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옷 입고 함께 물질…60년 파도에 이제 세 명만 남았어”

광주일보 2026. 4. 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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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해녀 작업장 가 보니]
전남 해녀 숨비소리 잦아든다
평생을 바다서 산 1세대 해녀들
팔순이 목전인데 명맥 이어가
악화된 건강에 지구 온난화까지
“조업 늘고 소득은 줄어 막막해요”
여수시 남면 안도에서 만난 물질 57년차 한준자 해녀가 해녀복 옆에서 환하게 웃어보이고 있다.
“일곱 명이서 까만 고무옷을 맞춰 입고 바다로 뛰어들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무심히 흘러 이제 우리 세 사람만 덩그러니 남았어.”

여수시 남면 안도의 한 식당에서 만난 해녀 한준자(74)씨는 깊게 파인 주름살 위로 아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겨운 파마머리에 작고 구부정한 체구는 영락없는 동네의 평범한 이웃 어르신이다. 하지만 한 씨는 전남의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해양 문화유산 보유자이자, 평생을 거친 파도와 싸우며 살아온 1세대 해녀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바다에 뛰어들어 올해로 57년째 물질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현재 안도에 남은 마지막 3인의 해녀 중 한 명으로 섬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는 한 씨와 함께 양정숙(78), 김점례(70) 해녀만이 척박해진 해양 환경 속에서도 고된 물질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이날 한씨는 작업을 위해 해녀복을 꺼내놓았지만 날씨가 궂어 물질하러 나가지 못했다.
한 씨에게 짭조름한 바다는 유년 시절의 놀이터이자 평생의 일터였다. 누구 하나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는 요령이나 거친 조류를 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바다와 살을 맞대다 보니 스스로 생존의 지혜를 터득했다.

그의 숨길이 닿지 않은 대한민국 연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경북과 충남, 제주도까지 인솔자를 따라 수개월씩 타지 바다를 누비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과거 여수 남면 일대는 ‘해녀들의 성지’라 불릴 만큼 활기가 넘쳤다는 것이 이들의 전언이다.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200여 가구가 북적이며 마을을 채웠던 안도는 타 도서 지역에 비해 수산 자원이 월등히 풍부해 끼니 걱정이 없던 풍요로운 고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차 산업이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마을의 풍경은 달라졌다.

청년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육지로 하나둘 떠나갔고 가업을 이어받을 청년 세대의 발길이 끊기면서 섬은 급속도로 고령화됐다.

평생을 물속에서 보낸 해녀들은 고질적인 잠수병에 시달리며 세상을 등지거나 치료를 위해 요양차 뭍으로 이주해야 했다.

한때 수십 명에 달했던 남면 일대의 해녀는 10여 명 남짓으로 줄어들었고, 이들마저도 팔순을 목전에 둔 고령이라 힘에 부쳐 물질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결국 과거 ‘해녀 7공주’로 불리며 마을 앞바다를 주름잡던 이들 중 지금은 세 명의 해녀들만이 안도 바다에 남아있다.

해녀들의 고단한 삶은 변덕스러운 날씨 앞에서도 여지없이 흔들린다. 기상 악화로 바다에 나가지 못한 날 만난 한 씨는 한 달에 단 며칠도 물질을 나가지 못하는 팍팍한 현실을 토로했다.

파도가 거세거나 바람이 조금이라도 매섭게 부는 날이면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물질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마을 어촌계와 수입을 6대 4의 비율로 나누는 팍팍한 구조 속에서 작업 일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장 생계를 위협받는 일로 직결된다.

한씨가 안도 해녀들과 함께 작업하는 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무엇보다 해녀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급격히 악화되는 건강 상태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6kg에 육박하는 납벨트를 허리에 차고 차가운 물살을 견뎌온 탓에 극심한 근육통은 이미 몸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강한 수압을 온몸으로 견디며 해저와 수면을 수없이 오르내리다보니 관절통과 어지럼증, 이명, 피부 변색 등 지독한 잠수병은 평생 떼어낼 수 없는 멍에가 됐다.

한겨울 얇은 고무 잠수복 한 벌에 의지한 채 꽁꽁 언 바다로 뛰어들 때면 뼛속까지 시려오는 한기가 온몸을 덮친다.

한 씨는 “ 60년 가까이 숙명처럼 해온 일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바다 속에 뛰어드는 일이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잦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는 해녀들의 생존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수온 상승은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백화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연안의 암반과 산호초 주변을 뒤덮었던 풍성한 해조류 군락이 자취를 감추고 바위가 사막처럼 하얗게 죽어가는 탓에 멍게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녹아내리며 전복은 성장이 멈춰 채취량이 급감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해산물을 찾기 위해 빈 해저를 헤매는 시간은 늘어나고, 이는 피로도 누적과 부상 위험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조업 시간은 배로 늘어났지만 손에 쥐는 소득은 턱없이 줄어든 먹먹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공기통을 메고 바다에 뛰어들어 수산물을 싹쓸이하는 스쿠버다이버들의 불법 채취 행위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남은 해녀들의 설 자리는 더욱 비좁아지고 있다.

한 씨는 “우리도 늙고 바다도 늙어가는데, 우리는 죽어도 바다에서 죽을 사람들”이라며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누가 전남 해녀를 기억하고 전남 바다 물길을 기억할 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여수=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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