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알아본 ‘피카소 옆방 한국 화가’… 故 방혜자 회고전
방혜자 개인전

2024년 여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 중 하나인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5층.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와 같은 거장들의 방을 지나면 39번 방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방혜자(1937~2022)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국 출신인 그의 작품들을 최고 거장들의 옆에 나란히 놓은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그를 잘 몰랐다. 방혜자 작가의 국공립미술관 회고전이 열린 적조차 한번도 없었다.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는 작가 타계 4년만에 뒤늦게 열린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이 전시에는 작품 67점과 아카이브 200여점이 나왔다. 퐁피두센터 소장품 8점, 파리 시립 세르누치박물관 소장품 9점 등 절반 이상이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문학 소녀, 빛을 좇는 화가로
방혜자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경기도 고양군 능동(현재 서울) 아차산 아랫마을에서 7남매 중 가장 허약한 아이로 태어났다. 집 근처 개울가에서 햇빛이 물결 속 조약돌 위로 반짝이는 광경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그는 생각했다. ‘저 빛을 내 손으로 표현하고 싶다.’
6·25 전쟁 때 얻은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요양차 찾아간 수덕사에서 노스님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과 병고를 거치면서 어둠을 밝히는 빛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처음 관심을 가진 건 문학이었다. 학창시절 그는 랭보와 보들레르에 빠진 문학소녀였다. 경기여고 시절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반에 들어간 것이 방혜자를 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유영국과 김병기의 현대미술연구소에서 추상미술에 눈을 떴고, 서울대 미대에서 장욱진 교수 아래 그림을 그리며 빛을 표현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졸업 후 1961년 국비유학생 1호로 프랑스에 건너갔다.

이 무렵 작품이 ‘지심(地心)’이다. 경주 토함산과 석굴암을 다녀온 뒤의 인상을 추상으로 옮겼다. 황토색 계열이 두드러지고, 힘 있는 원색 대비가 화면에 역동성을 만든다. 1960년대 초 앵포르멜(비정형 추상) 경향의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퐁피두센터가 소장한 1960년작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갖고 있는 1961년작을 나란히 건다. 한국과 프랑스가 각각 소장한 같은 제목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다.
1968년부터 8년간 한국에 돌아와 머물며 방혜자는 한국의 전통에 더 깊이 이끌렸다. 이 시기 그는 닥지(한지)의 물성에 푹 빠졌다. 이후 그는 동양의 종이와 먹, 서양의 아크릴릭 물감, 프랑스 남부 지방의 붉은 황토를 한 화면에 섞기 시작했다. 1996년작 ‘우주의 노래’가 그 결과물이다. 화면을 가득 메운 황토와 먹이 깊고 넓은 세계를 그려낸다. 작가는 생전 “땅과 하늘이 서로 연결된 것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우주의 성운을 연상시키는 작업이 등장한다. 화실을 방문한 우주물리학자들이 방혜자의 작업을 보고 “우리가 최근 연구 장비로 포착한 것을 직감으로 표현했다”며 놀라워했던 일화가 전해진다. 화면 속 작은 점들은 우주를 이루는 생명의 씨앗처럼 보인다. 2011년작 ‘하늘의 땅’은 그 여정의 끝에 도달한 작품이다.
지름 179cm의 원형 캔버스에 닥종이를 고깔 모양으로 구겨 주름을 만든 뒤 펼쳐서 먹으로 원형을 그렸다. 원(圓)에는 무한이 담겨 있다는 작가의 철학이 담겼다. 이 작품은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소장하다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다.
경계를 넘는 작가
방혜자는 국가, 장르,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었다. 1967년 프랑스인과 결혼했고, 파리에서 프랑스인들에게 10년 간 서예를 가르치기도 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마지막까지 머물던 거실에는 방혜자의 유화가 걸려 있고, 김지하의 시화집 삽화를 그리는 등 문학인들과도 깊이 교류했다.
어린 시절 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파리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201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공모에 선정됐다. 세로 4m가 넘는 4개의 창에 빛과 생명, 사랑과 평화를 담았다. 그는 이 작품의 저작권료를 받지 않고 봉헌했다.

그런데 왜 한국은 이런 작가를 몰랐을까. 전시를 기획한 방초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작품이 독자적이라 특정 미술사조에 포함시키기 어려웠고, 이 때문에 미술사 서술에서 빠지기 쉬웠다”고 말했다. 생애 절반 이상을 프랑스에서 보냈기에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했다는 설명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1세대 여성 추상화가를 뒤늦게나마 집중 조명한 가치 있는 전시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관람료는 2000원.
청주=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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