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갱이로 감싸 증발 최소화…액화수소 운송 패권 노린다 [코어파워 KOREA]
■한국3M연구소 가보니
글라스버블 등 첨단 기술력 앞세워
영하 253도 유지 손실률 46% 낮춰
한국3M, HD한국조선과 공동개발
日 주도 액화수소운반선 추격 기대

29일 찾은 경기도 화성시 소재 한국3M기술연구소에는 3M이 개발하는 수소 기술이 전시돼 있었다. 고운 입자의 작은 하얀 알갱이들이 담긴 병과 둥그런 모양의 탱크 모형이 눈에 띄었다. 하얀 알갱이의 정체는 ‘글라스버블’로 육안으로는 단순한 가루처럼 보이지만 단열 성능이 뛰어나 수소 운송 산업의 경제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조선 업계는 이 기술을 활용해 대규모 액화수소를 싣는 선박을 만들고 있다. 수소 생산 분야에서는 다소 뒤처진 한국이 국제 운송 시장을 선점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글로벌 수소생태계 내에서 한국이 핵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찾을 기회가 아직 있다는 의미다.
액화수소운반선은 기체가 아닌 액체 상태의 수소를 탱크에 실어 나르는 것으로 액화천연가스(LNG)수송선과 비슷한 구조의 선박이다. 액화수소는 부피가 약 800분의 1로 줄어들어 효율적인 운송이 가능하지만 영하 253도의 극저온을 유지하지 못하면 기화하는 난제가 있다. 3M의 글라스버블은 이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꼽힌다. 액화수소 탱크 벽 안을 글라스버블로 채우면 기존 단열재 대비 수소 손실률을 최대 46%까지 낮출 수 있다. 특히 운송 중 발생하는 진동이나 열팽창에도 구조적 변형이 없는 뛰어난 내구성을 갖춰 장거리 해상운송에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다. 최경락 한국3M 에너지사업부 팀장은 “한국의 제조업 역량과 3M의 소재 기술이 만나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는 수소 운송”이라며 “작은 유리 알갱이가 미래 수소경제의 판도를 바꿀 핵심 열쇠”라고 강조했다.

3M과 HD한국조선해양은 대규모 액화수소 저장탱크 개발에 협력해 국내 액화수소운반선의 상용화에 앞장서고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양 사는 지난해 12월 공동연구프로젝트협약(JRPA)을 연장하기도 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수소 협의체인 ‘수소위원회(Hydrogen Council)’에 가입하며 수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윤인섭 한국3M 수석연구원은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에 있는 수소 탱크가 4730㎥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 절반 크기 정도의 탱크를 선박에 싣는 게 목표”라며 “이를 통해 수소 운송의 경제성이 크게 확보돼 수소경제 실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해당 분야에서 앞서 있는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2021년 세계 최초로 액화수소운반선 ‘스이소 프런티어’를 선보였으며 2030년 4만 ㎥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운반선을 건조할 계획이다. 국제적인 수소 공급망이 구축되는 2030년이 액화수소운반선 상용화의 골든타임으로 점쳐지는 만큼 시장 선점을 두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3M기술연구소에서는 수소 운송은 물론 생산의 경제성을 높일 수 있는 솔루션도 제시됐다. 3M이 지난해 말 선보인 투입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나노 구조 이리듐 촉매는 물의 전기 반응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인 수전해의 비용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 수전해 중 고분자전해질막(PEM) 수전해 방식은 고가의 희귀 금속인 이리듐이 촉매로 필요한데 3M 기술을 적용하면 기존 대비 5분의 1 수준인 5g(단위면적당)만으로 충분하다.
이 같은 최신 수소 기술 연구의 핵심 축을 한국3M기술연구소가 맡고 있다. 또한 전남 나주에 자리 잡은 공장에서는 동아시아 지역에 공급하는 글라스버블을 생산한다. 국내에 3M의 수소 연구개발(R&D) 및 생산 거점이 운영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국내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수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3M의 수소 생산이나 운송 프로젝트와 관련해 한국의 고객사와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많은 한국 대기업이 수소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만큼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대규모 수소 프로젝트의 성공에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이 수소 분야에서 선진국에 비해 후발 주자이기는 하지만 개발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국내 수소경제 실현을 앞당기기 위한 경제성 확보 차원에서 3M과 조선 업계의 공동 연구와 같은 국제 협력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수소 생산량이 2배 늘어날 때마다 생산 단가는 약 15%씩 낮아지는 구조다. 전 세계 수소 가격은 생산 방식과 지역에 따라 ㎏당 3달러에서 12달러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전문가들은 수소가 기존 화석연료와 대등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 가격이 ㎏당 1~2달러 수준까지 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생산 단가는 물론 보관과 이송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고서는 수소사회로의 전환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 나아가 민간뿐 아니라 공공 투자도 중요하다는 진단이다. 최 팀장은 “수소 저변이 넓어지려면 파이프라인 등 인프라가 확보돼야 한다”면서 “일본은 수소를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빠르게 활용하기 위해 일찍부터 관련 인프라 확충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한 국가가 기술·안보·외교·행정·문화 등 각 영역에서 확보한 독자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역량을 의미한다.
화성=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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