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북유럽의 모나리자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년경)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걸작으로 꼽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처럼 어두운 배경에 밝은 소녀를 대비해 존재감을 강조하고, 윤곽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스푸마토 기법을 활용해 ‘북유럽의 모나리자’로도 불린다. 눈썹과 속눈썹도 모나리자처럼 생략돼 있다. 네덜란드 황금시대는 17세기 네덜란드가 유럽의 무역, 과학, 예술을 주도한 시기로,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일상의 가치를 발견한 시대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1~1666),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등의 화가들이 활동했으며, 이전 세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신화나 성경 속의 거대 서사 대신 정물화, 풍속화, 풍경화 등이 유행했다.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소녀가 어깨 너머로 돌아보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왼쪽 가장자리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빛은 정면에서 모델을 비추는 듯 막 얼굴을 돌린 듯한 소녀의 이마와 양뺨, 턱을 비추고 등과 머리 뒤쪽에 그림자를 만든다. 빛은 정지된 실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라피스 라줄리(청금석)를 분쇄해 만든, 금보다 비쌌던 울트라마린 청색 안료를 사용한 동양풍의 푸른 터번과 노란색 옷의 강렬한 색감 대비가 돋보인다. 윤곽선 없이 살짝 벌이진 입술의 소녀는 짙은 황토색의 무거운 이국적 천 재킷을 입고 있다. 진주 귀걸이와 눈동자, 입술에 찍힌 하얀 점(하이라이트)은 페르메이르 특유의 섬세한 빛 처리를 보여주고 있다.
검정 배경과 밝은 안색 간 조명과 대비가 트롱프뢰유 효과를 만들어낸다. 트롱프뢰유(Trompe-l‘œil)는 프랑스어로 ’눈을 속이다‘라는 뜻으로,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입체감과 공간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관객이 실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미술 기법이다. 페르메이르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기법도 활용한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나 상자에 구멍을 뚫어 외부 이미지를 반대편 벽에 비추는 원리로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관찰됐으며, 16세기에는 화가들이 밑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널리 사용했다. 네덜란드 델프트의 ’페르메이르 센터‘에는 그가 어떻게 빛과 소실점,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했는지 재현돼 있다.
이 광학 프로세스를 통해 소녀의 이미지는 평평한 표면에 투영돼 더 작고 거꾸로 보인다. 페르메이르는 모델의 왼쪽 관자놀이에서 몸통으로 내려가는 그림자를 통해 이 효과를 강조한다.
마치 렌즈를 통해 맺힌 이미지의 섬세한 잔상을 캔버스에 옮긴 듯한 회화 기법은 그에게 ‘빛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은 특정 인물을 그린 초상화가 아니라, ‘두상’ 또는 ‘얼굴’을 일컫는 ‘트로니’(Tronie)라는 장르에 속한다. 고유한 의상을 입은 특별한 인물 유형을 대표하는 가상인물을 그린 가슴 높이의 초상화다. 인물의 사회적 지위보다는 표정 묘사와 의상 양식을 더 중시하는 그림이다. 모델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으며, 그의 딸이나 하녀일 것이라는 다양한 추측만 존재한다.
작품이 제작되었을 때 제목은 붙여지지 않았으며 ‘트로니’라고 불렸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터번을 두른 소녀’라는 이름이 붙여진 건 1970년대 중반부터다. 미국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이 출간되면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로 바뀌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현대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페르메이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슈발리에의 동명 소설은 2003년 피터 웨버 감독에 의해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제목으로 영화화됐으며, 미국의 팝 슈퍼스타 케이트 페리(Katy Perry)는 2010년에 ‘Pearl’(진주)라는 발라드를 발표했다. 또 소녀가 입는 드레스는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을 비롯한 여러 패션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줬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년)는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네덜란드 출신 화가다. 평생 델프트에서 살면서 작품활동을 해 ‘델프트의 페르메이르’(Vermeer van Delft)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아버지 라이니에르 얀츠(Reynier Jansz)는 안트베르펜 출신으로, 1611년 암스테르담으로 가 견직공으로 일했다. 페르메이르는 1653년 카타리나 볼너스와 결혼, 무려 11명의 아이를 낳았다. 생계를 위해 길드(화가조합)에 가입하면서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남아있는 작품은 40점이 채 안된다. 가정생활을 그린 소품이 대부분이며 성서 이야기, 풍경화 등도 남겼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외에 ‘우유 따르는 여인’, ‘회화의 기술’ 등이 있다.
‘우유 따르는 여인’(Milkmaid) 또는 ‘우유 하녀’는 젖소에서 우유을 짜고 버터와 치즈 같은 유제품을 만드는 하녀가 작은 토기 용기에 우유를 따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 네덜란드의 우유 하녀들은 혼자서 마굿간에서 일하는 한편 집안일도 해야 했다. 우유를 따르고 있는 여자 앞의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빵이 놓여 있다. 젊고 건장해 보이는 그녀는 빳빳한 리넨 모자, 파란색 앞치마를 입고 있으며, 작업복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다. 그녀의 뒤쪽 바닥에는 발 난로가 있고, 그 뒤로 큐피드와 막대기를 든 인물이 그려진 델프트 벽 타일이 보인다. 캔버스 왼쪽에창문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림이 완성된 정확한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출처에 따라 추정이 다르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1658년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1657년 또는 1658년에 그려졌다고 한다.

풍경화 중 ‘델프트 풍경’(View of Delft)은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작은 거리’, ‘델프트에 서 있는 집’(분실)과 함께 고향 델프트를 그린 세 점의 작품 중 하나로, 유일한 도시 풍경화다. 맨 오른쪽에는 로테르담 문이라는 중세 벽돌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두 척의 청어잡이 배가 있다. 로테르담 문은 델프트 남쪽에 있는 두 개의 문 중 하나로, 다른 하나는 그림의 중앙에 보이는 스히담 문이다. 로테르담 문과 스히담 문 사이에는 시계가 있는 다리가 있다. 스히담 문 뒤에는 길고 붉은 지붕이 있는데, 당시 병기고로 현재는 육군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들의 모습은 스히 강의 잔잔한 항구에 반사되고 있다. 왼쪽 하단에는 다섯 명이 로테르담, 스히담 또는 항구 델프트스하번으로 가는 여객선에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바지선 내부의 붉은 부분에 자신의 이니셜 ‘VM’을 그렸다. 바지선 오른쪽에는 두 여인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당시 전성기 네덜란드를 반영하는듯 평화로운 분위기가 넘친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페르메이르를 매우 존경했는데,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델프트 풍경’을 본 이후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쓸 정도로 특히 이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 ‘델프트 풍경’은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한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색조(色調)가 특히 뛰어나다. 적·청·황 등의 절묘한 대비로 그린 실내 정경은 마치 비 개인 날 북구의 새벽 공기를 떠올리게 한다.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조용한 정취와 정밀감이 넘친다. 43세의 나이로 요절한 페르메이르는 동 시대 활동했던 렘브란트처럼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와 형태의 여러 모습을 탐구했다.
미술 평론가 정연복씨는 “페르메이르의 작품에선 담담함과 절제로 인한 강력한 침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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