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홀에서의 말러 '부활'을 오롯이 소환해 준 무지향 스피커
무지향 스피커로 완성한 말러 교향곡 2번
데이비스 심포니 홀 그대로 소환한
입체적인 사운드의 MBL 스피커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말러
미국 콜로라도, 덴버를 거쳐 샌프란시스코까지 들렀다 귀국하는 여행이었다. 미국의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 YG 어쿠스틱스를 방문한 뒤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저녁에 공연을 예약해 둔 터였다. 낮에 이런저런 일을 보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뒤 드디어 공연 시간이 가까워졌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여행 경로 중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데이비스 홀에서 열리는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우연치고는 운이 좋았는지 여행 일정에 딱 맞게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말러 교향곡 2번 공연이 있었다.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저녁 7시 30분 데이비스 심포니 홀(Davies Symphony Hall)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심포니(San Francisco Symphony)의 말러 교향곡 제2번 《부활》 연주는 단순한 정기 공연이 아니었다. 에사-페카 살로넨(Esa-Pekka Salonen)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음악감독으로서의 마지막 무대였다.
이 공연은 살로넨 재임 기간의 정점이자, 코로나로 인해 단축된 그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감정적으로 강렬한 이별의 순간이었다. 이날 공연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 연속 시리즈의 마지막 날로, 살로넨이 지휘봉을 내려놓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관객들은 연주 후 “Don’t Go!”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보냈고, 무대는 감동과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

부활의 탄생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다단조 《부활》은 19세기 후반 낭만주의 교향곡의 정점에 우뚝 선 기념비적 대작이다. 1888년부터 1894년까지 7년에 걸친 긴 산고 끝에 완성된 이 작품은 1895년 베를린 초연 당시부터 청중을 사로잡았으며, 말러 생전에 그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큰 인기를 누린 곡 중 하나가 되었다. 방대한 스케일에 더해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성악의 결합,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철학적 여정은 이 곡을 단순한 음악이 아닌, 한 인간의 존재론적 고백으로 승화시킨다.
말러는 이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 무의미와 구원이라는 근원적 질문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제1악장은 원래 독립 교향시 《Todtenfeier》(장례 제전)로 구상되었다. 교향곡 제1번 《거인》의 영웅이 죽은 뒤의 장례를 그린 이 악장은, 베토벤적 드라마와 바그너적 긴장감을 융합하며 “죽음 뒤에 삶은 있는가”라는 절규를 폭풍처럼 쏟아낸다. 이후 1894년, 멘토 한스 폰 뷜로의 장례식에서 들은 클로프슈토크의 시 《부활》이 번개 같은 영감을 주었다. 말러는 이 시를 일부 인용하고 나머지 가사를 직접 써서 제5악장을 완성함으로써, 절망의 심연에서 희망과 영원한 부활로 치솟는 거대한 아치를 그려냈다.
초기 프로그램 노트에서 말러는 작품의 서사를 상세히 밝혔으나, 후에 이를 철회하며 “이 음악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에 관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베토벤 제9번 이후 교향곡에서 성악을 본격 도입한 최초의 사례로서, 순수 관현악으로 시작해 독창과 대합창으로 절정을 이루는 구조는 교향곡 형식의 혁신적 확장으로 평가된다.

제1악장 ‘Allegro maestoso’는 강렬한 현악 트레몰로와 함께 시작되는 장례 행진곡이다. 소나타 형식 안에서 죽음의 공포와 존재의 물음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청중을 숨 막히게 하는 압도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제2악장 ‘Andante moderato’는 부드러운 왈츠 리듬이 감도는 목가적 회상이다. 죽은 자의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듯한 이 악장은 제1악장의 암흑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말러는 연주자들에게 1악장이 끝난 후 최소 5분의 침묵을 요구할 만큼 그 대비를 중시했다.
제3악장 ‘In ruhig fließender Bewegung’은 《성 안토니우스의 물고기에의 설교》 가곡을 바탕으로 한 스케르초다. 세상의 헛된 움직임을 아이러니하게 풍자하며, 삶의 공허함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제4악장 ‘Urlicht’는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가져온 알토 독창으로, 소박하면서도 깊은 신앙의 빛을 코랄처럼 노래한다. “나는 하느님께로 가고 싶다”는 갈망이 제5악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영적 다리 역할을 한다.
제5악장은 작품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다. 스케르초의 잔향 속에서 오케스트라가 거칠게 폭발한 뒤, 합창과 소프라노, 알토 독창이 “Aufersteh’n, ja aufersteh’n!”(부활하리라, 정말 부활하리라!)을 외친다. 말러가 직접 쓴 가사와 함께 지진 같은 혼돈, 최후의 심판을 지나 사랑과 빛으로 모든 것이 구원받는 장대한 피날레를 펼친다. 오르간, 대합창, 무대 안팎의 금관과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공간적 웅장함은 청중을 초월적 환희로 이끈다.
전체적으로 죽음, 회상, 공허, 소망, 부활이라는 여정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인간 영혼의 필연적 상승을 음악적으로 구현한 걸작이다. 4관 편성을 기반으로 한 대편성 오케스트라에 알토·소프라노 독창, 혼성 합창, 오르간이 더해진다. 특히 제5악장에서의 오프스테이지(Off-stage) 악기 배치는 ‘소리의 거리’라는 독창적 효과를 창출하며, 청중에게 신비롭고 광활한 공간감을 선물한다. 다단조의 어둠에서 장조의 찬란한 빛으로 승화되는 조성 구조는 작품의 철학적 메시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무지향 스피커로 듣는 부활
전반적으로 살로넨은 말러의 철학적 깊이를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이고 투명한 사운드를 강조했다. 오케스트라의 정밀함과 열정이 조화되어, 2022년 같은 지휘자의 이전 《부활》 공연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살로넨의 이별이 더해지면서 작품 본연의 ‘죽음과 부활’ 테마가 개인적, 예술적 작별과 겹쳐 더 큰 감정적 무게를 실었다. 개인적으로 살로넨의 스트라빈스키 작품을 감명 깊게 들어왔고 오디오 평론에서도 종종 애청하는데 말러 작품은 또 다른 세계였다.
데이비스 홀의 음향 특성도 한몫했다. 넓고 투명한 사운드스테이지가 오프스테이지 효과와 대합창의 ‘소리의 거리’를 생생하게 전달해, 청중에게 콘서트홀 중앙이 아닌 전체 공간 속에 둘러싸인 듯한 몰입감을 주었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와 나의 시청실에서 듣는 말러 2번은 밋밋했다. 해상도는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데이비스 홀에서의 그 가슴 벅찬 감동을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말러 등 교향곡을 나의 공간에서 제대로 들려줄 스피커를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몇 달간 다양한 스피커를 체험하고 리뷰하던 즈음이었다. 데이비스 홀에서의 기억은 조금 옅어지고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와 안주하게 될 즈음 말러 2번을 다시 소환시켜주는 스피커를 만났다. 바로 독일의 무지향 스피커 MBL이었다.

MBL의 Radialstrahler 111F는 360도 전방향 방사 특성을 가진 독특한 드라이버를 사용한다. 이는 기존 지향성 스피커와 달리 직접음과 반사음의 비율을 콘서트홀처럼 자연스럽게 재현하며, 스피커가 ‘사라지는’, 마법을 보여준다. 말러 제2번 같은 대편성 관현악 녹음과 결합하면 과연 어떤 사운드가 재현될까? 과연 데이비스 홀에서의 그런 현장감과 가슴 벅찬 다이내믹스를 나의 시청실에서도 경험할 수 있을까?
우선 제5악장의 오프스테이지 브라스와 합창이 무대 뒤 멀리서 울려 퍼지는 듯한 깊이와 거리감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무지향 특성 덕에 사운드가 방 전체를 채우며, 청중에게 ‘콘서트홀 중앙’이 아닌 ‘홀 안 전체’에 둘러싸인 듯한 몰입감을 준다. 기존 스피커에서 자주 느껴지는 ‘평면적’ 한계를 넘어, 높이, 너비, 깊이가 더욱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말러의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한 덩어리로 어우러지면서도 개별 악기의 디테일이 살아난다. MBL의 코히어런스는 일반적인 스피커와 완전히 차별화된다. 현악, 목관, 금관, 타악의 층위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하나의 살아 있는 소리’처럼 느껴지게 한다. 특히 피날레의 지진 같은 혼돈과 빛의 승화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 압도적이다.
극단적 다이내믹 변화가 왜곡 없이 전달되며, 깊은 베이스(팀파니, 현악의 저음, 오르간)가 시청실 전체를 울리며 물리적으로 가득 메우는 것이 느껴진다. 무지향 방사로 인해 저음이 ‘쌓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퍼져, 콘서트홀의 공명감을 더 가깝게 재현한다.
한편 스위트 스팟 의존도가 감소하는 것도 분명한 강점이다. 방 어디에서 들어도 균형 잡힌 사운드스테이지를 즐길 수 있어, 여러 사람이 듣는 경우에도 어색하지 않다. 소리와 음악에 대한 민주주의랄까?

샌프란시스코에서 들었던 그 드넓고, 하늘이 열리는 듯한 공간감이 MBL의 무지향 철학과 만나는 순간은 여지없이 짜릿했다. 단순히 ‘정확한 재생’을 넘어 콘서트홀에 앉아 있는 듯한 환상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사운드였다.
제1악장에선 장례 행진곡의 어둠과 존재론적 절규가 폭풍처럼 몰아쳤고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현악과 금관이 만들어내는 다이내믹 레인지가 압도적이었다. 이어 중간 악장들, 특히 제2악장의 따뜻한 회상과 제3악장의 아이러니한 공허함이 섬세하게 대비되었으며, 제4악장에서 알토(메조) 독창은 깊은 영적 울림을 주었다.
제5악장에선 오프스테이지 브라스와 대합창이 시청실 공간을 가득 채우며, 지진 같은 혼돈을 지나 사랑과 빛으로의 부활을 웅장하게 그려냈다.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블렌딩, 공간감이 최후의 환희로 공간에 일렁였다.
물론 MBL은 방의 음향 처리와 앰프 매칭이 중요하며, 가격대가 높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대편성 낭만주의 교향곡, 특히 말러를 홈에서 최대한 실감나게 즐기고 싶은 애호가에게는 최적의 조합 중 하나다. 실제로 들어보면 “스피커가 사라지고 음악만 남는다”는 평가가 실감 날 것이다.
잊혀지지 않을 기록
이 공연은 살로넨 시대의 마무리이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보여준 최고의 역량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이 “아쉬운 이별”이라며 샌프란시스코는 떠나는 살로넨을 아쉬워했다. 살로넨은 말러 제2번을 통해 죽음의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자신의 지휘 인생 한 챕터의 종결과 자연스럽게 연결지었다.
2025년 6월 14일 밤, 데이비스 홀은 말러의 음악이 가장 강렬하게 살아 숨 쉬던 순간이었다. 구조, 열정, 공간감, 감정의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잊히지 않을 《부활》 공연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음악뿐 아니라 음향적 기준을 다시 정립하게 만든 자리였다.

오디오 평론가 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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