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조각가 민복진 타계 10주기 기획전 ‘스틸 라이프’는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걸까.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관장 이계영)의 기획전시실은 공간이 그리 크지도 않고 전시된 작품이 많지 않지만 충만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전시실에서 마주한 민복진(閔福鎭·1927~2016)의 조각작품들이 봄 햇살처럼 부드럽고 따사롭다. “민복진이 남긴 작품 속에 담긴 시간을 눈과 손으로 천천히 더듬어 보는 전시입니다. 하나의 조각이나 사물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머무는 시선 속에서 대상의 형태와 표면에 축적된 시간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기획자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전시실 한 벽을 빼곡하게 채운 관람객들이 그린 작품들이 이를 증명한다.
“나는 모자나 가족상을 만들면서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공간을 창출했다. 이 인간애적 조형물이 시대를 초월한 전달자적 표상이 돼 모두의 가슴속에 영원하기를.”
민복진이 추구한 정신이 깃든 작품을 음미하며 전시실을 둘러본다. 조각과 조각을 그린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림과 조각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일까. “조각을 먼저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이선경 학예연구원은 민복진이 홍익대 회화과에 입학했으나 조각가 교수 윤효중의 권유로 조각과로 전과한 사연을 들려준다. 이곳에 미술관을 설립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곳 장흥면이 민복진의 고향입니다. 2016년 유족으로부터 작품 420여점을 기증받아 2022년 3월 개관했습니다.”

■ 사랑을 보여주는 민복진의 조각
2층 상설전시실은 민복진의 대표작과 그 작품의 탄생 비밀까지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작품을 감상하기 전 조각가 민복진에 대한 기본정보를 다시 살펴본다. 윤효중에게 조각을 배우기 시작한 민복진은 홍익대 재학 중인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제2회 국전)에 ‘무제’를 출품해 입선하며 조각가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목우회 등의 단체 활동을 하며 국내에서 조각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그는 1979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르 살롱 le Salon’에 출품해 금상을 수상한다. 이를 계기로 해외 교류 조각 전시에 다수 참여하는 등 그 활동 반경을 넓혀 나간다.
동시대 미술가 대부분이 교직생활을 병행하며 활동했던 것과 달리 민복진은 전업작가로 평생 일관된 주제 의식 속에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한다. 조각가 민복진이 제작한 최초의 공공조형물은 1961년 고려대에 설치한 ‘4·18 학생혁명기념탑’이다. 이 밖에도 1969년 남산에 김경승과 함께 제작한 ‘김구 선생 동상’을 비롯해 ‘이승훈 선생 동상’(1974년)과 ‘매헌 윤봉길 의사상’(1975년), ‘고당 조만식 선생상’(1976년) 등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조각을 여러 점 제작한다. 민복진은 철사와 납 등을 사용한 시기를 제외하면 모자상, 가족상 등 ‘사랑’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일관성 있는 조형세계를 보여준 조각가로 명성을 얻었다.

열린 수장고에서 상설전 ‘두 손’을 마주한다.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민복진미술관에서 제작·지원한 정기훈의 영상작품 ‘두 손’(2025년)과 열린 수장고 내에 전시 중인 민복진 조각 90점이 어우러져 감상의 재미를 더해준다.
“상설전 ‘두 손’은 사랑, 가족, 포옹 등 민복진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가족인 두 사람이 각자 한 손을 사용해 찰흙으로 하나의 형태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입니다.” 개관 전부터 민복진의 예술세계에 깊이 빠져든 우수진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보니 한결 재미있다. 좌우 손의 주인이 다르다는 것도 설명을 듣고서야 발견한다.
2023년부터 열린 수장고의 미디어 월을 활용한 미디어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전시를 개최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협업은 공간에 변화를 주기 어려운 열린 수장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복진의 예술세계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해 전혀 새로운 느낌을 전달하는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매주 수요일마다 운영하는 가족 단위 관람객을 대상으로 웰니스 프로그램 ‘귀를 기울이면’도 훌륭하다.

■ 관람객과 어울리는 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함께 양주시의 문화 예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멋진 공간이다. 미술관은 2022년 개관한 이후 개관전 ‘민복진 사랑의 시대’를 시작으로 숨 가쁘게 달려 왔다. ‘무브망-조각의 선’을 시작으로 ‘민복진과 전뢰진’, ‘민복진 읽기’ ‘앉거나 서거나 누워 있는 I: 1950-60년대 해방세대의 인체조각’, ‘앉거나 서거나 누워 있는 Ⅱ: 1950~60년대 해방세대의 인체조각’으로 이어지는 기획전과 ‘집(HOME)’을 시작으로 ‘두 손’과 ‘기쁨’, ‘사이의 형태’로 이어지는 상설전은 조각과 잘 어울려 관람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24년 ‘포옹, 단단하고 부드러운’을 시작으로 진행하고 있는 야외 기획전 ‘고정수의 부드러운 조각 놀이터’로 이어지고 있다.
올 1월 시작된 민복진 타계 10주기 기획전 ‘스틸 라이프 Still Life’는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기획력이 뛰어나다. 민복진을 널리 알리기 위한 학술사업도 꾸준히 벌이고 있다. 학술대회를 개최했고 학술서 ‘민복진 연구’ 제1집과 제2집까지 발간했다. 조각 전문미술관이 드문 우리 현실에서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의 활발한 활동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음 달 9일(토)부터 기획전 ‘스틸 라이프’와 연계한 교육프로그램 ‘사랑을 카피하다’를 운영한다. “민복진 조각과 사물을 직접 관찰하고 그림을 그려 보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인체 및 정물 드로잉을 통해 형태와 비례,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전문 작가가 도와줍니다.”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두 사람이 강사로 참여해 관찰 중심의 드로잉 교육을 진행한다고 한다. 10월까지 수요일에 운영되는 가족 치유형 웰니스 프로그램 ‘귀를 기울이면’도 시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미술관의 단단한 의지를 보여준다.

■ 민복진의 깊이와 넓이
올해가 민복진 타계 10주기를 맞는 해이고 내년은 탄생 100주년이 된다. “이를 기념해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은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와 공동으로 ‘제1회 민복진 학술논문’을 공모합니다.” 선정된 논문은 보완 후 ‘2027년 민복진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라며 많은 참여를 요청하는 미술관의 바람을 전달한다.
“민복진은 어머니, 가족, 인류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추상과 구상을 절충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한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입니다. 평생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반복하고 탐구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민복진은 그의 삶과 예술을 통해 사람을 향한 믿음과 인류에 대한 긍정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그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본받아 미술관의 전문 기능을 강화하며 많은 시민이 미술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민복진에게 조각은 무생물인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이며 이 행위는 어머니와 아들이 맺고 있는 원초적 사랑과 같은 것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고 현재 우리의 삶에 던지는 사랑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민복진은 조각을 통해 인간에 대한 긍정을 표현한 작가로 관람객의 감동을 끌어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민복진의 예술을 충실히 전달하려는 미술관의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미술관 바로 옆에 조성한 장흥조각공원에서 다시 민복진의 작품들과 마주한다. 어머니와 가족의 사랑을 전하는 작품이 가득한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우리의 마음도 봄날의 산처럼 넉넉해질 것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경기일보 webmaster@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홍준표 “정권 망치고 출마 뻔뻔하기도 해…보수진영 요지경”
- “월 10만원씩 3년 모으면 1천440만 원”…‘청년내일저축계좌’ 신규 모집
- 호르무즈 한국 HMM 화물선 폭발…정부 “피격 여부 확인 중”
- 경기도 고유가 지원금 1차 73.7% 신청…지역화폐·현장 증가세
- [단독] 여주대 앞 전도 사고...시민·학생들 ‘제설함 지렛대’로 생명 구했다
- "눈치 보여 병가도 못 써"… 독감에 출근하다 숨진 유치원 교사 재해 심사
- 청와대 “북한 여자축구단 방한 환영…경기 지원 협조”
- “어린이날 선물 뭐 원할까?”…열어보니 뜻밖의 1위
- “한국 선박 공격받았다”…트럼프, 호르무즈 작전 참여 압박
- [단독] 의왕 아파트서 남편 흉기로 찌른 50대 아내 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