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들이 세 여자를 강간했어”…‘그의 어머니’라는 교수대

고승희 2026. 4. 3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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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그의 어머니’, 진서연 주연
삭제된 대사, 더 깊어진 심연 속으로
155분간의 밀도 높은 심리 추적극
‘그의 어머니’ 진서연 [국립극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풍경. ‘워킹맘’ 브렌다와 열두 살 둘째 아들 제이슨은 등교 전쟁 중이다. 게임기를 손에 쥔 채 ‘레벨업’을 자랑하고, 오믈렛에 곁들인 케첩을 찾는다. 큰아들 매튜는 가택연금 중이다. “학교 늦는다”고 채근하는 엄마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투정하는 들째. 제이슨은 “사람들이 무섭다”며 짜증섞인 목소리로 가까스로 집 밖으로 나서는 아들을 향해 좀비떼처럼 카메라가 달려든다. 아들의 등을 떠밀고, 브렌다는 문 뒤로 숨어버린다.

“네 아들이 하룻밤에 여학생 셋을 강간했어.” (변호사 로버트의 대사)

그날 이후 일상은 파괴됐다. 등 뒤로 들려오는 신경질적인 카메라 셔터 소리가 브렌다를 압박한다. 가까스로 정신의 조각들을 붙잡아 두지만, 널뛰기하는 감정은 다잡을 수가 없다. 모성은 징그럽다. 맹목적 사랑과 실존적 혐오가 공존하며 기괴한 얼굴을 하고 있다. 브렌다는 성폭행범이 된 큰 아들 매튜가 끔찍해 화가 치밀다가도, “내가 얘를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냐”고 한다. 그러다가도 이내 “내 안에 남은 건 증오밖에 없다”고 절규한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2주가 무대 위에서 낱낱이 까발려진다.

영국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의 ‘그의 어머니(Mother of Him)’(5월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가 돌아왔다. 지난달 16일 개막한 연극은 배우 진서연을 새로운 ‘그의 어머니’로 맞았다.

하룻밤 사이에 세 여성을 강간한 17세 아들을 둔 어머니 브렌다의 2주를 다룬 이 희곡은 2010년 런던 초연 이후 에반 플레이시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한국을 찾은 플레이시 작가는 “토론토의 겨울, 유대인 가족이라는 원작 설정과 전혀 다른 한국에서 작품의 정수가 완벽하게 포착됐다는 점에 감동하였다”며 “연극이 문화적 배경과 차이를 넘어 상호 이해의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감탄했다.

‘그의 어머니’는 에반 플레이시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은 2010년 이후 그가 일관되게 관심을 가져온 주제의 출발점이다. 그는 이후 감옥에서 태어난 소녀를 다룬 ‘할로웨이 존스(Holloway Jones)’(2011),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다룬 ‘프로노운(Pronoun)’ (2014),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라이퍼스(Lifers)’(2025)까지 “사회가 잊고 싶어하고 밀어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

‘그의 어머니’ 홍성우, 류주연 연출가, 에반 플레이시 작가, 진서연 [국립극단 제공]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의 이야기는 ‘피해자 서사’에서 벗어나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 혹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탐구한다는 점이다. ‘그의 어머니’는 플레이시 작가의 이웃에게 벌어진 일을 희곡으로 옮겼다.

그는 “이 사건을 접한 뒤 누구에게나, 누구의 지인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우리는 피해자 이야기는 굉장히 잘 알고 있지만, 가해자와 가해자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모른다. 그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는 사회가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들, 손가락질받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가해자들의 삶’을 들춰냈다. 교도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범죄자들의 교화를 도운 경험 역시 작가로서 특정 인물들에 천착하게 한 계기였다.

그는 “교도소에서 일하면서 ‘우리는 범죄와 인간을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해야만 했다”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재활에 관해 내가 믿는다고 주장하는 이상과 실제로 그들을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 사이의 간극을 직면하게 했다. 거기엔 쉬운 답이 없었고, 바로 그것이 내 희곡의 극적 질문들에 동력을 줬다”고 말했다. 이때의 경험이 ‘라이퍼스’로 이어졌다. 플레이시는 “사회가 소외시킨 이들을 어떻게 교화하고, 사회가 공감대를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관객도 배우도 힘든 작품이다. 작가는 적당한 ‘거리두기’와 ‘공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인간과 그의 가족을 다루며 관객을 사유의 터널로 밀어 넣는다.

류주연 연출가는 “우리 사회가 가해자에 대해선 예민한 면이 있다. 이 작품이 가해자의 상황을 변명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었다”며 “그러나 예술의 역할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가해자는 나쁘다’는 쉬운 결론이 아닌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우리가 괴물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있다. 이 작품이 그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무대에 올릴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 [국립극단 제공]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초연 때와는 달라졌다. 초연 당시엔 브렌다의 심리와 서사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가해자 가족의 달라진 삶을 들여다본다. 류 연출가는 “작년엔 가해자 서사의 위험성을 경계하며 어머니 브렌다의 심리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산산조각 난 가해자 가족의 일상과 범죄의 무게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 작품을 통해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진서연은 영화 ‘독전’, 예능 프로그램 ‘무쇠소년단’에 이어 이 무대를 역대 3번째로 어려운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힘들 줄은 알았는데 상상보다 더 힘들다. 브렌다는 정말 와닿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다”며 “굉장히 미숙하고 완벽하지 않은 이 여자에 대해 끊임없이 양가감정을 가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브렌다라는 인물은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와닿는다”고 했다.

진서연이 연기하는 브렌다는 감정의 진폭이 크다. 매일이 전쟁이다. 그의 변화무쌍한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 역시 155분간 이 사건의 가해자 가족이 된 것처럼 진이 빠진다.

브렌다의 애초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 아들의 형량을 줄이는 것, 망가진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나 연극은 ‘그의 어머니’에게 돌팔매질할 수 없는 상황을 던지고, 심리를 그려간다. 몸부림치는 엄마에게 “내가 (여학생들의 방에) 침입하자고 했다”며 소리를 지르는 큰아들, ADHD 증상이 나날이 극심해지는 둘째 아들 사이에서 브렌다는 출구를 찾지 못한다. 아들이 세 여자에게 했던 것처럼 언론과 호사가들은 브렌다의 내면을 무차별적으로 난도질한다. 결국 브렌다는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며 스스로 유린당하기를 결정한다.

주인공이 여성이고, 제목이 ‘그의 어머니’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같은 여성이기에 느끼는 분노와 증오, 어머니이기에 가지는 모성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그의 아버지’와는 다른 층위의 의미가 만들어진다. 플레이시 작가는 “언론이 매튜를 ‘괴물’로 규정하며 브렌다는 자동으로 ‘괴물의 어머니’가 된다. 동시에 그녀의 이름과 개인성은 완전히 지워지고 ‘그의 어머니’로만 환원된다”고 했다. 변호사 역을 맡은 배우 홍선우는 이에 대해 “현대 사회에서 성모마리아 같은 어머니 역할의 불가능성”을 드러낸다고 해석했다.

‘그의 어머니’ [국립극단 제공]

브렌다는 때론 이기적이고, 때론 냉정하다. 분노에 몸서리치다 자기합리화와 절망에 빠져 허덕인다. 진서연은 가해자 가족의 상황을 피해자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썼다. 그는 “스스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악다구니를 잡으면서도 이성적으로 바라보되 과격하고 폭풍 같은 감정들을 유지하며 연기하고 있다”고 했다. 대본에서 “나는 내 아들의 일부를 잃었고 그녀는 딸의 일부를 잃었다”는 대사를 재연 무대에서 삭제한 것도 가해자와 피해자 엄마의 심정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초연 당시 반응에 따른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굳이 들여다볼 이유가 없는 사람들의 서사를 통해 관객에게 고통스러운 사유를 안긴다. 플레이시는 “작가로서 비슷한 주제에 천착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도 있는데, 늘 양가감정을 느끼는 주제를 다뤄온 것 같다”며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는 마음을 주는 것이 결국 연극의 역할이다. 막을 내리는 순간, 사유와 성찰을 촉발하는 작품이 연극의 본질”이라고 했다.

무대는 우리에게 ‘이해 불가능성과의 대면’을 그리지만, 그 어떤 답은 주지 않는다.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며 윤리적 딜레마를 직면하게 하고, 관객 스스로 이해와 용인 사이의 차이를 찾아가도록 간다. 결국 공존은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이해 불가능함을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지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룻밤 새에 세 여학생을 강간한 아들의 어머니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아니 돌을 던져도 될까. 그 돌을 다 맞아낸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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