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과 맛 사이,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간 [히데코의 힐링을 주는 레시피]

“엄마, 이것 좀 봐. 이 조합 어때?”
어릴 때부터 혼자 하는 패션쇼를 좋아했다. 중학생이던 나는 내 방의 작은 옷장에서 마음에 드는 치마와 원피스, 블라우스, 스웨터, 타이즈와 양말까지 꺼내어 엄마의 화장대 거울 앞에서 이것저것 조합을 바꿔가며 입어보곤 했다. 십 대 시절, 그곳은 나의 무대였다. 뭔가 어색하다고 느껴지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엄마에게 달려가 확인을 받았다.
“어머, 괜찮네. 엄마 스카프, 가운데 장롱 문에 걸려 있는 거 빌려줄 테니까 목에 한번 둘러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그런 거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라는 잔소리를 하신 적은 없었다. 재수를 하던 해 봄, 가족이 이사한 새집에서는 내 방에 전신 거울을 놓아주었다.
열아홉이 되자 더 이상 엄마에게 “어때?”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신발장에서 엄마의 힐을 슬쩍 꺼내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내 코디에 맞춰보곤 했다. 꽤 괜찮았다. 다음 데이트에는 이 차림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엄마 몰래 하루 종일 신고 돌아다닌 적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하이힐에 발이 까져도, 그날 밤은 말없이 요오드팅크를 발랐다.
혼자하는 패션쇼가 즐거웠던 이유
나는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멋내기를 좋아한다. 블라우스에 스웨터, 재킷, 코트, 팬츠, 그리고 스카프와 머플러까지, 겹쳐 입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배운 적 없이 시작한 혼자 하는 패션쇼는 소재와 무늬, 색과 디자인의 조합을 시험해 보며 ‘멋내기’라는 단순해 보이지만 어려운 기술을 익혀가는 긴 연습이기도 했다.
독일 유학 시절, 스페인에서의 자취 생활, 서울에서의 하숙 생활, 그리고 결혼 후에도 그 습관은 계속되었다.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었고, 유학 중에 좋은 옷을 살 여유도 없었다. 스페인에서도 스스로 꾸려나갔고, 한국에서 결혼한 뒤에도 회사원인 남편에게 비싼 옷을 사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대학의 시간강사나 번역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가끔 한 벌 사는 정도였다. 가족과 해외여행을 가도 면세점에서 명품을 사는 일은 없었고, 여행지에서 만난 옷 한 벌을 소중히 입어왔다. 좋은 옷만 입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혼자 하는 패션쇼로 길러온 감각을 믿고, 옷장에 단 한 벌뿐인 좋은 재킷이나 원피스에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의 셔츠나 스웨터를 매치했다. 타이즈나 신발, 양말에는 조금 더 돈을 써서 균형을 맞췄다. 그런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은,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단품만으로는 멋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조합이다. 좋은 옷을 입으면 눈에 띌 수는 있지만, 눈에 띄는 것이 곧 멋은 아니다.

결혼 후에도 한동안 이어지던 셀프 패션쇼를, 요즘은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 입어오던 옷에 문득 이질감이 느껴져서다.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오직 나만의 감각. 소재 때문인지, 형태 때문인지, 색 때문인지. 환갑을 앞둔 나이의 무게를 이런 데서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해외에 나가면 반드시 입어보고 싶은 옷을 만났는데, 몇 해 전부터는 좋아하는 스페인에서도,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찾기 쉬운 도쿄에서도 ‘이거다’ 싶은 한 벌을 만나지 못했고, 멋내고 싶은 마음도 어딘가에 두고 온 듯했다.
그러던 중 가나자와에서 한국 요리 교실을 열었을 때 만난 아츠코 씨가 내 안에서 잠들어 있던 감각을 다시 깨워주었다. 엄마는 하던 말이 있다. “멋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세야. 무엇을 입든 등을 곧게 펴고 당당하게 걸어야 해." 아츠코 씨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멋진 사람이란, 자신이 믿는 아름다움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코트와 바지는 브랜드를 단정할 수 없었지만, 마치 그녀를 위해 맞춘 한 벌처럼 보였다. 2년 전, 어머니의 1주기를 맞아 가나자와를 찾았을 때, 남성복 원단으로 만든 하프 팬츠 차림의 그녀를 다시 만났다.
영국의 트위드 원단으로 제작된 하프 팬츠와 재킷의 조합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예전에 엄마가 사주신 니커보커즈를 좋아해 자주 입었고, 한국에서도 물려받은 캐서린 햄넷의 승마 바지를 엉덩이 부분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입었던 적이 있을 정도다.
“그 하프 팬츠, 어디에서 맞추셨어요?”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녀는 다른 두 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공유하는 테일러메이드(맞춤복)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데, 그 하프 팬츠도 그곳에서 맞춘 것이었다. 이 만남을 계기로 가나자와에서 도쿄로, 그리고 서울로 그 인연이 이어졌고, 지난해부터 시작된 서울의 아틀리에 쇼는 다음 달이면 벌써 다섯 번째를 맞는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편안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던 나에게 이 만남은 ‘나다운 기준’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한 벌을 만드는 것. 시간을 초월하면서도 그 사람답게 빛나는 차림. 그것이 그들의 철학이다.
멋이란 외모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내가 믿는 ‘아름다움’을 몸에 입는 일이다. ‘아름다움’은 사람을 살아나게 한다. 그렇기에 멋은 삶에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환갑이라는 말에 어딘가 우울함을 느끼고 있던 나 역시, 이 만남을 통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되찾았다.
식(食)도 나만의 기준이 중요하다
이십 대 후반부터 시작된 서울 생활은 ‘식(食)’이 중심이었다. 앞으로는 ‘의(衣)’와 ‘식(食)’을 오가며 새로운 표현을 찾아가고 싶다. 중요한 것은, 닮고 싶은 것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따라 해보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나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테일러메이드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것만 조금씩 사며 가짓수를 줄여가고 싶으면서도, ‘낭비라는 이름의 저금’을 계속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쓸모없어 보였던 것들 속에 야말로, 시간이 지나 나를 지탱해 주는 감각과 기억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작은 축적일 것이다. 낭비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그때그때 마음이 움직인 것들을 비교적 솔직하게 손에 넣어왔다. 돌아보면 그것들은 모두 지금의 나를 이루는 감각의 어딘가를 조용히 떠받치고 있다. 이유를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에 도움을 받아왔다는 실감이 있다.

그것은 아마 ‘식’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선보다 고기를 좋아한다는 코크시넬의 세 사람에게, 나는 지난 1년 동안 서울에서 가능한 한 다양한 한국 음식을 맛보게 했다. 그들이 특히 맛있다고 했던 한 가지는, 나의 한국 요리 스승인 예바라기 선생님이 ‘한국의 미’를 소개하고 싶어 함께 방문했을 때 아침 식탁에 올랐던 ‘잣국수’였다.

처음 온 서울. 폭염과 계속된 외식으로 지쳐 있던 그들은 선생님이 내어주신 한 그릇에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쿠튀리에 호시 씨는 “아아,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면, 그런 기분이겠네요”라고 조용히 말했다.
얼음을 띄운 차가운 한 그릇. 가늘게 뻗은 면. 부드러운 잣의 향. 그때의 고요함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같은 음식이라도 작은 차이로 받는 사람의 마음은 달라진다. 맛이나 재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다듬어진 한 그릇이 몸으로 스며드는 순간이 있다.

옷을 갖춰 입을 때에도, 자신을 위한 일이지만 동시에 어딘가에서 상대를 의식하게 된다. 음식도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마지막에 맛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예바라기의 따뜻한 잣국수 레시피를 소개하고자 한다. 더운 계절에는 믹서로 간 국물을 끓이지 않고 냉장고에서 충분히 차갑게 식힌 뒤 얼음을 띄워 먹는다. 간은 여름에는 조금 더 강하게 하는 편이 더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
잣 70g
소면 1인분(80g)
물 250ml
소금 1/4작은술
오이 1/5개, 소금
잣 약간
1. 잣과 물, 소금 한 꼬집을 믹서기에 넣고 곱게 갈아준다.
2. 오이는 얇게 채로 썰고 소금에 절인다. 물기가 생기면 쭉 빼고 고명으로 만들어 놓는다.
3. 끓는 물에 국수를 삶는다. 소면을 넣고 끓어오르면, 찬물을 조금 넣고 다시 한번 끓으면 불을 끄고 흐르는 찬물에 헹군다.
4. 갈아 놓은 잣국물을 냄비에 붓고 데운다.
5. 그릇에 면을 담아 고명을 올리고 잣국물을 붓는다.
*Tip
여름에 먹을 때는 4번을 냄비 대신에 냉장고에 두고 차갑게 해서 먹으면 된다. 겨울에 오이가 차갑게 느껴진다면 잣을 올려서 담백하게 드시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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