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없던 유럽 청년들, 교회로 돌아온다 

나수진 2026. 4. 29. 19:3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떼제 공동체 3대 원장 매튜 수사 
"무슬림 이주민들 만나며 그리스도교에 관심 생겨…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 몰아낸다'는 말씀 기억해야"   
영국 성공회 출신의 매튜 수사는 전임 알로이스 수사를 이어 2023년 12월부터 떼제 공동체의 원장을 맡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그리스도인의 화해와 일치'를 지향하는 떼제 공동체의 3대 원장 매튜 수사가 4월 마지막 주 한국을 찾았다. 2023년 12월 2대 원장 알로이스 수사로부터 원장직을 이어받은 그는 짧은 한국 일정 동안 여러 교파의 성직자들과 차례로 만났고, 24일 저녁에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일치 기도회'에 참여해 우크라이나·가자·미얀마 등 전쟁과 내전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떼제의 신한열 수사와 함께 남북한 접경 지대를 순례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전쟁과 극우화 흐름이 격화하는 이 시기에, 떼제의 평화 메시지는 다시 주목받는다. 떼제 공동체에는 교파를 초월해 개신교·가톨릭 출신 수사 80명이 속해 있다. 수사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무슬림 난민 가족들과 독신자 여럿을 떼제 마을에 맞이해 살도록 도왔다. 매주 금요일 저녁 떼제에서는 평화를 위한 침묵 기도가 열린다. 매튜 수사가 취임 후 첫 해에 방문한 곳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였다. 그는 고통이 있는 곳에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한다면서 그곳으로 향했다. 

흥미로운 건 유럽에서 지금 청년들의 세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신앙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청년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고 있다. 매튜 수사는 그 흐름을 떼제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는 매튜 수사의 한국 방문 마지막 날, 서울 강서구 화곡동 떼제 공동체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신한열 수사의 통역으로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이번 방한 목적은.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한국 서울에 사는 우리 형제 수사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무엇보다도 형제들 가운데에서 경청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이야기했다. 작년에는 브라질과 쿠바에 사는 형제들을 방문했고, 올해는 아프리카 세네갈과 파리 근교의 가난한 지역에 사는 형제들을 방문했다. 세 번째 방문지로 한국에 온 것이다. 우리 형제들은 1980년부터 한국에 살고 있다. 첫 형제는 1979년 말에 들어왔지만,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아주 오래된 우정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 한국에서 만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

많은 교파에서 우리 공동체를 향해 친절하고 정겹게 대해 주시는 것에 감명받았다. 가톨릭교회의 경우 내년에 열릴 세계청년대회 준비가 가장 큰 화두였다. 주일에는 장로교 목사님이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을 맞이하는 서울디아스포라교회를 방문했다. 또 어떤 신학자들은 복음을 어떻게 한국 상황에 맞게 토착화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었다. 인권 운동에 투신한 분들도 만났다. 공통적으로 많은 분이 고민하는 것은 다음 세대,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신앙을 전수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한국에는 권위주의·독재 시절에 자라난 세대가 있고, 또 민주화된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있다. 한국교회는 1970~1980년대 급속히 성장했지만, 요즘은 많은 질문에 직면한 시기인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24일 대한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일치 기도회'를 마칠 때 여러 교파의 지도자들이 함께 공동으로 축복한 모습이었다. 오늘의 교회에는 눈에 보이는 일치의 모습이 필요한데, 가톨릭·개신교·정교회가 다 함께 자리한 그 모습이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았다. 
4월 24일 열린 평화를 위한 일치 기도회에서 가톨릭·개신교·정교회 성직자들이 공동 축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 떼제에서는 서로 다른 전통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종파·교단 간 벽이 높아 일치가 쉽지 않고, 교리적 차이도 극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듯이 제자들도 서로 하나가 되기를, "당신이 저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을 수 있도록" 기도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가진 사랑을 통해 예수님의 증언이 믿을 만하게 된다. 그래서 일치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거나 "같이 하나가 되면 좋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치는 예수님의 사명,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그 기도에 반해서 살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일치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다. 한국에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사랑 안에서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 보수 개신교가 교회 일치 운동을 반대하는 핵심 이유가 '동성애 옹호'나 '종교다원주의'다. 이들은 서로 다른 것을 환대하는 것 자체를 신앙의 타협으로 본다. 

정말 경청하지 않고 들으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분들이 가진 두려움을 이해해 보려 할 수는 있다. 일치의 길은 사상 강요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무엇보다 먼저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 할 때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라"고 하셨다. 자신이 완벽하게 의롭다고 확신하면서 남을 단죄하는 모든 행위는 반복음적이다.

- 일치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이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

어떤 사람들이 다른 길로 가고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일치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단죄해서는 안 된다. 그분들이 가진 두려움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 세계는 점점 더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 우크라이나, 미얀마, 이란, 가자지구 등 많은 지역에서 내전과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극우주의가 부상 중이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떼제는 정치적인 언어를 제공할 수 없다. 나에게도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는 있지만, 나의 사명은 내가 이해한 복음의 일부라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복음을 읽고 누군가를 보호하고 변호해야 한다면 당연히 복음에 따라 그 사람을 보호한다. 그것을 두고 누군가 정치적이라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전쟁의 상황에서 마태복음 25장 최후의 심판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정말 우리 이웃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 가까이서 관심 갖고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사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방문하는 것, 그 길 말고는 진정으로 없다고 생각한다.

- 직접 분쟁 지역을 방문한 적도 있나.

저와 우리 형제들 몇 사람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레바논, 팔레스타인을 계속 방문해 왔다. 한편으로는 기도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찾아가서 함께 있는 것, 고난 중에 있는 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다 중요하다. 우크라이나에 가면 자유를 지키고 자기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레바논에 가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회복 탄력성을 가지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분들을 본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에게 정치적 언설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사회에서 소외되고 내쫓긴 가장 작은 사람들 곁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편이 되어 주는 것이다.

- 일부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맞게 끌어다 쓴다. 한국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중동 전쟁을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 전쟁은 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종교를 이용하거나 종교를 빌미로 삼는 것일 뿐이다.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리스도교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진정한 그리스도교가 아니고, 정치하는 사람 중 일부가 종교를 오용·조작하는 것이다.
매튜 수사는 신앙의 언어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단호하게 일축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유럽에서는 최근 기독교인이 늘고 있다고 들었다. 

프랑스는 최근 세례자 수가 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젊은이들이 학교에서, 특히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유럽 사람들이 많은 무슬림 이민자를 만나면서 '질문'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무슬림은 라마단 금식 같은 눈에 보이는 신앙 표현이 있으니까,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그럼 우리는 뭐지?" 하고 그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례나 견진·입교를 청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내 고향인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종교를 접하면서 우리 그리스도교를 재발견하고 관심을 가진다.

- 교회가 문을 개방하고 타 종교를 환대할 때 젊은 사람들이 종교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인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앙의 길을 찾는 데 자극제가 된다. 다른 종교를 접한다고 해서 그 종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내 뿌리는 어디에 있는지를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놀랍지만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 세가 줄어들수록 혐오나 배제를 통해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방식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한국에서도 무슬림 인구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환대보다는 경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방식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독재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두려움의 토대 위에서는 아무것도 세울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 증오만 키울 뿐이다. 지금 유럽 청년들 사이에서 작은 부흥이라고 할 만한 움직임이 일고 청년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이유 중 하나는, 더 이상 교회가 어떤 권력 집단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는 새롭게 복음의 가난한 자로서의 모습을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옛날 같은 큰 힘이 없기 때문이다.

- 두려움이 강할수록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 같다. 이것을 넘어서는 게 가능할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오셨다. 우리의 모습 그대로 우리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자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여기 있다, 함께한다", "나는 너희와 함께 세상 끝날까지 있겠다"고 하셨나. 로마서에서는 그 무엇도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고 했고, 요한1서에는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은 또 이사야서를 인용해 갇힌 이들을 해방시키고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하셨다. 우리는 정말 복음을 제대로,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4월 24일, 매튜 수사와 다양한 교파의 성직자들이 함께 기도회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 떼제를 찾는 청년들도 늘고 있나.

팬데믹 시절에는 당연히 많이 줄었다. 팬데믹이 지나면서 그 뒤로 조금씩 계속 늘어 왔고, 지금은 거의 팬데믹 이전에 가깝게 회복됐다. 확실한 것은 젊은이들 가운데서 신앙과 의미에 대한 갈증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떼제에 와서 환대받으면서, 기도 가운데서 자기 자신이 채워진다고 느끼는 움직임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다.

- 청년들이 특별히 떼제에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주일 동안 지낸 청년들에게 주말 즈음 "이번에 가장 중요했던 게 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침묵이었다고 답한다. 떼제의 모든 기도 시간에는 말씀을 들은 다음 긴 침묵의 시간이 있다. 사람들이 그다음으로 많이 꼽는 것은 다른 청년들과 함께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지금 20대가 된 친구들은 팬데믹이 시작될 때 13~15세였다. 이제 그런 고립의 시기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전 세계적으로 정치·경제·종교 전반에서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이다. 이런 시대에 청년들이 오히려 공동체를 찾는다는 것인가. 

지금 유럽도 마찬가지로 아주 양극화되고 극단적인 상황이다. 떼제에 오는 청년들도 사실은 아주 다른 성향, 다른 입장의 청년들이 함께 온다. 한 부류만이 아니다. 우리는 청년들이 우리 공동체 기도와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환영하고 맞이하려고 한다. 우리가 청년 모임을 하는 것은 다양한 입장의 청년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 

- 이들에게 떼제가 전하고자 하는 고유한 메시지가 있는가. 

오직 복음일 뿐이다. 지난 금요일 저녁,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일치 기도회에서 묵상한 내용도 평화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이루는 사람, 평화의 순례자가 될 수 있을지 이야기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가는데, 그 평화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분이 우리의 평화이다.
매튜 수사는 24일 기도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평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만족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 이러한 양극화의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양극화는 어쩌면 오늘날 우리 시대의 불안정함에서 비롯된다. 불안정한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확신을 찾는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회복하려고 하고 다시 재현하려고 하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각자가 자기 입장에만 머물러 서로 상대방을 단죄한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내적 회개·회심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지 듣는 마음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너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물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단순 소박한 기도 안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리스도께 더 가깝게, 이 길에서 한 걸음씩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분리의 장벽을 무너뜨리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기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끼고 자기를 개방할 때 무언가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순진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떤 시작이라는 것이다.

- 떼제에 서로 다른 입장과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머문다면, 이들 사이에서 화해나 일치는 어떻게 이뤄지나.

정치적 갈등 같은 것이 직접 생기는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지내다 보면 자기와 생각이나 입장이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루에 세 차례 모두 모여서 한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공동 기도가 없이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 한국의 교회는 혐오와 편 가르기로 사회적 신뢰를 많이 잃었다. 한국의 떼제 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주 작은 공동체다. 그저 예수님의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여기 있다"는 그 말씀만 상기할 수 있을 뿐이다. 수사들은 매일 공동체로 기도하고, 매달 대한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에서 하는 평화 기도회처럼 다른 곳에서도 여러 사람과 함께 모여 기도한다. 다양한 교파와 성향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작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수진 sjnah@newsnjoy.or.kr

Copyright © 뉴스앤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