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 경지 메이크업’이라는 이름
과거 성형으로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조롱하는 말로 ‘강남 미인’이나 ‘성괴’(성형괴물)라는 말이 유행했다면, 지금은 메이크업을 통해 얼굴을 꾸미는 행위조차 ‘정병(정신병) 경지’라는 말로 불리고 있다. 성괴라는 표현이 ‘괴물’이라는 혐오스러운 존재를 빗대어 여성을 타자화하였다면, ‘정병 경지 메이크업’이라는 말은 더 직접적으로 정신질환을 호출한다. 과한 메이크업을 한 사람을 비정상적 존재로 위치시키고, 그 얼굴의 상태를 ‘정신병의 경지’라고 진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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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정병경지 메이크업’이라는 밈이 온라인 공간에서 유행했다. 구글에서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면 많은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이미지/영상이 뜬다. (구글 검색 이미지) |
그런데, 솔직히 이러한 말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유는, 사실 그것이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감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현재에는 ‘애교살’을 강조하는 메이크업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지만, 이러한 화장법이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십대였던 나는 눈 밑을 강조하는 메이크업을 즐겨 했다. 학교에서 금지된 메이크업을 일부러 드러내며 하는 것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학교의 규칙을 어기는 방식으로 내 얼굴을 꾸미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티 나는 화장’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애교살을 강조한 눈 밑은 ‘애벌레같다’는 말을 들었고, ‘다크서클 같다’, ‘눈 밑에 아이라인을 그렸냐’는 식의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러한 평가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허용된 정도’를 벗어난 얼굴에 대한 교정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단지 조금 과하게 화장을 했을 뿐이지만, 내 얼굴은 웃음거리나 이상한 것으로 분류되고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자연스러움이라는 규범과 ‘정상성’
그러니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유행어가 아니다. 어떤 얼굴이 ‘정상’으로 인정되고 어떤 얼굴이 ‘비정상’으로 밀려나는지에 대한 기준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화장을 하는 것 자체는 더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에게 화장은 기본적인 자기 관리로 요구된다.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은 ‘예의가 없다’, ‘게으르다’, ‘프로답지 못하다’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동시에 화장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티 나지 않아야’ 하며, ‘과하지 않아야’ 한다. 허용되는 것은 화장이 아니라, ‘화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화장’이다. 이 모순적인 규범 속에서 여성의 얼굴은 끊임없이 조정되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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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페미니즘 개념미술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꼽히는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1983년작 〈Untitled (You Are Not Yourself)〉와 1981년작 〈Untitled (You thrive on mistaken identity)〉 작가는 여성의 몸과 정체성이 사회와 미디어가 규정한 이미지와 가부장적 규범에서 기대하는 여성상에 끼워맞춰지고, 대상화되고, 분절되며, 평가당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Barbara Kruge |
메이크업의 기준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유행에 따라 미묘하게 이동한다. 과거에는 어색하다고 여겨졌던 표현 방식이 시간이 지나면 트렌드가 되기도 한다. 애교살 메이크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는 과장된 것,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던 표현이 지금은 ‘자연스럽고 예쁜 얼굴’을 만드는 기술로 받아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것은 ‘적당함’에 대한 기준이다. 무엇이 적당한지, 어디까지가 괜찮은지에 대한 ‘선’은 계속해서 재설정되지만, 그 선을 벗어난 얼굴이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준을 벗어나는 순간, 그 얼굴은 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병리의 영역으로까지 이동한다. ‘정병 메이크업’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얼굴은 ‘다른 스타일’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상태’가 된다.
’정병’이라는 말이 작동하는 방식
최근 SNS에서 유행한 ‘정병 경지 메이크업’ 밈에서 강조되는 것은 단순히 색감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얼굴을 세부적으로 분해해 특정한 ‘증상’처럼 읽어내는 방식이다. 눈 밑에 넓게 퍼진 핑크색 치크는 단순한 메이크업이 아니라 ‘울어서 번진 얼굴’처럼 해석되고, 보라색에 가까운 아이섀도우와 강조된 애교살은 ‘정서적 불안정’을 드러내는 징후처럼 설명된다. 나아가 속눈썹, 피부 톤, 입술 색까지 각각의 요소가 ‘정신병 농도’와 같은 표현으로 연결되며, 얼굴 전체가 정신 상태를 진단하는 표면처럼 다루어진다.
즉, 여기서 조롱받는 것은 진한 화장이 아니라, 얼굴을 통해 읽히는 여성의 ‘이상한 상태’이다. 단순히 건강하지 않아 보인다는 인상을 넘어서, 감정이 통제되지 않거나,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는 해석까지 포함한다. 여성의 얼굴을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내면 상태를 드러내는 지표’로 간주하는 시선과 맞닿아 있다. 여성은 밝고 안정적이며 관리된 상태로 보이기를 요구받는다. 그 균형이 흔들리는 순간 ‘이상하다’, 나아가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정병 메이크업’이라는 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명명 방식은 ‘정병’(정신질환)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가볍게 소비하면서 동시에 강화한다. ‘정병경지 메이크업’ 밈 안에서 ‘정병’이라는 명명은 단순히 과한 꾸밈을 지칭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얼굴의 단점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을 보완하려는 시도, 즉 결점을 가리고 조정하려는 행위 자체가 ‘과도한 집착’이나 ‘비정상성’으로 해석된다. 특정한 몸과 얼굴 상태를 낙인찍는 언어를 재생산하는 동시에, 정신질환을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으로 만든다.
SNS에서 이러한 표현이 빠르게 확산되는 방식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극적인 이름일수록 더 쉽게 소비되고 공유되는 구조 속에서, ‘정병’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밈으로 가볍게 유통된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특정한 여성의 얼굴과 상태를 밀어내는 무게를 함께 지닌다. 누군가의 얼굴은 ‘예쁘다’고 불리고, 또 다른 얼굴은 ‘정신병 같다’고 불린다. 그 경계는 개인의 선택이나 취향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규범 속에서 만들어진다.
문제는 어떤 메이크업이 더 낫고 덜한가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병’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어떤 꾸밈은 자연스럽다고 인정받고, 어떤 꾸밈은 과하다고 판단되며, 어떤 꾸밈은 아예 비정상으로 밀려난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얼굴/몸은 여전히 통제되고, 진단되고, 평가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름들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 소개] 이은선. 고등학생 시기 학칙 개정과 학생인권조례 제정 활동을 하며 청소년 인권 운동을 만났다. 청소년이 학교와 사회에서 그저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 부당한 순간에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시민이 될 수 있기를 고민하며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폭력에 반대하며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청소년-시민입니다』, 『노키즈존 한국 사회』 등을 공저했고 청소년의 경험과 권리, 젠더화된 규범에 대해 글을 써왔다. 주변 존재들에 물들고, 물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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