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온, 中 지리차와 협력하나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사업 자회사인 SK온이 헝가리 제조시설 매각을 타진하고 있다. 핵심 고객사 중국 지리자동차그룹이 유력한 인수 후보다. 지리차는 비야디(BYD)에 이은 중국 2위 전기차 업체로, 유럽 현지 생산을 추진 중이며 특히 헝가리를 핵심 전략 거점으로 주목하고 있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지리차와 최근까지 헝가리 생산법인 양수도를 협의해 왔다.
SK온의 헝가리 생산 기지의 경우 2개 법인(SK On Hungary Kft.와 SK Battery Manufacturing Kft.)으로 이뤄졌지만, 공장은 3곳이다. 2025년 말 기준 38기가와트시(GWh)에 이르는 캐파(생산 용량)를 확보했다. 공장별 연간 생산능력은 1공장 7.5GWh, 2공장 10.3GWh, 3공장 20GWh다.
SK온과 지리차의 이번 딜(Deal)은 '조 단위'로 전망된다. SK온 헝가리 법인들의 자산만 합해도 무려 8조원에 육박한다. 쪼개 팔아도 장부가를 인정받는다면 조 단위를 유지할 여지가 크다.
생산 조정해야 하는 SK, 유럽 뚫어야 하는 中
이번 딜은 양 측의 이해관계가 전격 맞아떨어진 결과로 진단되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SK엔무브를 흡수합병해 재무 위기를 진화했지만, 중장기적으로 자산 경량화는 피할 수 없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20년대 초기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등 신재생 에너지 관련 투자를 대거 벌였으나,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장기화에 따라 실수요에 맞춘 생산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SK엔무브 합병 후에도 미국 자동차 기업 포드와 블루오벌SK 등 현지 공장에 대해 합자 관계를 청산했던 이유다.
다만 올해 들어선 가동률이 80%을 웃도는 등, 시황 반등이 포착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잘나가는 사업을 정말 팔겠느냐는 회의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몸값을 쳐 줄 때 매각할 만하단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와 함께 SK그룹 경우 SK실트론 처분 등 리밸런싱이 막바지인 만큼, 시장에서는 "뭘 해도 욕 먹지 않을 상황일 때"라면서 "오히려 매각의 적기"란 의견도 내놓고 있다.
지리차는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헝가리를 주목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는 그동안 볼보 등 인수 브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지난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자동차 전시회(AMTS 2026)를 통해 지리 브랜드의 헝가리 진출을 전격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앨런 양 지리차 중앙·동부 유럽 및 남아프리카 총괄은 헝가리 공장 설립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가능하다"며 확신에 가까운 자신감을 비치기도 했다. 지리차는 유럽에 최소 2곳 이상의 공장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다만 신축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이미 생산 능력을 갖춘 파트너를 찾아 1년 이내 현지 생산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를 대상으로 기존의 10% 관세에 최대 35.3%포인트(p)에 달하는 징벌적 상계 관세를 추가 부과하기로 확정하며, 현지 생산의 강력한 유인이 생긴 터다. BYD만 해도 이미 헝가리를 현지 생산 거점으로 점찍고 4조~6조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온과 지리차 경우 이미 신뢰를 축적한 관계이기도 하다. SK온은 폴스타와 로터스 등 지리자동차 산하 브랜드들에 전기차 배터리를 납품하는 주요 벤더다.
헝가리 생산 법인 4000억 이상 손상 처리…매각 위한 '빅배스'?
SK온은 헝가리 공장 매각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025년도 회계에서 수천 억원의 손상 차손을 인식해 자산 가치를 줄인 것은 결국 매각 작업이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매각하기 전 잠재적 손실 요인이나 부실 자산을 회계 장부상에서 한번에 털어내는 일명 '빅배스(Big Bath)' 조치라는 시각이다.
SK온의 전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SK On Hungary Kft.에 대해 4123억원의 손상 차손을 반영했다. 이전부터 순손실이 지속됐는데, 미뤄 왔던 손상차손을 이번에 대거 반영한 것이다.
SK온은 저조한 가동률에 따라 현금 흐름 축소가 추정되므로 손상 차손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회사의 평균 가동률(중대형 배터리 기준)은 2023년 87.7%에서 2024년 43.8%, 2025년 48.7%로 크게 저하한 상태다.
그러나 경쟁사 LG에너지솔루션와 삼성SDI도 가동률이 각각 작년 평균 47.6%, 50%로 사정이 다르지 않은 와중 유럽 공장에 대한 손상 차손을 반영하진 않았다. 손상 차손이 있긴 했어도 유럽 공장의 몫을 특정해 잡는 일은 없었다.
조 단위 덩치에 中 지분율 50% 상한선까지…지분 매각 무게
SK온이 헝가리 공장 매각 추진을 부인하는 것은 협상이 최근 잘 풀리지 않고 있는 등 불확실성을 의식해 신중을 기하는 행보일 수도 있다.
지리차와의 협상이 진행돼 오기는 했지만, 계약은 차일피일 밀리고 있다. 올 초 가격 눈높이가 안 맞아 협상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실제 SK온 헝가리 법인들 경우 작년 말 기준 각각 자산 5조4079억원, 2조2359억원 규모다. 합하면 7조6000억원을 훌쩍 상회한다. 분할 매각해도 조 단위일 공산이 크다. 지리차 경우 작년 말 기준 부채를 제외한 순수 현금 여력만 499억위안(약 10조8000억원)이지만, 통매각이 힘든 요인은 또 있다.
EU의 산업 가속화법(IAA)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특정 국가가 EU 내에 1억유로(약 17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경우 지분을 최대 50% 미만으로 제한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사실상 중국을 정조준한 것으로, 중국 자본이 50% 이상 들어가면 해당 규제에 걸려 보조금 등 지원 혜택에서 배제될 확률이 큰 폭 높아진다. 실제 이런 점이 중대 변수로 작용하며 딜이 늘어지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헝가리 정권 교체도 변수로 지목된다. 전기차 산업에 회의적이었던 정당이 집권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주요 산업은 완성차이고, 유럽의 배터리 현지화 등 큰 흐름에 의거해 실제 리스크가 가시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배터리 업계 시각이다.
한편 SK온과 지리차는 작년 말 합작 법인(JV) 설립을 논의했다. SK온 헝가리 공장은 당시에도 출자 대상으로 거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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