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독주 흔든 UAE...단기 고유가, 장기 공급 경쟁

이병철 2026. 4. 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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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아랍에미리트(UAE)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를 전격 선언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중동 내 에너지 주도권 구도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수십 년간 국제유가 조절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OPEC의 영향력도 약화되면서 산유국 간 점유율 확보를 위한 가격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 OPEC의 감산 중심 가격 결정 구조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만큼 이번 탈퇴 선언은 글로벌 원유 시장의 구조 변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유가는 단기적으로 제한적 영향을 받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경쟁 심화에 따라 하락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OPEC 균열 현실화…UAE 탈퇴의 무게감

UAE는 28일(현지시간)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이란 전쟁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OPEC 탈퇴를 선언했다. OPEC은 산유국들이 생산량 조절을 통해 국제유가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현재 12개 회원국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19년 카타르, 2020년 에콰도르, 2024년 앙골라가 OPEC을 탈퇴했지만 UAE의 이탈은 무게감이 다르다. UAE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에 이어 OPEC 내 산유량 3위 국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900만~1000만배럴, 이라크는 400만~450만배럴, UAE는 300만~350만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UAE 비중은 OPEC 전체 산유량의 약 12%에 달한다.

사우디와 다른 길…경제 전략도 갈렸다

UAE는 그동안 중동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에 경제·에너지 주도권 측면에서 꾸준히 도전해왔다. 특히 원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금융, 관광, 물류,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며 경제 구조 다변화에 집중해왔다.

이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고유가 기반 경제 구조와 달리 저유가 국면에서도 견딜 수 있는 체질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을 앞세워 산업 다변화에 나서고 있지만 국가 재정과 성장에서 원유 가격 의존도가 여전히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양국은 원유 정책에서도 차이를 보여왔다. 두바이에 본사를 둔 원자재 조사기관 아거스미디어의 수석 분석가 바샤르 엘할라비는 "사우디아라비아는 향후 100년간 석유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UAE는 그런 절박함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분석했다.

이란 전쟁이 키운 균열…안보 전략도 엇갈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균열을 더욱 키웠다. UAE는 전쟁 발발 이후 이란의 직접 공격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로 꼽힌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8일까지 한 달 동안 드론 2256기와 미사일 563기가 UAE에 떨어지며 전쟁의 최전선에 섰다.

이 과정에서 UAE는 역내 공동 안보 체제의 한계를 절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UAE 정부 관계자들은 역내 다자기구 대응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이란에 대해 보다 강경하고 일관된 공동 대응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는 의미다.

결국 전통적 아랍권 연대보다 실질적 안보 제공자와의 협력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국·러시아와 관계를 넓히고 있지만 UAE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며 기술·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단기 고유가·장기 하락 압력…국제유가 향방은

단기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공급 확대 효과가 제한돼 국제유가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걸프 지역 원유 수출이 해협 통항 차질로 제약받고 있어 UAE가 증산에 나서더라도 실제 수출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유가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화되면 UAE는 생산 할당에서 벗어나 하루 450만배럴 이상까지 증산할 여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최근 줄어든 글로벌 원유 재고를 빠르게 채우며 공급 부담을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더 큰 변수는 OPEC 내부 결속 약화다. 핵심 산유국인 UAE의 이탈은 다른 회원국들의 추가 탈퇴 가능성을 키우고 감산 합의 이행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 강세를 유지하겠지만 전쟁 종료와 호르무즈 정상화 이후에는 공급 확대 기대 속에 점진적인 하락 흐름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랍에미리트(UAE) 국영 석유회사 아드녹이 소유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무바라즈호. 이 선박이 최근 이란 전쟁 발발 이래 처음으로 LNG를 가득 실은 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사진=뉴시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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