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유 삼각김밥 매대 앞에서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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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잘 먹게 되지 않는다.
하루 중 가장 든든히 먹어야 하며, 먹는 것만으로 과식을 방지하고 비만을 예방하며 집중력을 높이고 학생이라면 성적을, 직장인이라면 업무효율을 높인다는 만병통치약 '아침 식사'.
그 모든 풍경이 이것이야말로 도시의 아침이라며 한껏 자기주장을 한다.
세상 바쁜 이른 아침, 편의점 삼각김밥 매대는 다시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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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아침을 잘 먹게 되지 않는다. 하루 중 가장 든든히 먹어야 하며, 먹는 것만으로 과식을 방지하고 비만을 예방하며 집중력을 높이고 학생이라면 성적을, 직장인이라면 업무효율을 높인다는 만병통치약 ‘아침 식사’. 좋다는 것 누가 모를까.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는 귀찮음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단 5분이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겠다며 몸부림치느라 먹지 않았다. 그렇게 삼시 세끼에 아침은 빼고 대신 야식으로 구색을 갖춰 살았다. 망가진 몸을 보며 후회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아침을 챙겨 먹기에는 부족한 결심.
이른 아침, 사실상 새벽의 끝자락에서 시작된 하루.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날이거나, 종일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 긴장한 탓에 알람을 듣기도 전에 일어나게 되는 날. 그런 날 아침이면 십수년 미뤄둔 아침 식사를 찾아 편의점을 찾는다. 고된 심야노동을 끝내 가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퀭한 안색을 뒤로하고 내 하루치 노동을 견디게 해 줄 칼로리를 찾아 말끔히 정리된 냉장 진열대를 탐색한다. 베스트셀러인 에그마요, 햄치즈 샌드위치와 참치마요 삼각김밥 사이에서 번뇌하고 이내 싱그런 샐러드를 먹을까 고민하다 그럴 거면 아침을 왜 먹느냐며 스스로 핀잔을 준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노라면 저건 대체 누가 사 먹을까 싶었던 2개들이 바나나 소포장을 망설임 없이 집어 가는 멋진 직장인이 진열대를 스쳐 지나가고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숙취해소제를 집어 가는 사람, 반쯤 죽은 눈으로 얼음 컵에 아메리카노를 뽑아내리는 이, 담배 찾는 사람, 좁은 테이블에 몸을 구겨 넣고 도시락을 까먹으며 유튜브를 보는 이. 그 모든 풍경이 이것이야말로 도시의 아침이라며 한껏 자기주장을 한다.
이 모든 풍경을 가능하게 했던 노동. 실핏줄처럼 곳곳에 자리 잡은 편의점에 아침 식사와 온갖 현대인의 필요를 살뜰하게 배달한 노동자들. 우리 중 대부분의 밤보다 더 늦고, 대부분의 아침보다 더 이른 시각 전국의 도로를 누비는 화물노동자가 있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화물연대의 오래된 표어다. 파업으로 세상을 멈춘다고 하지만, 실감하기란 쉽지 않았다. 파업을 대체할 인력을 투입하고, 공권력으로 집회를 해산시키고 해고하고 구속하니 체감되는 파업을 느끼며 사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파업은 심상치 않았나 보지. 씨유(CU)편의점에 김밥, 도시락, 샌드위치 등을 납품하는 비지에프(BGF)푸드 공장이 분노한 화물노동자와 시민들로 봉쇄됐고, 기업과 언론이 앞다퉈 가맹점주의 고충을 보도했다. 63년 만에 이름을 되찾은 노동절을 앞두고 노동자와 노동자의 싸움을 부추긴 이들. 제일 큰 피해자는 가맹점주를 비롯한 ‘일하는 노동자’라는 기사도 봤다. 그러나 제일 큰 피해자는 죽임당한 화물노동자 서아무개씨이다. 노동자가 못 살겠다고 파업을 했으니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 않고 대체 트럭을 도입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발칙한 기업이 죽였다.
지난 새벽, 화물연대와 비지에프로지스가 극적인 합의를 이뤘다. 합의 내용이 잘 지켜지는지, 노동자의 영정 앞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물류가 멈추더니, 결국 세상이 바뀐다. 숨진 그와 화물노동자들의 노동. 전국의 점주들이 생존을 호소하고 전 국민이 불편을 겪을 만큼 영향력 있는 노동이었다면, 그만큼 소중하게 대해 달라. 노동절 이름은 되찾았지만, 여전히 소외된 노동의 현실이 뼈아프다. 이렇게 또 한 사람을 잃어야만 했나. 세상 바쁜 이른 아침, 편의점 삼각김밥 매대는 다시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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