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게 기적"이라는 명품 플랫폼의 처참한 근황 [이슈체크]

나은수 기자 2026. 4. 2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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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 사태 이후 반전은 없었다…명품 플랫폼 ‘붕괴 직전’
국내 명품 플랫폼 시장이 지난해 주저앉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발란 파산의 공백을 채우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여전히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최근 공개된 명품 플랫폼 업체들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발란 사태 이후 명품 플랫폼의 상황은 얼마나 더 악화됐을까요. 이번 이슈체크에서는 명품 플랫폼업계의 현주소를 감사보고서에 기반해 짚어볼 텐데요. 특히 장기 미수금과 재무 리스크가 얽혀 있는 트렌비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트렌비, 2년째 못 받은 95억원…손실 처리 않는 건 '완전자본잠식' 때문?

트렌비는 발란, 머스트잇과 함께 국내 명품 플랫폼 시장을 주도해왔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명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트렌비는 배우 김희애, 김우빈을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죠. 하지만 명품 소비 열기가 꺾이고 발란 사태까지 터지면서 회사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트렌비의 지난해 매출은 181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2% 감소했습니다. 이 기간 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전년동기대비 적자폭을 30억원 가량 줄였습니다. 영업손실 폭이 감소한 건 업황이 개선됐다기보단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와 마케팅 축소 등 비용을 줄인 영향이 큽니다.

회사 측은 올해 흑자 전환을 기대하는 듯합니다. 트렌비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3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는데요. 상황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트렌비는 매년 흑자 전환을 자신해왔지만 매번 적자 성적표를 받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슈체크팀이 다른 명품 플랫폼보다 트렌비에 더 주목하는 건 장기미수금 때문입니다. 트렌비의 지난해 말 기준 장기미수금은 9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 증가했습니다. 장기미수금은 받아야 할 돈을 1년 이상 동안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트렌비의 장기미수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영국 정부로부터 받지 못한 부가가치세 환급금 입니다. 트렌비는 영국에 법인(TRENBE UK LIMITED)을 두고 있습니다. 이 법인은 현지 부띠끄 매장에서 명품을 매입해 한국으로 보내는 역할을 해왔죠. 트렌비 본사는 영국법인으로부터 받은 명품을 판매해 수익을 올려왔습니다.

영국 법인이 현지에서 명품을 매입할 때 부가세가 포함된 가격을 지불합니다. 예를 들어 100억원어치 명품을 영국 부티끄 매장에서 매입하면 실제 지불하는 금액은 부가세(20%)가 포함된 120억원을 지불하는 것이죠.

트렌비는 그동안 이 부가세를 환급받아왔습니다. 상품의 최종 판매지가 한국이라 영국 정부가 부가세를 수취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시의 경우라면 영국 정부가 향후 20억원을 트렌비에 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트렌비는 2024년부터 부가세 환급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걸 2년 넘게 장기 미수금으로 계속 잡아놓고 있는 겁니다. 오랫동안 못 받고 있는 미수금은 회수 가능성을 따져 손상(손실) 처리를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트렌비는 부가세 환급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비 유럽연합(EU) 기업이 영국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수출하는 '제로레이팅 수출'에 해당돼 부가세 환급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트렌비 측은 부가세 환급이 늦어지고 있는 건 HMRC(영국 세무당국)의 검토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검토 과정에서 증빙 서류에 대한 입장 차이가 발생해 부가세 환급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것이죠.

트렌비 관계자는 "영국 세무 당국과 환급 및 정산 적용 요건에 대한 해석 차이가 있었고 이에 대한 공식적인 판단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올해 상반기 중 첫 심리 기일이 예정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 측의 이 같은 설명에는 몇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습니다. 이슈체크팀은 지난해에도 트렌비의 장기 미수금에 대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영국의 부가세 정책에 변화가 생기면서 트렌비가 환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아 관련 항목을 손상 처리해야 한다는 보도였습니다.

당시 트렌비 측은 이슈체크팀에 "매입 증빙을 보유하고 있다면 환급은 당연히 가능하다"며 "영국 조세심판원에 서류를 제출 완료한 상태인 만큼 조만간 환급 결정이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회사 측의 자신만만했던 입장과 달리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도 부가세 환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트렌비가 1년 이상 못 받고 있는 장기 미수금을 최초 기재된 시점은 2024년 말 기준 결산에서입니다. 따라서 부가세 환급은 현재 2년 넘게 못 받고 있는 겁니다. 사실상 회수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슈체크팀은 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트렌비 측에 장기미수금 회수 가능성을 뒷받침할 근거 자료 제공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현재 진행 중인 절차와 관련된 자료여서 제공이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대신 트렌비는 장기 미수금을 일부 손상처리했다고 설명합니다. 트렌비의 장기미수금 95억원은 대손충당금(16억원)이 반영된 수치입니다 트렌비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 의견, 감사인의 검토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장기미수금의 15%를 손상처리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트렌비의 장기 미수금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손상 처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2년 이상 회수 되지 못한 금액은 사실상 받지 못한 돈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 회계사는 "트렌비의 경우라면 적어도 절반 이상은 손상 처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트렌비가 장기 미수금 손상처리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확한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완전자본잠식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완전자본잠식이란 회사의 순자산이 마이너스(-)인 상태(자산보다 부채가 많음)를 의미합니다. 당장 청산해도 빚을 다 갚지 못한다는 것으로, 상장사라면 상장폐지 사유가 됩니다. 트렌비의 경우 장기 미수금의 절반만 손상처리해도 완전자본잠식에 빠집니다.

■ 명품 플랫폼 업계는 여전히 한파 속

발란의 공백을 채우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국내 명품 플랫폼은 지난해 혹독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명품 플랫폼 기업들의 매출이 일제히 감소했다는 건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래 표는 지난해 명품 플랫폼 기업들의 주요 실적입니다.



젠테의 매출은 431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동기대비 19.7% 하락했습니다. 젠테의 매출 규모는 다른 업체 대비 압도적으로 커 성장 둔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약간의 착시가 있습니다.

명품 플랫폼의 매출 구조는 ▲직매입 판매와 ▲오픈마켓 판매(플랫폼 수수료)로 나뉩니다. 직매입은 명품을 직접 구매하여 자기 재고로 보유한 상태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구조입니다. 명품 플랫폼 업체가 직접 재고 부담을 진다는 거죠. 오픈마켓 매출은 플랫폼 내 입점해 있는 셀러들로부터 나옵니다. 셀러들이 상품을 판매하면 플랫폼 업체는 일정의 판매 수수료를 챙깁니다.

매출 인식도 다릅니다. 직매입 구조 하에서 500만원 상품이 판매됐다면 매출은 500만원이 됩니다. 이에 반해 오픈마켓은 판매 수수료만큼 매출이 인식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수수료율이 10%라면 매출은 50만원이 됩니다.

젠테가 다른 곳 대비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은 건 100% 직매입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상품의 진부화로 판매가 되지 않거나 명품 수요가 감소하면 다른 곳 대비 리스크에 더욱 크게 노출됩니다.

젠테의 감사보고서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매출원가율입니다. 매출액 대비 매출원가를 나타내는 매출원가율이 무려 99%로, 사실상 제로 마진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 광고비, 운송비, 인건비 등 각종 추가적 판매관리비를 감안하면 영업손실이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계속된 적자에 재무구조는 망가졌습니다. 당기순손실로 누적된 결손금(283억원)이 자본을 갉아먹으면서 자본총계가 마이너스(-)인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습니다. 1년 내 갚아야 할 부채(유동부채) 대비 1년 내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유동자산)을 나타내는 유동비율은 19%에 불과합니다. 유동비율이 100% 미만이라는 건 1년 내 상환해야 할 부채가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젠테를 외부감사한 호연회계법인은 젠테의 존속 능력에 유의적인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는 젠테가 앞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불확실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회사 측은 부동산 매각, 유상증자를 통해 위기를 벗어난다는 계획이지만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젠테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사옥을 매물로 내놓았지만 여전히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명품 판매를 포함해 렌털 서비스로 차별화를 뒀던 리본즈도 외부감사인으로부터 동일한 지적을 받았습니다. 리본즈는 지난해에 이어 완전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동비율은 고작 6%에 불과합니다. 이는 갚아야 할 금액이 100억원인데 회사가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고작 6억원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회사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12~20%의 고리의 차입에 기대어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올해 자산 매각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고금리 차입금을 저금리로 대환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선 매각할 자산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젠테처럼 고가의 사옥을 보유한 것도 아닌데다 보유 자산이 고객에게 명품을 대여하는 렌탈 자산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렌탈 자산을 처분하면 사업 기반이 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머스트잇은 지난해 외부감사 대상에서 벗어나 정확한 실적을 알 수 없습니다. 외감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은 회사의 규모가 크게 줄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감은 직전 사업연도 말 기준 자산 120억, 부채 70억, 매출 100억, 종업원 100명 중 2개 이상에 해당돼야 합니다.

명품플랫폼의 재무 상황을 보면 사실상 생태계가 붕괴 직전이라고 보는 게 적절한 듯 싶습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명품은 일반 소비재와 달리 저렴한 가격이 큰 메리트가 되지 않는다"며 "매장에 직접 가서 명품을 사는 경험까지가 소비의 중요 포인트인만큼 플랫폼이 이를 대체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은수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