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비생명, 생명 그리고 죽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2026. 4. 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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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있지만 내 몸을 구성하는 원자는 살아있지 않다. 살아있지 않은 단순한 여럿이 모여 서로 연결하고 결합해 창발하는 대표적 현상이 생명이다. 빅뱅 직후 우주에는 복잡한 것 하나 없이 단순한 것만 가득했다. 쿼크가 모여 양성자와 중성자가 되고 이들이 전자와 짝지어 원자가 되었다. 다음에는 원자들이 모여 분자가 되고 여러 분자가 길게 이어져 생명체를 이루는 다양한 화합물이 만들어졌다.

이런 화합물이 만들어졌다고 생명이 짜잔, 저절로 출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한 여럿이 모이고 이렇게 모인 여럿이 또다시 더 큰 단위로 모이는 것이 이어지는 여러 겹의 계층적 질서가 생명 출현의 토대인 것은 분명하다. 단순한 것만 있었던 우주 초기에 생명은 단연코 없었다. 우주와 함께 태어난 것은 생명이 아니라 비생명이다. 긴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우주 한 구석 바로 이곳에서 비생명이 모여 생명을 낳았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많은 것을 적은 것으로 줄여 이해하는 것이 20세기 과학의 성공을 견인한 물리학의 장기인 환원론의 방법이다. 복잡한 것은 잘 몰라도 단순한 것이라면 물리학이 할 말이 그래도 조금은 있다. 복잡한 모든 것은 어쨌든 단순한 여럿이 모여 이루어진 것일 수밖에 없어서, 아무리 복잡한 생명이라도 물리학의 원리를 위배할 수 없다. 하지만 복잡한 생명을 오롯이 물리학만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겠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단순한 것에서 출발해 이들을 여럿 모아 복잡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별 얘기도 아니다. 탁자 위 꽃병을 조각내려면 눈 감고 살짝 팔로 밀기만 하면 되지만, 쪼개진 조각을 그러모아 다시 예쁜 꽃병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수학에서 함수의 미분은 쉽고 적분은 훨씬 더 어렵다는 것도 떠오른다. 꽃병과 미적분뿐 아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나누긴 쉽고 모으긴 어렵고, 자르긴 쉽고 붙이긴 어렵다.

일단 먼저 자르고 보는 환원론의 본질적 한계가 바로 이 문제와 관계된다. 나중에 다시 이어 붙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일단 잘게 나누고 본다. 마지막에 손에 쥔 작은 부분을 힘들게 이해하고 나면 잠깐 뿌듯한 기쁨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곧 망연해진다. 일단 작은 조각을 낱낱이 이해하고 나면 조각을 모아 전체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지난 꿈이 불현듯 허망하다.

내 몸을 쪼개 원자를 이해했다고 나를 이해한 것은 아니고, 나는 여러 원자의 모임이지만 여러 원자의 모임만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뭇 생명은 제각각 부분의 단순한 합을 훌쩍 넘어선다. 모든 생명은 원자로 이루어졌지만 원자 하나에서 생명을 볼 도리는 없다. 몸 밖 원자나 몸 안 원자나 정확히 같은 원자다. 그래도 내 몸 안 원자가 내게 특별하고 소중한 이유는 그 원자가 내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하나도 없다.

우주에서 생명은 극히 예외적인 상태다. 눈 들어 어디를 바라봐도 비생명이 우주의 보편적 상태다. 자크 모노는 <우연과 필연>에서 우주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학문의 궁극적 야심이라고 했다. 물리학도 그렇다. 물리학이 이해하고자 하는 우주는 안 보이는 그 우주가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 존재하는 바로 이 우주다. 요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수많은 다중우주가 있다면 내가 사는 이 우주는 사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우주일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이 우주가 내게 특별하고 소중한 이유는 그 안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하나도 없다.

원자와 우주 사이, 딱 마침한 중간 크기로 짧게 존재했다 스러지는 내 삶을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어 원자도 우주도 소중하다. 내 몸 안 원자는 살아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니다. 죽으려면 일단 살아야 해서 살아본 적 없는 비생명은 죽음도 없다. 죽음은 삶이 스러지는 과정, 혹은 그 이후의 상태를 뜻하지만 어쨌든 죽음은 먼저 삶이 있어야 가능하다.

생명이 정의되지 않는 어떤 것에서 생명이 태어났고, 잠깐 지속된 생명은 죽음을 맞아 다시 비생명의 상태로 돌아간다. 삶이 없다면 죽음도 없다. 공자가 미지생 언지사(未知生 焉知死), 아직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냐고 물은 이유가 아닐까. 공자의 멋진 말에 가만히 미지비생 언지생(未知非生 焉知生)을 앞세워본다. 우주에 지천인 비생명도 모르는데 어찌 예외적인 생명을 알 수 있을까. 비생명도 잘 모르는데 생명을 말하기 어렵고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말하기는 더 어렵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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