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비 받고 헌 설비는 중고 매각… 눈먼 돈 된 산재 예방 지원금

정부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낡은 설비를 교체하라며 6540억원을 들여 민간 기업들에 신규 설비를 지원했으나, 지원받은 기업 77%가 신규 설비를 챙겨놓고 낡은 설비도 그대로 쓰거나 다른 기업에 팔아치운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817억원을 들여 지원한 스마트 안전 장비는 60%가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산업재해 예방 사업을 고용노동부와 함께 점검한 결과, 이 같은 문제점이 확인됐다고 29일 밝혔다.
산업재해 예방 사업은 사업주들이 낸 산재보험료로 조성된 산재보험기금을 재원으로 시행되는 사업으로, 안전보건공단이 민간 사업장에 스마트 안전 장비를 지원하고, 위험·노후 설비 교체를 지원하며, 안전 컨설팅을 해준다. 매년 평균 1조원이 넘게 집행된다. 지난해 예산은 1조2931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2024년부터 6540억원이 들어간 노후·위험 설비 교체 사업의 경우, 2024년에 신규 설비를 지원받은 사업장 4111곳 중 933곳(22.7%)만이 기존 설비를 폐기했다. 나머지 3178곳(77.3%)은 기존 설비 또한 안전 조치 없이 계속 사용하거나, 다른 사업장으로 반출해서 계속 사용하거나, 다른 기업에 매각해, 노후·위험 설비 사용을 중단시키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설비보다 많은 설비를 지원받아, 설비 교체가 아니라 확충이 된 사업장도 여럿 있었다.
2023년부터 817억원이 들어간 스마트 안전 장비 지원 사업의 경우에는 지원된 장비 345개 가운데 207개(60%)가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거나, 안전 기능을 끈 채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 충돌 예방 장치의 80%, 근력 보조 수트의 76%, 스마트 전동 지게차의 64%, 인공지능(AI) 기반 인체 감지 시스템의 50%가 잘못 사용되고 있었다.
일부 기업은 스마트 안전 장비 지원 사업으로 나오는 지원금을 편취하기도 했다. A기업은 산업용 청소 로봇 판매 업체와 짜고, 이 업체로부터 실제보다 부풀린 가격에 로봇을 사들였다. 안전보건공단에는 위조한 세금 계산서를 내서 로봇 대금을 지원받았다. 판매 업체한테서는 부풀린 가격과 실제 가격의 차액 일부를 현금으로 되돌려받았다. B기업도 인체 감지 시스템 판매 업체와 짜고, 부풀린 가격에 시스템을 사들였다. 공단에는 이 시스템 제조와 설치에 들어간 재료비와 노무비를 부풀린 원가 계산서를 내고 시스템 대금을 받았고, 판매 업체로부터도 부풀린 가격과 실제 가격의 차액을 현금으로 되돌려받았다.
추진단은 A·B기업이 구매한 설비와 같은 종류의 설비를 사들이고 지원금을 받은 업체가 189곳 더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사 기관에 수사를 의뢰했다. 추진단은 A·B기업 등이 보조금 81건, 18억6000만원을 부정 수급했고, 이들로부터 제재 부가금을 포함해 94억원을 환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소규모 건설 현장 안전 시설 비용 지원 사업에서는 지원 대상이 아닌 현장에도 571건, 35억원이 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공사 금액을 축소하거나 하나의 공사를 여럿으로 쪼개는 수법으로 소규모 공사 현장인 것처럼 꾸며 지원금을 타낸 것이다. 여러 정부 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중복해서 받은 경우도 29건 있었다.
정부는 지원금이 새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노후·위험 장비 교체 지원 사업은 기존 장비가 폐기되는지를 확인하고, 안전 장비 지원 사업은 품목별 지원 상한액을 설정하기로 했다. 건설 현장을 지원할 때에는 공사 계약서를 확인하는 등 사후 관리 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추진단장인 김영수 국무1차장은 “정부는 이번 점검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그 이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해 위법·부적정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어 “산업재해 예방 사업이 산업 현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해소하고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빈틈없이 보호할 수 있도록 보다 효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