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우의 세상 땜질] 청년 숙련공 육성 안 하면 제조업 현장 붕괴된다
고3 실습생부터 체계적으로 키워야 제조업의 미래 지킬 수 있어

유명한 정치철학자와 경제학자가 대담을 나눴다. 마이클 샌델과 토마 피케티가 파리경제대학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는 ‘기울어진 평등’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제목만 보면 벽돌책 같지만 고작 150쪽. 작고 여백도 많아 얼마 안 되는 분량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중간쯤에 멈칫했다. 몇 년 전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대학 진학 지원에 쓰이는 보조금, 대출, 세액 공제 금액을 연구했다. 합산해 보니 한 해 1620억달러인데, 직업 교육이나 기술 교육에 쓴 돈은 고작 연간 11억달러였다. 한마디로 교육 자원을 대학과 대학물 마신 사람들에게 ‘몰빵’했다는 뜻이다. 직업 교육에 소홀한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왜 사람에 투자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좀 바꿔야 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은 왜 얼마 안 되는 투자마저 대학생에게만 쏟나?’ 또는 ‘왜 고졸 취업이란 길을 택한 소수를 제대로 육성하지 않는가?’ 나는 그 답을 기업·정부·사회의 무관심에서 찾는다. 일터만 있으면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사람에 투자하지 않아도 매출과 수주는 계속 상승세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방치한 셈이다. 이런 정책 기조는 오래 달린 자동차의 오일을 갈지 않는 것과 같다. 좌우간 굴러는 가니까, 외관에 티가 나진 않으니까, 손 놓고 있는 사이에 내부는 천천히 망가진다.
이미 고장이 꽤 진행된 단계 같다. 결과가 제조업 분야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조선소가 그렇다. 조선업은 현재 인력난이 심각하다. 사무직, 기술 인력도 없지만 현장직, 기능 인력 또한 매우 부족하다. 특히 ‘신규·청년·상용공’의 씨가 말랐다. 조선소 노동은 청년 기피 업종 1위로 봐도 무방하다. 어지간한 일도 버텨내는 외국인 노동자조차 고개를 가로젓는 노동 강도부터 입직 초기엔 월급 300만원조차 받기 어려운 저임금 구조, 위기 때 대규모 정리 해고의 역사까지 청년을 조선소로 가기 어렵게 한다.
이제라도 젊고 건강한 학생들에게 적극 투자해보면 어떨까. 현장직은 하루라도 젊을 때 숙련을 쌓아야 효율적이다. 건강한 데다 경력까지 쌓이면 일도 잘하고 산재 위험 또한 크게 줄어든다. 대외 이미지와 업무 환경이 최악이라는 점, 그렇기에 청년들이 전혀 찾지 않는 일터란 점 등 현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누가 조선소에서 오래 일할지 생각해 보자.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 학생들, 영화 ‘다음 소희’나 ‘3학년 2학기’에 나오는 현장 실습생들이다. 반대로 ‘취업 재수’ 기간이 길어질수록 건설·생산직에 대한 선호는 낮아진다. 이 현장 실습생들을 제대로 된 보상과 프로그램을 통해 숙련공으로 키워내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란 게 아니다. 사관학교에서 장교를 양성하듯 절실한 소수 학생에게 조기 투자하자는 이야기다.

3대 조선소가 밀집한 경남을 예로 들어보자. 2025년 경남의 특성화고·마이스터고·일반고 직업반 졸업생은 모두 3139명이다. 여기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학생은 많이 잡아 10%라 해도 300명 정도다. 인력난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하지만 필수 인력이라는 전제로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마트 팩토리나 피지컬 AI가 발달해도 인력 없이 모든 일을 할 순 없다. 결국 일의 시작과 마무리는 사람이 해야 한다. 불황이 와도 숙련공은 필요하고, 자동화가 진행돼도 마찬가지다. 기업과 정부가 손잡고 우선 고3 남자 현장 실습생부터 숙련공으로 길러보자. 막상 일터에 가면 쓸모없는 몇 달짜리 교육을 시킨 다음 현장으로 떠밀지 않나. 그런 관행 버리고 긴 계획을 세우자. 나가고 싶어도 떠나기 어려운 수준의 여건을 조성해 주자.
내가 제안하는 정책의 핵심은 정부와 지자체, 조선소가 함께 학생의 5년을 책임지되, 학생들이 가장 떠나고 싶어 하는 시기를 정책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조선소를 나가고 싶어 하는 때는 언제일까. 첫째는 현장 실습 시기다. 최저임금을 주고 조선소에 보내면 금방 이탈한다. 현장 실습 시기에 노동 시간 4시간, 기술 교육 4시간씩 받게 하면서, 최저임금과 최저임금 50%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자. 숙소나 교통 같은 복지도 제대로 챙겨주자. 여기에 정부, 기업, 실습생이 2년짜리 내일채움공제(일정 기간 돈을 적립하면 기간 만료 후 노동자가 적립금 수령)에 가입하게 해 근속 유인을 주자.
두 번째 시기는 현장 실습 직후다. 너무 힘들어 군 입대까지 생각할 정도다. 이때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활용해 근속을 유도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군 입대 기간이 줄고 월급이 늘어나도, 산업기능요원은 여전히 최저임금에 2년 10개월을 근속해야 한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쪽이 더 손해다. 이럴 때 미리 들어둔 내일채움공제 제도로 근속을 독려할 수 있다. 군 입대를 택하면 공제 중도 해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시기는 산업기능요원 소집 해제 이후다. 제법 경력이 쌓였고 내일채움공제로 돈도 좀 모았다. 간절히 조선소를 떠나고 싶을 때다. 이 시기엔 과정 평가형 자격증으로 장기근속을 유도해 보자. 특히 기능장은 위상이 상당한 자격증이다. 기능장 자격증으로 근속을 유도해 보자. 이 제도를 통해 5년 넘게 현장에서 일한 학생은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 이들은 앞으로 조선소에 근속할 가능성이 높고, 하지 않는다 한들 ‘쉬었음 청년’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조선소에서 쌓인 기량은 다른 현장 어디를 가도 써먹는다. 육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제 다 같이 생각을 바꾸자. 대학생만 바라보지 말고 일하는 고등학생과 청년 숙련공 육성에 진지한 관심과 정책, 투자를 집중하자. 그래야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조전혁 전 의원, 서울 교육감 예비후보 등록
- [단독] “종료됐습니다.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안덕근 국무회의 도착 직전 받은 문자, 尹 유
- ‘스토킹 보복 살인’ 김훈 공범 3명, 송치
- 대장동부터 대북송금까지... 與, 공소취소 길 열었다
- 李 “교사 책임 불합리한지 체험학습 각계 의견 수렴”
- 혹시 주한미군도 감축? 靑 “한미간 논의 전혀 없다”
- 교원 채용 대가 금품 받은 대전 사립대 前 총장 직무대리, 구속 송치
- 주식 초보의 짜릿한 첫 수익...우연은 짧고 착각은 길다
- [오늘의 운세] 5월 1일 금요일 (음력 3월 15일 乙亥)
- 檢, ‘강북 모텔 살인’ 김소영 추가 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