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공격서 유일 생존한 이란 수뇌부…강경·절제 외교 줄타기 [더 비저너리-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히잡완화·서방대화 ‘개혁’ 내세워 집권
최고지도자 은둔 속 권력 2인자 부상
“이란 혼란 원치 않지만 굴복은 없다”
강온전략 속 미국 패권적 태도 직격
‘선 안넘는 개혁파’ 제한적 권한 시험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게티이미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9/ned/20260429113817083yiza.jpg)
폭격의 그 밤, 이란 권력의 정점이 무너졌다. 그리고 지도부 공백 속에 단 한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마수드 페제시키안(71). 개혁파, 심장외과 의사, 그리고 지금은 ‘전쟁 속 대통령’.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공습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한 이후, 이란 수뇌부는 사실상 붕괴 상태에 빠졌다. 그 혼란 속 유일하게 살아남아 정권을 이끄는 인물이 바로 페제시키안이다.

지난 25일 열릴 것으로 기대됐던 미국과 이란의 2차 대면 협상은 결국 무산됐다. 양측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대치국면은 장기화하는 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의 대화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밝혔지만, 돌파구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은 이번 파키스탄 방문 결과에 대해 “종전의 실행 가능성에 관한 이란의 입장을 공유했다”면서 “미국이 외교에 진심으로 진지한지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역시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의 통화에서 “미국의 압력과 위협, 봉쇄 하에서는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핵심 쟁점을 둘러싼 양측의 ‘레드라인’ 충돌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 포기, 고농축 우라늄 회수, 호르무즈 해협 개방 등을 양보할 수 없는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해상 봉쇄 해제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며 대면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처럼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개혁파 출신인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외교적 선택지도 시험대에 올랐다. 강경 기조를 유지하는 이란 군부 및 보수진영과의 충돌 속에서 제한적 권한으로 종전협상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 강경한 보복을 예고하면서도 “혼란은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걸프 국가들을 향해서는 공격 중단과 유감을 표명했다. 전쟁과 외교, 강경과 절제 사이. 그의 메시지는 서로 다른 신호가 교차하며 복합적으로 읽힌다.
이란의 기존 보수 정권과는 결이 다르다. 개혁파 출신에, 덥수룩한 수염 대신 단정한 외모를 지닌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 그러나 지금 그는 누구보다 강경한 대응을 주도하는 지도자가 됐다.
최근 들어 그는 국제사회에 더욱 복합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는 휴전 만료를 앞둔 20일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의미있는 대화의 기초”라며 “이란 내부에서는 미국 정부의 과거 행태에 대한 깊은 역사적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수위를 조절했다. 그는 “최근 미국이 보내는 신호는 비건설적이며 모순적이다”라면서도 “그들은 이란의 항복을 원하지만, 이란 국민은 힘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확전을 피하면서도 군사적 대응 의지를 분명히 한 계산된 발언이다.
종전 협상에 대한 입장 역시 분명하다. “대화는 국제법의 틀 안에서만 이뤄질 것이다.” 이는 미국이 공격을 중단하고 국제 규범을 준수할 경우 협상 재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실제 그는 협상이 결렬된 직후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공정한 합의에 도달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미국의 이중잣대와 패권적 태도”라고 직격했다. 그러면서도 “균형 잡히고 공정한 합의를 위한 준비는 완전히 돼 있다”고 강조했다.
1954년 9월, 이란 북서부 마하바드에서 아제르계 아버지와 쿠르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페제시키안은 처음부터 ‘경계에 선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제르계 정체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란을 단일 국가로 바라봤다. 소수민족 권리 보장이 오히려 국가 통합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19세 시절, 그는 시스탄발루치스탄주의 빈곤 지역 자불에서 군 복무를 했다. 이 경험은 그의 시야를 넓혔고, 이후 정치적 문제의식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혁명 분위기가 고조되던 1977년, 그는 늦깎이로 타브리즈 의대에 입학했다. 이후 심장외과 전문의가 됐고, 그의 삶은 자연스럽게 수술실과 전쟁터를 오가게 됐다.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그는 의무병으로 활동하며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전쟁 이후에는 다시 학문으로 돌아가 타브리즈 의대에서 심장내과와 심장외과를 전공했고, 1994년에는 대학 총장급으로 승진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는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1997년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시절 보건부 차관으로 발탁되며 정치 인생을 시작했고, 2001~2005년에는 보건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2006년부터는 타브리즈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5선에 성공했다. 2016~2020년에는 의회 제1부의장까지 올랐다.
그는 일찍부터 대권에 도전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2013년에는 온건 개혁파의 ‘거두’인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의 출마를 고려해 후보 등록을 취소했고, 2021년 대선에서는 헌법수호위원회의 후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장관과 다선 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었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은 아니었다. 2024년 대선 당시에도 “구색 맞추기 후보”라는 평가가 많았고, 후보 6명 중 유일한 개혁파였음에도 당선 가능성은 높게 점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히잡 단속 완화, 서방과의 대화 복원, 경제 정상화 등 그의 공약은 민심을 움직였다. 변화에 대한 갈증이 결국 표로 이어졌고, 그는 결선투표에서 54.76%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페제시키안은 의사이자 교수, 전직 보건부 장관, 국회의원 출신으로 주요 의과대학과 연구기관을 이끈 경력을 갖춘 인물이다. 이란에서 가장 전문성이 높은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하버드대에서 보건 리더십 교육을 받은 이력도 있다.
그는 페르시아어를 비롯해 영어, 아제르어, 쿠르드어, 아랍어, 터키어 등을 구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TV 토론에서는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미친 짓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영어로 인용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심장 전문의 시절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마수드 페제시키안(왼쪽) [Trends 캡처]](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9/ned/20260429113817639qynn.png)
심장외과 의사 출신인 그는 민간 병원을 개업하지 않고 공공 병원과 국립대에서 근무해왔으며, 대통령 당선 직전까지도 주 1회 수술을 진행했다. 소박하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정장 대신 스포츠 재킷을 즐겨 입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이란을 보다 번영하고 사회적으로 더 개방적이며 서방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테헤란타임스 기고문에서는 외교 정책을 “기회 중심”이라고 설명하며 러시아·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유럽연합과의 협력에도 열려 있다고 썼다. 다만 미국의 압력에는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타브리즈 의대 총장 시절에는 농촌 지역에 600개 클리닉을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세계보건기구(WHO)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 보건부 차관과 장관을 역임하며 공공의료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특정 정당 소속은 아니지만 개혁파의 지원을 받아 정치적 기반을 구축했으며, 선거 과정에서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외무장관이 핵심 역할을 맡았다.
선거운동 기간, 그는 공동묘지를 찾았다. 묘비 사이를 천천히 걷다가 한 지점에서 멈췄다. 아내의 이름이 적힌 묘 앞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은 그의 아내 파테메 마지다에게 보내는 선거 영상에 담겼다. 내레이션은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이 그립다”며 “이 어려운 약속을 한 지금,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란 정치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그는 의대 동기였던 산부인과 전문의 아내와 결혼했다. 당시로서는 드문 자유 연애 결혼이었다. 두 사람은 학업과 혁명 시위, 자녀 양육을 함께하며 동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94년, 그가 외과의이자 병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가족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아내와 막내아들을 잃었다. 대선 기간 국영TV 인터뷰에서 사고를 묻자 그는 “사고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차가 뒤집혔다”라며 짧게 답했다. 기자가 기억에 대해 다시 묻자 그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후 재혼하지 않았다. 두 아들과 딸, 세 자녀를 홀로 키우며 집안일과 자녀 교육을 직접 맡았다. 화학 석사 학위를 지닌 딸 자흐라는 그의 정치적 동반자가 됐다. 대선 출마 당시 히잡을 쓴 채 그의 손을 잡고 함께 등장했고, 현재는 정치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그의 정체성은 단순하지 않다. 이란의 개혁가인가, 아니면 체제순응 인물인가.
1997년 보건부 차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페제시키안은 2008년부터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강경 보수 성향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부와 온건 성향의 하산 로하니 정부 시기를 모두 경험했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정권을 거치며 그는 체제 내부에서 균형을 잡는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2009년 아마디네자드 재선에 반대하는 시위 탄압을 비판한 바 있다. 다만 전반적으로는 체제 비판에 있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2022년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구금된 뒤 의문사하면서 촉발된 시위 국면에서도 그의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사건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경찰 폭력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나 히잡 의무화 자체를 폐지하겠다고는 밝히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부 비판론자들은 그를 개혁가로 보지 않기도 한다. 과거 대학 총장 시절 여성들에게 히잡 착용을 요구했던 이력 역시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그는 보수 강경파였던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 사망 이후 강경파 복귀를 막을 대안으로 자신을 내세웠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를 두고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개혁파”라고 평가했다. 결국 페제시키안은 체제 밖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인물이 아니라, 체제 안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정치인이라는 얘기다.
지난달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아들 유세프 페제시키안(44)이 온라인에 공개한 일기가 주목을 받았다.
유세프는 “전쟁 이후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대화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이후, 이란 지도부가 신변 우려로 모습을 감춘 뒤 부친을 직접 보거나 연락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반(反)이스라엘 집회 현장을 찾아 잠시라도 아버지를 만나려 했지만 이마저도 무산됐다고 덧붙였다.
물리학 박사 출신인 유세프는 현재 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대통령의 정치 고문을 맡고 있다.
그의 일기에는 이란 지도부 내부 분위기에 대한 묘사도 담겼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 등 주요 인사들이 사망한 상황에서, 그는 전쟁 6일째였던 3월 초 “일부 정치인이 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다”고 적었다.
또 그는 부친의 신변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우리 모두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심지어 남은 임기 2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는 심경도 내비쳤다.
보복 공격과 관련한 고민도 솔직히 드러냈다. 그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우방국 내 미군 기지를 공격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며 “그들이 우리의 처지를 이해해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유세프는 약 1년 전부터 텔레그램에 일기를 올려왔으며, 전쟁 이후에는 거의 매일 글을 게시하고 있다.
이란은 최고지도자가 국가원수로서 군, 사법부, 국영 방송 등을 통제하는 신정 체제다. 대통령은 그 아래에서 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고위 인사를 임명하는 ‘권력 2인자’이다. 때문에 안보와 군사 분야에서는 최고지도자와 의회의 견제를 받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란은 이같은 전통적인 권력 질서가 흔들리는 국면에 놓여 있다. 부친의 사망으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공개 행보를 사실상 중단한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지도자의 공백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란 정치 전반에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더 이상 단순한 ‘2인자’에 머물지 않는다. 공식적인 권력 서열은 변하지 않았지만, 실제 정치와 외교의 전면에 서 있는 인물은 페제시키안이기 때문이다.
전쟁 대응 메시지, 외교적 신호, 에너지 문제까지. 지금 이란의 대외적 얼굴은 사실상 페제시키안에게 집중돼 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강경한 대응을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개혁과 개방을 약속한 정치인으로서 변화에 대한 기대에도 답해야 한다.
전쟁을 관리하면서도 확전을 막아야 하고,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설득해야 한다. 권력은 제한돼 있지만, 책임은 오히려 더 커진 것이다.
결국 지금 이란 전쟁의 향방은 ‘보이지 않는 최고지도자’와 ‘전면에 나선 대통령’ 사이, 그 미묘한 균형 속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정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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