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을 만나다] 4. 박상욱 항공기 정비·제작 명장

김혜정 2026. 4. 3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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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입대 34년 항공기 정비 인생 시작
진급 좌절이 곧 전환점 ‘ 위기를 기회로’
야간 대학 진학·교관 지원, 끝없는 배움
현장 떠나 교단서 후배들에 ‘신뢰’ 전수
내 손 끝에 달린 누군가의 안전
기술자는 책임감 잊어선 안 돼
사람이 남아야 산업도 살아
인재양성·정주환경 개선 필요

거침없는 활주 돕던 정비 베테랑, 꿈의 완주 설계자 되다

박상욱 명장이 수리온 헬기 앞에서 조종사 실기시험 감독 업무를 수행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군에서 34년간 군복을 입고 항공기 정비·제작 현장을 지켜온 박상욱 강원도 명장은 이제 교육자의 이름으로 인생 2막을 열고 있다. 작은 실수 하나가 곧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항공기 정비 현장에서 박 명장은 ‘신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동료간의 신뢰, 스스로의 기술에 대한 신뢰, 그리고 정비를 마친 항공기를 타는 조종사와 승객의 신뢰까지 박 명장은 “항공기 정비는 결국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라며 “기술자는 자신의 손 끝에 누군가의 안전이 달려있다는 책임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명장이 항공기 정비 분야에 발을 들인 계기는 군입대였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진학 대신 군인의 길을 택했고, 공군에서 항공기 정비·제작 특기를 접했다. 특성화고에서 배운 기계 기능과 연결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반복되는 훈련과 고된 작업, 작은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현장은 그를 군인이자 기술인으로 단련 시켰다.

박 명장의 기술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순간은 뜻밖에도 좌절이었다. 진급 탈락을 겪으며 제대를 고민할 정도로 흔들렸지만, 그 경험은 오히려 배움으로 향하는 계기가 됐다. 군 복무 중 야간대학에 진학했고, 선배들의 격려와 상사의 배려 속에서 부족함을 채워 나갔다. 이후 작업반장을 맡게 된 그는 또 한 번 자신을 돌아봤다. 작업 지시 과정에서 전달과 표현이 미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박 명장은 “문제를 반원들에게서 찾기보다 제 자신에게서 찾았다”며 “더 배우고 경험을 넓혀야 겠다는 생각에 공군 교육사 교관에 지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교관 생활은 쉽지 않았다. 낮에는 가르치고 밤에는 직무를 연구했다. 기술을 아는 것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박 명장은 이 시간을 통해 ‘다시 배우는 자세’를 익혔다. 특히 박 명장은 항공기 정비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비우는 자세’를 꼽는다. 오래 반복한 작업일수록 매뉴얼을 외웠다는 착각이 생기고, 그 착각이 절차 누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은 망각의 존재”라며 “내가 다 안다는 오만을 버리고, 항상 매뉴얼을 곁에 두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현장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성능개량 개조 작업이다. 제작사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뒤 박 명장이 속한 작업반이 단독으로 수행해야 했던 임무였다. 초기에는 일정에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잦은 공연 요청으로 변수가 생기며 기한을 맞추기 위한 압박이 커졌다. 반원들의 헌신적인 참여 끝에 약 1년 6개월에 걸친 작업을 무사히 마쳤고, 이후 블랙이글스가 영국 리아트 에어쇼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큰 보람으로 남았다.

박 명장은 “그 성과는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함께 고생한 반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지금도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박 명장에게 항공기 정비는 혼자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정비 현장은 팀워크와 소통이 생명이다. 그는 “비판이 없는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무조건적인 ‘YES’ 보다 필요한 순간 정확히 문제를 제기하고, 서로 확인하며 보완하는 조직이 안전을 만든다는 것이다. 수차례 확인하고, 다시 점검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번거로워 보일 수 있지만 항공기 정비에서는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원칙이다.
박상욱 항공기정비 명장이 2024 숙련기술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근정포장을 수상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항공기 정비·제작 분야의 사회적 역할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대한민국은 첨단 항공기를 자체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국가로 성장했고, 항공기 수출도 확대되고 있다. 이와함께 항공 MRO, 즉 정비·수리·오버홀 산업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항공기를 안전하게 운항하기 위한 모든 기술 활동이 이 분야에 포함된다. 박 명장은 “항공MRO는 일자리 창출과 기술 수출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산업”이라며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분야”라고 설명했다.

기술 변화도 빠르다. 박 명장은 최근 항공산업의 흐름으로 UAM, 즉 도심항공교통과 유인 드론의 상용화를 주목한다. 도심 교통체증을 완화할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하늘길이 대중교통화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첨단 장비와 자동화 기술이 확대돼도 숙련 기술자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본다. 자동화는 효율적이지만 예상치 못한 결함과 복합적인 상황을 모두 대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생명과 직결된 분야일수록 자동화를 검증하고 책임지는 숙련 기술자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지역 항공산업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과제로는 실무 중심 교육 인프라, 지역 산업과의 연계, 지속적인 인력 양성 체계, 정주 여건 개선을 꼽았다. 기술인재가 지역에서 배우고,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교육과 산업, 생활 환경이 함께 움직일 때 지역 항공산업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명장이 세한대학교 항공정비실습실에서 학생들에게 항공기 엔진 구조와 정비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후배 기술인과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조직에 선택받기보다 조직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돼라”는 것이다. 박 명장은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꾸준함과 책임감이 결국 기술인의 경쟁력을 만든다는 믿음 때문이다. 교육자로서도 그는 기술을 혼자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확인하는 태도를 중시한다. 사람마다 능력은 다르지만, 그 다양성이 모일 때 더 큰 시너지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에서다.

현장 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봤다. 여전히 기술직은 ‘힘든 일’이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고, 초·중학교 시기부터 대학 진학 중심의 진로 선택이 당연한 경로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적성을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채 대학에 진학했다가 학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직업에 대한 인식과 진로교육 체계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일정 기간 다양한 직업을 경험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박 명장이 대학원 졸업식에서 전공수석 수상증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 명장에게 가족은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잦은 야근과 자기계발, 주말 교육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묵묵히 곁을 지켰다. 강릉에서 천안까지 교육을 받으러 다니던 시절, 어린 아이를 데리고 배웅해주던 아내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역을 앞두고는 예상치 못한 시련도 겪었다. 체력검정 과정에서 이상을 느껴 정밀검사를 받았고, 기관지 영구장애 진단을 받았다. 군인에게 체력은 생명과도 같았기에 깊은 고민 끝에 조기 전역을 선택했다. 전역식도 사양했다. 건강하지 않은 모습으로 후배들 앞에 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명장은 멈추지 않았다. 전직 교육을 받으며 휴식을 취했고, 이후 폴리텍대학 시간강사 제안을 받아 실습 위주 교육에 도전했다. 4개월간 학생들을 지도하며 자신감을 되찾았고, 현재는 세한대학교 항공정비학과에서 예비 항공정비사들을 가르치고 있다. 박 명장은 지금의 삶을 “행복하다”고 표현했다.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고, 후배들이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길을 만드는 일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 ‘명장’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그는 성취보다 책임을 먼저 말한다. 박 명장은 “명장은 기술 축적의 끝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라며 “앞으로도 기술뿐 아니라 올바른 태도와 책임감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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