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의 샤넬과 이멜다의 페라가모···‘명품홀릭’ 영부인 평행이론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이윤정 기자 2026. 4. 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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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小騷)월드’: 소소하게 소란스러웠던 세계 이야기를 전합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통일교 금품수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건희 여사가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선고를 듣고 있다. 김 여사는 이날 1심보다 무거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법정은 때때로 한 시대의 욕망을 가장 선명하게 기록한다. 주가조작, 금품수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건희 여사의 항소심 판결 역시 그랬다. 권력 주변을 맴돌던 사치와 청탁의 메커니즘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었는지를 법원이 적나라하게 확인해 줬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징역 4년과 벌금 5000만원, 추징금 2094만원, 그리고 고가 목걸이 몰수를 선고했다. 1심에서 무죄로 선고된 800만원짜리 샤넬 가방까지 모두 유죄로 판단됐다. 한국 사회가 묵인해 온 명품 선물과 청탁의 결탁 구조를 분명히 한 것이다.

김 여사가 뇌물로 받은 명품들은 이 시대 사치 문법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현금처럼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가치를 알아보는 브랜드,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영향력 행사를 기대하며 건네지는 물건들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수수된 물품은 샤넬 가방 3점과 구두, 그리고 6200만~6300만원대로 알려진 그라프 목걸이였다.

김건희 여사가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샤넬 제품. 샤넬 홈페이지 갈무리

검은색 체인 장식 가방은 샤넬 클래식 플랩백 블랙 램스킨으로 추정됐다. 샤넬을 대표하는 아이콘 제품으로, 당시 기준 약 800만원 안팎이었다. 노란색 제품은 로고 장식이 강조된 샤넬 WOC(월렛 온 체인) 미니백 계열 한정판으로 추정됐으며, 리셀 시장에서는 1000만원 안팎에 거래되는 모델로 거론됐다. 흰색 가방은 유광 램스킨 소재의 샤넬 19 핸드백으로, 공식 가격 기준 약 1050만원 수준이었다.

이들 제품은 공통적으로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오르는 대표적 럭셔리 자산으로 통한다. 샤넬은 매년 또는 수시로 가격 인상을 단행해 왔고, 클래식 플랩백처럼 인기 모델은 몇 년 사이 수백만원씩 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정판이나 단종 모델은 오히려 중고 시장에서 웃돈이 붙기도 한다. 선물로 건네는 순간에도 비쌌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유지되거나 오를 가능성이 큰 물건들이었던 셈이다.

2022년 6월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만다린 오리엔탈 리츠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간담회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김건희 여사가 반클리프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다이아몬드 하이주얼리 브랜드 그라프의 버터플라이 컬렉션 목걸이까지 더해졌다. 그라프는 1960년 영국 런던에서 출발한 초고가 주얼리 하우스로, 세계적인 희귀 다이아몬드 거래와 하이엔드 세팅 기술로 이름을 알린 브랜드다. 까르띠에나 티파니가 널리 알려진 럭셔리 주얼리라면, 그라프는 그보다 한 단계 위의 ‘초부유층 대상 시장’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왕실 인사, 글로벌 재벌가, 중동 왕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주요 고객층이다.

국내에서도 일반 소비자가 백화점에서 쉽게 접근하는 브랜드와는 거리가 멀다. 입문 제품조차 수천만원대가 많고, 대표 컬렉션은 억대를 넘는 경우가 흔하다. 이번 사건에서 언급된 6000만원대 목걸이 역시 대중적 ‘명품 액세서리’라기보다, 상위 1%를 겨냥한 자산형 사치재에 가깝다. 샤넬 가방이 누구나 가격을 알아보는 대중적 럭셔리라면, 그라프는 소수만 접근할 수 있는 과시적 초호화 소비의 상징이었다. 누구에게나 부러움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소수만 가질 수 있다는 우월감. 이 두 감정을 명품 청탁에 이용한 것이다.

재판받는 김건희 여사. 사진공동취재단

권력의 어두운 거래 뒤에 명품이 등장하는 장면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세계 정치사는 명품 때문에 몰락한 퍼스트레이디들의 사례로 가득하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다. 1965년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집권한 뒤 1986년 시민혁명으로 축출될 때까지 그는 사실상 권력의 또 다른 중심이었다. 혁명 직후 대통령궁 말라카냥궁을 공개했을 때 세상은 충격을 받았다. 수천 켤레 구두, 밍크코트, 까르띠에와 불가리 주얼리, 구찌와 페라가모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멜다가 단순히 사치를 즐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필리핀 국민 다수가 빈곤과 부채에 시달리던 시절, 권력자의 가족은 궁전 안에서 유럽 명품으로 일상을 채우고 있었다. 이후 ‘이멜다의 구두’는 정치적 탐욕의 은유가 됐다.

이멜다 마르코스가 지난 2006년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열린 한 브랜드 개점식에 참석해 장신구를 보고 있다. AP

말레이시아의 로스마 만소르도 비슷하다. 그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나집 라작 총리의 배우자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MDB 국부펀드 비리 사건이 터진 뒤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은 2018년 총리 관련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당시 공개된 압수품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에르메스 버킨백 수십 점, 샤넬과 루이비통 가방 수백 점, 수천 점의 보석과 시계가 발견됐다. 버킨백은 개당 수천만원에서 억대 가격을 기록했다. 공적 자금 유용 의혹과 숱한 사치품이 겹쳐지며 국민의 분노는 더 커졌다.

튀니지의 레일라 트라벨시 역시 빼놓기 어렵다. 1987년 집권한 벤 알리 대통령의 부인으로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때 해외로 도피했다. 그의 일가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오르, 샤넬, 까르띠에를 비롯해 호화 부동산과 보석을 과시적으로 소비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실업률과 물가 상승으로 청년층 분노가 커지던 시기였다. 국민에게는 경제적 절망 시기가 권력층에게는 럭셔리 쇼핑 시즌이었던 것이다.

이집트의 수잔 무바라크도 있다. 1981년부터 2011년까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과 함께 퍼스트레이디로 군림했다. 정권 붕괴 후 가족 재산과 특혜 의혹이 제기되며 유럽 명품 쇼핑, 고가 주얼리, 해외 자산 이야기가 잇따랐다. 대중은 보석과 명품을 통해 부패한 권력의 실체를 이해했다.

명품이 범죄의 본질은 아니다. 다만 권력이 어디까지 사유화됐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세계 곳곳에서 권력자의 배우자들은 오랫동안 공적 책임과 사적 영역의 경계에 서 있었다. 선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영향력은 공식 기록 밖에 머물렀다. 그러나 현실에서 최고 권력자의 배우자는 강한 상징성과 비공식 권한을 함께 지닌 존재다. 그 지위를 향해 청탁이 오가고, 그 매개로 명품이 동원되는 순간 그것은 더는 개인의 취향이나 사적인 선물로만 남지 않는다. 시위대에 쫓겨 미처 챙기지 못한 이멜다의 3000켤레 구두는 결국 필리핀 박물관 유리장 안에서 곰팡이와 흰개미에 갉아먹히는 최후를 맞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오른다는 명품도 결국 누구의 손을 거쳤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어떤 것은 유산으로, 또 다른 것은 예술로 남지만, 탐욕이 묻은 명품은 그저 부패의 증거로 남을 뿐이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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