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따위가 정치적 발언” 50대 유명 개그맨에 모욕…그는 분노했다[명화수집]
그렇다면, 진짜 광대는 누구인가?

알려진 그림과 덜 알려진 명화, 아름다운 작품과 사연 있는 예술품을 찾아봅니다. 그렇게 1000점을 차곡차곡 수집합니다. [기자 구독]으로 이 과정을 함께 해주셔도 참 좋겠습니다.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붉은 천의 광대가 방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그는 웃지 못합니다. 눈빛은 심각하고, 표정은 참담합니다. 팔다리 또한 뻣뻣하게 굳어버렸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복장 때문인지, 이 모습은 더욱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직전까지 광대가 띄운 분위기 아래, 장막 뒤 사람들은 여전히 파티를 즐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틈에서, 그는 평생 노리갯감 취급만 받는 본인 처지가 원망스럽게 느껴졌을까요. 사실 그가 분노한 계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신세 한탄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스탄치크(Stanczyk).
1480년경 출생해, 1560년경에 여든 살쯤 나이로 죽었다고 전해지는 폴란드 출신의 궁정 광대입니다. 다만, 그가 역사 속 실존 인물이었는지를 놓곤 아직도 학계 내 의견이 분분합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스탄치크는 짧지 않은 삶을 살며 여러 국왕을 섬겼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당연히 ‘개그’였습니다. 왕과 귀족의 명령이라면 언제든 농담을 줄줄 읊어야 했습니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며 어떻게든 폭소를 끌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남을 웃기는 게 쉬운 일인가요. 그것은 가끔은 쉽지만, 많은 순간 한없이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말로는 허를 찌르되 선을 넘으면 안 되고, 춤을 출 때는 반드시 주변 눈치부터 살펴야 했습니다. 당시 광대는 암묵적으로 현실 풍자와 해학 역할도 떠안았습니다. 왕과 귀족이 엇나가는 행보를 보이면 그때만큼은 목숨 걸고 ‘뼈 있는’ 유머도 던져야 했습니다. 당장 심기는 건드리지 않는, 하지만 막상 잠들 때쯤 되면 무언가 여운 비슷한 게 밀려오는. 그런 내용으로요.
스탄치크는 이러한 줄타기에 있어 귀재였다고 합니다.
예리한 시선, 풍부한 독서와 부지런한 귀동냥 등으로 왕실 상황과 나라 분위기는 물론, 국제 정세에도 훤했다고 하지요.

그런 스탄치크가, 지금 분노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절망하는 모습입니다.
화폭에서 눈여겨볼 지점이 있습니다. 탁자 위 신문입니다. 펼쳐진 그 종이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 모스크바 대공국과 재차 전투를 벌였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모스크바 대공국이 스몰렌스크를 차지하고 말았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스몰렌스크는 적국에 어쩌다 그냥 내줄 만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관문이었습니다. 바르샤바로 가든 모스크바로 가든 반드시 지나야 할 지역이었습니다. 이 일대 말곤 사방이 늪지와 험한 강이었기에 더더욱 금싸라기 땅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스몰렌스크가 뚫렸다는 건, 사실상 전선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스탄치크는 스몰렌스크의 중요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스몰렌스크가 빼앗겼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참혹한 장면 또한 선명히 그릴 수 있었습니다.

궁정 광대인 본인조차 간담이 서늘해지는데, 정작 나랏일을 봐야 할 이들은 술과 춤이나 즐기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모르고 저런다면 무능이고, 이를 알고서도 저렇게 있다면 직무 유기였습니다. 스탄치크가 좌절에 젖은 건 이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그림의 전체 제목 또한 <스몰렌스크 상실의 직면, 보나 왕비 궁정의 무도회에 있는 스탄치크>였다고 합니다. 미술사학자 미하우 하케에 따르면 그림 속 스탄치크가 입은 옷은 ‘쿠클라(kukla)’입니다. 후드가 달린 원색 코트입니다. 스탄치크가 쓴 후드에는 뿔이 달렸는데, 이는 진실에 대한 수호의 뜻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축 늘어진 점을 볼 때, 이번만큼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듯합니다. 그의 지팡이도 바닥에 떨어져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광대로의 의욕도, 의지도 잃었다는 점을 의미할 테지요.
왼쪽 위 밤하늘을 들여다보면, 폴란드 왕들의 대관식 장소인 크라쿠프 바벨 대성당으로 추정되는 실루엣이 보입니다.
반짝이는 점은 추락하는 혜성, 아울러 오리온자리의 별들로 여겨집니다. 오리온은 신에게 죽임을 당하는 신화 속 영웅입니다.

몇몇 학자는 흥미로운 상상을 가져다 대기도 합니다. 일찌감치 신문을 본 스탄치크가 직전까지 ‘광대 짓’으로 심각성을 알렸지만, 모두 배를 잡고 웃지나 않았을지에 대한 상황이 그것입니다.
스탄치크는 자기 농담이 통하기를 바랐지만, 눈치 없는 귀족은 “우리가 그래도 오르샤 전투에서는 이겼어!”라고 응수하는 그런 장면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나옵니다. “광대 따위가 정치적 발언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도 하지요. 실제로 그런 상황이 연출됐을 법도 합니다. 역사의 맥을 짚어보면 ‘오르샤 전투에서는 승리했다’는 귀족의 말도 완전히 틀리지 않았습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과 모스크바 대공국은 스몰렌스크 전투 직후 오르샤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습니다. 여기서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당시 지정학적 상황만으로 보면 스몰렌스크와 견줘 오르샤는 큰 이점이 없었습니다. 외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 또한 오르샤 전투에서 상당한 전력을 소비했기에, 스몰렌스크 탈환은 제대로 시도조차 못 할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신문에 적힌 글을 보면 연도가 쓰여 있는데요. 학자들은 숫자를 1533년으로 해석합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스몰렌스크를 빼앗긴 해는 1514년입니다. 즉, 이를 대입하면 그림 속 1533년의 시대는 그런 치욕을 겪고도 어느덧 20년 가까이 흐른 시점이 됩니다. 화가가 단순히 연도를 혼동해 실수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런가 하면, 이 또한 의도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20년가량이 흐르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왕족과 귀족, 관리들을 더 신랄하게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연도를 이렇게 뒀다는 의견입니다.

끝으로 후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스탄치크에 대한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합니다. 16세기 폴란드 역사가 마르친 비엘스키가 쓴 내용입니다.
문제의 1533년께, 스탄치크는 숲을 걷다가 웬 곰의 습격을 받고 부리나케 도망친 적이 있었습니다. 주변 농부들이 다행히 스탄치크를 구해줬는데, 대가로 그가 입고 있던 옷을 홀딱 벗겨 챙겨갔다고 하지요. “그대는 기사가 아니라 광대기에 도망칠 수밖에 없었구나!” 왕이 벌거숭이가 된 스탄치크를 놀립니다. 이때 스탄치크가 받아친 말이 이랬다고 합니다. “왕이시여. 당신은 저보다 더 많은 것을 빼앗겼습니다. 특히 스몰렌스크 말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아직도, 여전히 침묵만 하고 있군요.”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로트가수 김대성, 42년 만에 친모 만났는데…“어머니, 연락 말자고”
- “첫날 출근하고 반려견 죽자 퇴사한다는 직원, 이해되나요?”
- 먹다 남은 라면·만두 강가에 쏟았다…“이러니 욕 먹지” 캠핑족 공분
- 악어 수조에 미성년자 밀어 넣고 생방송…中 1100만 팔로워 계정 영구 정지
- 허안나 “우울증 앓던 언니, 5년 전 떠나보냈다” 가족사 고백 ‘오열’
- “참외 씨까지 먹는 남편, 급 차이 느껴져” 어느 교사 새댁의 불만 글에 ‘와글와글’
- 탕웨이 ‘46세’에 임신?…상하이 행사서 ‘볼록한 배’ 포착
- “수십억 수익” ‘버터맥주’ 거짓 광고 어반자카바 박용인 항소심서 檢 징역 1년형 구형
- 김선태 “청와대 제의 받아…빠른 팀장 승진에 내부 반감도 있었다”
- ‘상간녀 누명’ 쓰고 통편집됐는데…연프 출연 40대女 “JTBC가 잘못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