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판 도가니 사건’, 제자리걸음 끝내려면 [플랫]
2011년 영화 <도가니>가 개봉된 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재조명받았고, 재수사가 진행됐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전원 조치가 이루어졌고, 시설도 폐쇄됐으며,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시설에도 폐쇄회로(CC)TV가 설치됐으며, 인권지킴이단도 구성되어 활동에 들어갔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였는데, 공지영은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만약 소설이나 영화의 힘이 아니었다면 성폭력 범죄자였던 인화학교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쳤을 것이고, 그 뒤에 나온 대책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인천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색동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인천 강화군 관할 사회복지법인인 색동원은 중증장애인거주시설·체험홈과 함께 장애인직업재활시설도 운영해왔다. 입소자는 33명, 종사자는 26명이었다. 이 시설에서 최소한 10년 동안 대표이사가 장애여성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러온 사실이 확인됐다.
[플랫]장애인 거주시설 학대·성폭행 왜 반복되나···“만성화된 구조적 체념”
이 사건이 알려지자 강화군은 피해 여성들에 대한 심층조사를 실시하게 했고, 의뢰를 받은 기관은 조사 결과를 강화군에 보고했다. 하지만 강화군은 결과를 비공개 처리했다. 지난 1월19일 중앙일보가 이 조사보고서를 입수해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김모씨가) 복도에서 바지를 벗고 돌아다니고, 아침이든 저녁이든 만졌다” 등의 피해 진술은 그중에 가장 약한 진술이었다. 시설 내에 CCTV가 설치돼 있었음에도 이런 짓을 버젓이 저질렀다. 피해 여성 상당수는 발달장애 여성이었다. 의사표현을 언어로 하기 어려운 피해자들은 경찰 조사에서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건화되는 시설 내 인권침해는 늘 상상 이상이다.
뺑뺑이 돌아서 결국 제자리
색동원 사건에 대해 김민석 국무총리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중대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범정부 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의 대책 논의는 답답하기만 하다.
여전히 경찰 수사 결과를 핑계로 행정조치는 더디게 진행된다. 올해 2월에 들어서야 대표이사는 전국장애인시설협회와 인천시설협회의 임원직에서 물러났고, 구속 기소됐다. 피해자 19명이 전국의 쉼터로 전원 조치되고, 시설 폐쇄 행정처분이 내려진 것은 사건이 알려진 지 6개월이 지난 올해 3월23일이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인권지킴이단 운영의 실질화’, 종사자 처우 개선 등이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전수조사도 들어가 있다. 그리고 다시 시설의 소규모화도 나온다.
색동원 입소자의 약 70%는 이미 다른 시설에서 인권침해 경험을 했던 장애인들이었다. 그들이 이 시설에 와서 다시 인권침해를 겪었다. 전체 장애인 입소자의 90% 정도는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입소하는데, ‘시설 뺑뺑이’가 보편화돼 있다. 그래서인가? 대책도 뺑뺑이다. 뺑뺑이를 돌아서 결국 제자리인 답답한 상황이다.
인간을 시설에 거주하게 해 돌보는 환경에서 발생하는 방임적·심리적·신체적·성적 학대를 ‘시설 학대’라고 학계에서는 정의한다. “극단적인 권력 불평등, 집단성, 은폐, 환경 영향의 뚜렷한 패턴”이 전형적인 유형이다. 이런 시설 학대는 개별 사건의 처벌과 조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도가니 사건’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플랫]장애인 성폭행·학대 ‘색동원’…강화군, 시설폐쇄 처분
자기결정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폐쇄적 시설에서는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시설장은 쉽게 ‘아빠’가 될 수 있으며, 절대권력자인 아빠를 거부할 수 없다. 직원들도 범죄 가담자이거나, 은폐하면서 공범자가 된다.
‘탈시설지원법’ 제정이 유일한 대안
이런 시설 환경에 놓인 장애인들은 저항할 의사를 잃게 된다. 이들은 또한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유기 트라우마’도 겪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장애인복지시설이 안전하다, 시설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나 탈시설 가이드라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바로 지난해 10월,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된 ‘탈시설지원법’의 제정이 유일한 대안이다. 정부는 2041년까지 시설 폐쇄를 약속했지만, 너무 늦다. 국회는 탈시설지원법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장애인이라고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국민의힘 “대구 달성 이진숙 단수공천···부산 북갑 박민식·이영풍 경선”
- [속보]“이란, 전쟁 종식 새 협상안 중재국 파키스탄 통해 미국에 전달”
- 여성 노동자는 간호사·스튜어디스뿐?···민주당·국힘 노동절 홍보물 속 ‘성 역할 고정관념’
- ‘예수상 파괴’ 이어 이번엔 대낮에 수녀 폭행···‘기독교 혐오’ 잇따르는 이스라엘
- "퇴근 2시간 전 해고 통보" "회생 의지 없는 회사"···이게 노동의 대가인가
- 갑자기 소환당한 LGU+ 노조 “분노 금할 수 없어”···삼전 노조위원장 책임 돌리기에 반발
- 이 대통령 재판 없앨 수 있는 ‘슈퍼 특검’···공소취소 단행 땐 ‘법왜곡죄’ 부메랑 맞을 수
- “울릉도 동쪽 ‘Usando’”···미국지리학회 도서관 소장 19세기 여지도 속 독도 옛 이름
- ‘희귀 카드가 뭐길래’···포켓몬 팝업 열린 성수동에 4만 인파 몰리며 ‘긴급 중단’
- 깃발에 눈 가려진 양복 차림 남성···뱅크시 신작, 런던 도심 깜짝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