 커밀라 왕비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에게 영국 왕실 보석 공급업체가 제작한 브로치를 선물했고, 멜라니아 여사는 은 티스푼 세트와 백악관 벌꿀로 화답했다.
한편 백악관은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트럼프와 찰스 3세가 함께한 국빈 환영식 사진을 올리고 “두 명의 왕”이라는 문구를 달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최근 미국 내에서 트럼프의 무소불위 권력 행사를 비판하는 ‘왕은 없다(No Kings)’ 시위가 벌어지는 와중에 트럼프를 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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