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만난 ‘알파고 아버지’… “서울, AI시대 서막 연 곳”
‘세기의 대결' 10년 만에 재회

“서울은 제게 늘 특별한 의미를 갖는 도시입니다.”
29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 이날 열린 ‘구글 포 코리아 2026’의 특별 연사로 무대에 나타난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49)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내게 있어 서울은 지금의 인공지능(AI) 시대의 시작을 알린 곳”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2016년 테크계는 물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이 오늘날 폭발적인 AI 발전의 시초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10년 전 대국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기술 발전 속도만 보면 마치 그 후로 100년이 흐른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며 “알파고는 이 세상에 나타난 첫 AI에이전트라 할 수 있는데, 이제는 다양한 AI에이전트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협업하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허사비스가 한국을 찾은 것은 역사적인 대국 후 이번이 처음이다.
13세에 세계 유소년 체스 랭킹 2위에 오르며 ‘체스 신동’으로 불렸던 허사비스는 게임 개발자로 시작해 2010년 딥마인드를 창업하며 AI 연구에 뛰어들었다. 2014년 딥마인드가 구글에 인수되면서, 자연스럽게 허사비스는 구글의 AI 사업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2020년 현대 생물학의 난제인 단백질 3차원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하는 AI ‘알파폴드’로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이 공로로 2024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허사비스 지휘 아래 딥마인드는 구글의 AI 모델 ‘제미나이’부터 로보틱스·기상 예측·수학 난제 해결 등 여러 방면에서 AI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허사비스는 이날 “알파폴드는 AI가 과학과 의학계에 가져올 혜택의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 10~20년 안에 AI가 모든 질병을 정복하고, 환경·에너지·우주 등 분야에서 놀라운 기술 돌파를 이뤄낼 것”이라고 했다. 지난 27일 이재명 대통령과 접견에서 “5년 안에 범용 인공지능(AGI)이 실현될 것”이라 예측했던 그는 이날 “AGI는 산업혁명보다 10배 큰 규모로 혁신의 전환점이 될 것이며, 인류를 또 다른 번영으로 이끄는 르네상스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허사비스는 ‘아이들을 AI 시대에 준비된 인재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전통적인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과목들에 매진할 것을 추천한다”며 “이공계 학문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만 AI를 더 잘 지휘하고, 정확히 명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부터 AI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는 것 역시 도움이 될 것”이라며 “AI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만큼, 직접 부딪히고 사용해본 아이들은 비즈니스와 제품을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날 무대에는 이세돌 9단이 직접 올라 ‘알파고 10년’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나름 창의적인 바둑을 두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AI로 우리는 엄청난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데, AI가 협업 대상이 아닌 생각의 주도권을 뺏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허사비스는 신진서 9단과 기념 대국도 가졌다. 허사비스는 흑을, 신 9단은 백을 잡았다. 허사비스는 알파고 개발을 위해 바둑 원리를 깊게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허사비스는 AI가 주로 취하는 공격법(삼삼 침입법)을 썼고, 신 9단은 10년 전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가진 2국에서 기계적 틀을 깨고 AI의 창의력을 증명했던 37수와 비슷한 수법으로 응수했다. 10분으로 제한된 대국은 29수 만에 마무리됐다. 허사비스는 “10년 전 37수가 준 영감으로 AI가 발전했다”며 “10년 뒤 다시 서울을 방문했을 땐 AI로 개발한 암 치료제를 축하하러 오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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