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죽느냐, 사람 앞에서 죽느냐 차이일뿐”···‘늑구 앓이’ 이면에 남겨진 질문들

대전 오월드 동물원을 벗어났다가 열흘 만에 포획된 늑대 ‘늑구’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대전의 한 제과점은 늑구 얼굴을 본뜬 ‘늑구빵’을 출시했고, 온라인상에서는 드라마 남자 주인공 이름을 빗댄 ‘늑준표’라는 별칭까지 퍼졌다.
늑구 탈출 사태는 이러한 ‘늑구 앓이’ 현상을 넘어 한국 사회에 진지한 고민거리를 남겼다. 동물원이라는 공간은 무엇이며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지 다시 묻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9일 국회에서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늑구 오월드 탈출 사건으로 본 우리나라 동물원 실태 점검’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동물원 탈출, 늑구가 처음이 아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늑구는 살아서 포획됐지만 동물원 안에서는 계속해서 동물들이 죽어왔다”며 “탈출한 동물들은 단지 사람들 눈앞에서 죽었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동물원을 벗어난 논란이 된 동물은 늑구가 처음은 아니다. 2023년 8월 경북 고령군의 한 관광공원에서는 암사자 ‘사순이’가 탈출했다가 사살됐고, 같은해 11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얼룩말 ‘세로’가 우리를 빠져나왔다.
이들의 탈출 배경으로는 열악한 사육 환경이 지목된다. 사순이는 녹슨 철창에 갇힌 채 20년을 보냈고 사살되기 전 숲속에서 20여분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세로도 부모를 잃은 뒤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리 생활을 하는 얼룩말 특성상 단독 사육은 큰 스트레스였을 것으로 평가된다.

동물원 허가제가 만병통치약일까?
늑구 사태 이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22일 ‘동물원 안전관리 및 동물복지 향상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12월까지 전체 동물원의 90% 이상을 현행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2023년 12월 시행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이 2028년까지로 제시한 기존 동물원의 허가 기준 충족 시한을 앞당긴 것이다.
허가제가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등록된 동물원 121곳 가운데 허가 전환을 마친 곳은 10곳에 불과하다. 허가를 받은 동물원에서도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체험 프로그램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물원이 관할 광역자치단체에 ‘보유 동물을 활용한 교육 계획’을 제출하면 동물 올라타기, 만지기, 먹이 주기 등이 제도적으로 허용된다.
김봉균 공주대 특수동물학과 교수는 토론회에서 “동물원수족관법 취지는 기준 미달 시설을 시장에서 퇴출하고 동물 복지와 공공성을 갖춘 기관을 선별하겠다는 것”이라며 “어떤 시설을 유지하고 정리할지에 대한 장기 로드맵 없이 허가제만 밀어붙이면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늑구는 ‘늑구빵’을 바라지 않는다
이날 토론회에서 최태규 대표는 스크린에 사진 한 장을 띄웠다. 세 살짜리 원숭이가 철장에 얼굴을 붙인 채 바깥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손에는 노란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최 대표는 “야생의 새끼 원숭이는 종일 나무를 뜯고 풀을 캐며 환경을 배운다”며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아침마다 꽃을 쥐여줬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그러면서 “동물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경험 속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늑구 현상’은 동물을 하나의 해프닝이자 소비 가능한 콘텐츠로만 바라보는 데 그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도 “늑구를 상품화하는 흐름은 잘못된 방향”이라며 “대중의 인식이 이 수준에 머무르는 한 동물원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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