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항모 장난감'이란 트럼프에 찰스3세 "왕실 대대로 해군" 자랑

김지연 2026. 4. 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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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회 연설 속 트럼프 향한 은근한 질책과 풍자
오스카 와일드·찰스 디킨스 언급하며 '영국식 유머'로 웃음 끌어내
미 의회의 찰스 3세 [AF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나는 엄청난 자부심으로 영국 해군에 복무했습니다. 선친 필립공과 외조부 조지 6세, 진외종조부 마운트배튼경, 외증조부 조지 5세가 해군에 남긴 발자취를 따랐습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8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연설에서 한 이 발언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영국 해군 그만 좀 무시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은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백악관에서 미국의 이란 공습에 참여하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비판하면서 "영국 항공모함은 장난감"이라고 조롱했고 이달 초 영국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도 "여러분에겐 해군이 없다"고 말했다.

찰스 3세가 영국왕으로선 35년 만에 처음으로 동맹국 미국 의회에서 한 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은근한 질책과 풍자를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을 비롯한 나토의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을 위해 싸웠다는 점도 부각했다.

찰스 3세는 "9·11 직후 나토가 (집단방위) 5조를 최초로 발동했을 때, 우린 1세기 넘게 그랬듯이 응답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우리 공동 안보를 정의해온 순간들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말했다.

진짜 중요할 때 영국과 나토는 미국을 지원했다는 뜻이다. 특히 아프간을 콕 집은 것은 올해 1월 '나토는 아프간전 최전선에 있지 않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폄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전에서 군인 400여 명을 잃은 영국은 당시 강하게 반발했다.

미 의회서 연설하는 찰스 3세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트럼프 대통령의 기후 회의론과 그린란드 야욕을 동시에 겨냥한 듯한 언급도 나왔다. 찰스 3세는 열성적인 기후·환경보호론자로 유명하다. 또한 나토의 유럽 동맹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편입 주장 이후 북극 안보 강화에 나서고 있다.

찰스 3세는 "대서양 심해에서부터 재앙적으로 녹아내리는 북극 빙하에 이르기까지 미군과 동맹국의 헌신과 전문성은 나토의 핵심"이라며 "우리는 서로를 방어하고 우리의 시민들과 이익을 보호하며 북미인과 유럽인들을 공동의 적으로부터 지키기로 맹세했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또한 "독립 이후로 미국의 말은 무게와 의미를 지닌다. 이 위대한 국가의 행동은 훨씬 더 중요하다"며 "세상이 우리의 말은 별로 기억하지 않아도 우리의 행동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인용했다.

폴리티코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일단 쏘고 보는 트루스소셜 글들이 훌륭하진 않지만, 미국이 다시 우리 친구로 돌아온다면 대문자로 쓴 그 글들은 잊어주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찰스 3세와 트럼프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직설적인 공격이 아니더라도 영국인 특유의 유머로 국왕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을 꼬집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찰스 3세는 "우리는 미국과 정말로 모든 걸 공유하고 있다, 물론 언어만 빼고"라는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를 인용해 웃음을 끌어냈다.

그는 워싱턴DC에 대해 "찰스 디킨스라면 '두 조지의 이야기'라고 불렀을 도시다. 하지만 난 후방 교란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니 안심하라"고 말해 또다시 호응을 끌어냈다. 미 독립전쟁 당시 조지 3세 영국 국왕과 미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디킨스의 명작 '두 도시 이야기'에 섞어 넣은 표현이다.

특히 왕권 제한과 법치를 규정해 서구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여겨지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대헌장)를 들어 "행정권은 견제와 균형의 대상"이라고 말했을 때는 민주당 의석을 시작으로 의사당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일간 가디언은 "와일드와 디킨스를 인용하며 절제된 마스터클래스 같았던 국왕 연설은 미 의회에서 열광적 반응을 끌어냈고, 백악관에서는 장황한 비난이 나오지 않았다"며 "국왕이 임무를 완수했다"고 평가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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