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방탄복 입은 CEO와 100달러 노트북: LS일렉트릭이 '슈퍼사이클'을 잡은 비결

권순우 기자 2026. 4. 2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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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일렉트릭은 요즘 주식 시장에서 가장 주목 받는 회사 중 하나다. 미국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RK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전력기기는 줄서서도 못 살정도로 주문이 몰리고 있다. 고영경 교수는 <얼렁뚱땅 기업사>를 통해 LS일렉트릭의 역사를 짚어봤다.

LS일렉트릭의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지금 이름만 보면 LS그룹의 전력기기 회사로 보이지만 그 출발점은 1950년대 금성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금성사가 설립되면서 전기와 전자와 통신을 함께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1969년 전자 부분을떼어내며 금성통신이 됐고 다시 전기 부문을 분리해 1974년 금성계전이 세워졌다. 이 금성계전은 LS일렉트릭의 한 축이 된다. 당시 한국은 자체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 후지전기와 손잡고 기술 이전과 도입을 추진했다.

또 다른 축은 금성기전이다. 이 회사의 뿌리는 1955년 형광램프를 만들던 신광기업으로 올라간다. 신광기업은 미쓰비시와 합작해 신광전기를 만들었고 이후 자금난과 부도를 거치며 서울통상 계열에 인수돼 유니온전기와 서통전기로 이어졌다. 여기에 승강기 제조 회사까지 합쳐지며 전기와 기계와 승강기 기술이 결합됐다. 이후 금성사가 이 회사를 인수했고 1987년 금성기전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금성기전과 금성계전이 지금의 LS일렉트릭의 뿌리이며, 단순 전기 부품 회사가 아닌 근원이다.

1980년대 후반 럭키금성그룹은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 사업 구조 개편에 들어갔다. 이때 나온 것이 F88 프로젝트였다. 퓨처 1988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프로젝트는 흩어져 있던 전기와 전자와 통신 계열 사업을 재정비하려는 시도였다. 금성계전과 금성기전 등 관련 회사들을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금성산전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가전용 전기제품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전기제품이라는 뜻이다.

1995년 럭키금성이 LG로 이름을 바꾸면서 LG산전이 탄생했다. 지금의 LS일렉트릭으로 이어지는 정체성이 이때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금성계전의 전기 기술과 금성기전의 기계 시스템. 여러 산업용 사업이 하나의 산전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것이다.

그러나 통합 직후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전체 인원의 20퍼센트가량을 줄였고 엘리베이터, 물류 시스템, 주유기와 세차기와 차량 정비기기 같은 사업을 정리했다. 한때 LG산전의 중요한 축이던 승강기 사업도 이 시기에 떨어져 나갔다. 지금 LS일렉트릭이 종합 기계 회사가 아닌 이유다.

위기 속에서도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 한복판에 있었던 1999년 청주에 전력시험기술센터가 설립됐다. 전력기기 기업에서 시험센터는 단순 부속 시설이 아니다. 고압 전력기기를 해외에 팔려면 성능과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 자체 시험 설비를 갖추면 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해외 영업에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LS일렉트릭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내수 시장이 초토화 된 상황에서 사업을 위축 시킬 것이냐의 기로에서 해외 시장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람보팀이다. 이름 그대로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절박함에서 만들어진 해외 개척팀이었다. 항공권과 가방과 브로슈어 그리고 100달러짜리 노트북만 들고 제3세계 시장으로 나갔다. 쿠웨이트와 이란과 터키와 베트남과 중국 등으로 뛰어다니며 제품을 팔았다.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는 이라크다. 당시 이라크는 전후 복구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총격전이 벌어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위험 지역이라는 이유로 해외 기업의 최고위급 인사가 직접 협상장에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LS산전은 달랐다. CEO가 직접 방탄복을 입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고영경 교수는 이 장면이 회사 50년사에도 길게 기록된 인상적인 에피소드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비유럽 기업 최초로 8400만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큰 규모였고 이라크 전력 인프라 재건에서 LS산전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위험을 감수한 현장 영업이 기술만큼 중요한 경쟁력이 된 것이다.

베트남 진출도 이른 편이었다. 1998년 저압 배전반 라인을 준공하고 1999년부터 본격 가동했다. 중국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들어갔다. 선진국 시장에서 전통의 강자들과 직접 경쟁을 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했기에 제 3세계와 신흥국 인프라 시장을 먼저 공략했다. 이 과정에서 LS산전은 해외 프로젝트 수행 경험과 신뢰를 쌓았다. 훗날 선진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기반도 이때 만들어졌다.

내부적인 변화는 LG그룹의 계열 분리다. 구씨와 허씨 가문의 분리 과정에서 LG산전과 LG전선과 LG니꼬동제련과 가스 계열 등이 분리됐고 2005년 LS그룹이 출범했다. LS라는 이름은 리딩 솔루션이라는 의미를 내세웠다. LG산전은 LS산전이 됐다. 영어 이름은 LS Industrial Systems, 약자로는 LSIS였다. 이름을 지을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ISIS(이슬람국가)의 테러가 전 세계에 충격을 줬고, LSIS-ISIS가 연상을 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이름을 LS일렉트릭으로 바꾸게 됐다.

LS일렉트릭은 2007년부터 초고압 가스절연개폐장치 GIS 독자 개발에 나섰고 2009년부터 초고압 직류송전 HVDC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지금 전력망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기술들이 이미 이 시기부터 준비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2010년 부산 공장도 지어졌다. 전력기기 시장은 사이클이 매우 길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전력기기 시장에 기회가 왔지만,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 준비가 필요했다는 의미다.

LS일렉트릭은 저압과 중압과 고압에 이르는 전력기기 풀 라인업을 갖춰 왔다. 발전소와 1차 변전소와 2차 변전소와 배전망에 필요한 장비를 연결해 공급할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회사가 강조하는 것은 단품이 아니라 토털 솔루션이다. 그룹과 연계하면 소재가 되는 구리는 LSMnM, 전선은 LS전선, 권선은 에식스솔루션스, 배전반-변입기 등 전력기기는 LS일렉트릭이 담당하며 전력망 전체를 묶어서 공급할 수 있다. 
2015년 발표된 비전 2020은 전력 자동화와 스마트그리드와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전력망과 초고압 직류송전 등을 핵심 성장 축으로 제시했다. 지금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들이 이미 그때 회사의 중장기 전략에 들어가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고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전력망 고도화 흐름은 이미 감지되고 있었다. LS일렉트릭은 그 흐름에 맞춰 자신이 가진 기술을 확장했다.

LS일렉트릭의 장기 주가를 살펴보자. 2007년 1만원대였던 주가는 2024년까지도 2만원을 넘지 못했다. 지금은 27만원까지 올랐다. 전력기기 호황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급 부족이 심화된지 2년여가 지났지만 해소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병목 구조가 더 공고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공급 부족이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진 것은 시장이 예상한 것보다 전력망 병목이 훨씬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전력기기는 반도체처럼 단기간에 생산능력을 늘리기 어렵다. 기술 검증과 시험 설비와 인증과 트랙레코드가 필요하다. 공장을 짓는다고 바로 글로벌 고객이 사 주는 것도 아니다. LS일렉트릭이 지금 수혜를 받는 이유는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10년 넘게 준비한 자리에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LS일렉트릭의 성장 이야기는 LS그룹 전체의 에너지 인프라 전략과도 이어진다. LS전선과 LS마린솔루션과 LS일렉트릭 그리고 원자재와 제련 계열까지 연결하면 발전에서 송전과 배전과 해저케이블과 전력 솔루션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보인다. 결국 LS일렉트릭은 한국 산업사의 복잡한 계보를 지나 현재의 전력망 슈퍼사이클에 도착한 회사다. 가방 하나와 100달러짜리 노트북을 들고 해외 시장을 뚫던 람보팀의 정신과 방탄복을 입고 이라크 협상장에 앉았던 현장 영업과 10년 넘게 이어진 기술 투자가 지금의 주가와 실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산업의 기회는 갑자기 오지만 그 기회를 잡는 기업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