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미국도 손놓은 ‘탈화석연료’ 논의, 콜롬비아에서 불씨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수급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60여 개국 정부가 콜롬비아에 모여 ‘탈화석연료’ 논의를 시작했다. 전세계 ‘기후총회’에서 오랫동안 막혀 있던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ransitioning away from fossil fuel) 논의를, 의지 있는 정부·단체들이 자발적으로 키워가려는 시도다. 특히 탈화석연료는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24일(현지시각)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에서 ‘제1차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 국제회의’가 개막했다. 콜롬비아와 네덜란드 정부가 공동 주최하는 이 국제회의는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추진할 국가·지방정부·이해관계자 간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협약으로 묶인 회의가 아니라서 구속력 있는 결과를 도출하진 못하지만, 탈화석연료를 가속화할 제안을 마련하고 이에 동참하는 국가 간 연합을 구축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자는 취지다. 올해 기후총회를 공동 주최하는 튀르키예·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유럽연합과 남미 국가들, 태평양 섬나라들이 주로 참여하고, 캐나다, 나이지리아, 노르웨이, 브라질 등 일부 화석연료 생산국도 명단에 포함됐다. 미국, 러시아, 중국뿐 아니라 한국은 참가 명단에 없다.
그동안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회원국들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화석연료의 생산·소비를 줄인다는 취지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에 합의했으나, 지난해 열린 브라질 당사국총회(COP30)에서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파리협정’ 체제에서는 각국이 자체적으로 배출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기 때문에, 각국의 화석연료 생산과 소비를 규제할 근거와 수단이 없는 상태다.

‘화석연료 규제’로 힘 실은 콜롬비아
화석연료 산업은 이 제도의 대표적 수혜 분야로 꼽힌다. 데이비드 보이드 유엔 인권·환경특별보고관은 전세계에서 1만개 이상의 화석연료 관련 자산이 이 조항을 적용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 화석연료 관련 중재 판결의 평균 배상액(6억달러)이 비화석연료 분야의 5배에 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따르면, 2025년 신규 소송 중 석유·가스·광업 부문의 분쟁은 4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전년도 25%, 과거 평균치인 26%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안고 있는 콜롬비아는 현재 28건의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절차의 소송에 휘말려 있는데, 그중 16건이 화석연료 추출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환경 관련 저널 ‘더 에콜로지스트’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위험 때문에 콜롬비아는 화석연료 사용을 제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콜롬비아 정부도 지난해 ‘기후총회’에서 콜롬비아 국토의 약 42%를 차지하는 아마존 지역에서 향후 모든 대규모 석유 및 가스 채굴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첫 출범한 에너지 전환 전문가 패널
영국 가디언은 카메룬 출신 경제학자이자 기후금융 전문가인 베라 송웨, 독일의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소장이자 경제학자인 오트마르 에덴호퍼, 브라질 캄피나스주립대 소속의 에너지 전문가 질베르투 드 마르티노 잔누지가 이 패널의 공동 의장을 맡는다고 보도했다.
이 밖에도 화석연료 산업 축소에 따른 사회적 약자의 충격을 막아낼 공정한 전환, 화석연료 산업이 기대어 연명하고 있는 보조금 축소, 공공부문의 부채 해소, 국영기업이 주도하는 전환, 탄소 가격제와 에너지 세금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번 회의에서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미국-이란 전쟁 등 ‘시급한 경제적 필요성’
석탄·석유·가스에서 신속하게 벗어나도록 각국에 촉구하는 ‘화석연료확산금지조약(FTO) 이니셔티브’ 캠페인을 주도하는 체포라 버먼(캐나다 출신의 환경 운동가이자 작가)은 이번 전쟁으로 산타마르타 국제회의가 “긴급회의가 되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은 “기후 측면에서 이미 시급한 우선순위”였으나, 이제는 “시급한 경제적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가 의존해온 화석연료는 위험과 보상을 불균등하게 분배해왔으며,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이런 구조가 심화하면서 불평등과 빈곤, 기아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기후변화대응단체 ‘350.org’의 국제통화기금(IMF) 자료 분석 결과를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이 신속하게 정상화돼도 석유·가스 가격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6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고 보도했다. 공급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피해 규모는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의 파급 효과나 비료·식품 가격의 상승, 경제활동 감소 등이 빠져 실제 피해는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주요 석유 기업들의 이익은 급증한다. 영국 석유회사 비피(BP)는 중동 분쟁 여파로 석유·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올해 1분기 순이익이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350.org’의 최고경영자 앤 젤레마는 가디언에 “앞으로 주요 석유기업이 발표할 막대한 수익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백만 명을 빈곤에 빠뜨린 전쟁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최 쪽은 이번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세 가지 핵심 주제 중심의 보고서로 작성하게 된다. 첫 번째는 화석연료에 대한 경제적 의존으로부터의 극복, 두 번째는 화석연료 생산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등 에너지 수요·공급의 전환, 세 번째는 기후대응을 위한 국제협력 및 기후외교다. 뉴욕타임스는 28~29일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며, 주최 쪽은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이 올해 말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기후총회’(COP31)에 반영되길 희망한다고 보도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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