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작은 역 지나는 동서트레일…발 빠른 백패커들은 벌써 걷는다 [동서트레일 르포]

"되게 힘들어요."
이미 발 빠른 백패커들은 동서트레일을 걷고 있었다. 양원역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동선 철교 아래에서 한 여성 백패커를 만날 수 있었다. 마주 오는 그는 작은 모자와 손수건을 뒤집어쓰고 얼굴은 바싹 말라 있었다. 터덜터덜 걸음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지만 봉화구간 종점이라고 할 수 있는 양원역이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발끝은 경쾌하게 살아 있었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낭 커버 아래로 위태롭게 삐져나와 있는 새우깡이 인상적이다. 몇 마디 물어보니 47구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도상거리로는 65km 정도 걸어온 셈이다. 길이 어떠한지 묻자 '힘들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갔다. 몇 마디 더 붙일까 싶었지만 그의 여정이 곧 완성되는 순간이었기에 더 흐트러뜨릴 순 없었다. 이미, 발 빠른 백패커들은 동서트레일을 걷고 있다.

동서트레일 알베르게 꿈꾸는 귀촌부부
현장은 새삼스럽다는 반응. 분천산타마을에 위치한 낙동정맥트레일안내센터에서 동서트레일을 안내하고 있는 김용환 숲길등산지도사는 "작년 7월부터 문의 전화도 많이 오고 벌써 수많은 백패커들이 걷고 있다"며 "대부분 구간 1~2개가 아니라 연달아 이어서 울진까지 가는 일정으로 도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서트레일 봉화구간은 47~51구간. 이 중 가장 하이라이트이자 개성이 뚜렷한 건 51구간이다. 승부역과 분천역을 잇는 낙동정맥트레일 2구간과 양원역과 승부역을 잇는 낙동강비경길을 이어 붙여 걷는다.

도착한 양원역. 길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아직 어린 낙동강은 이제야 겨울을 찢고 새로 봄으로 태어나고 있다. 코끝에는 여전히 시린 바람이 불고 그 끝에 비릿한 강물의 냄새가 묻어 있다. 문명의 개입 없이 고요하기만 한 공간을 침범하는 건 기적소리뿐.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을 실어 나른 열차가 지금은 백두대간을 구경하려는 관광객들을 싣고 오가고 있다. 화려한 협곡은 마치 작은 천불동을 연상케 한다.

"과연 봉화의 산이네요. 저희가 이거에 반해서 이사 왔죠."
동행은 봉화로 귀촌한 지유철, 정주리 부부와 지인인 주지원씨. 원래 경기도 오산, 동탄에서 살았던 부부는 오로지 산이 좋아서 연고도 없지만 이곳 봉화로 4년 전에 이사했다. 부동산이 소개해 준 집은 바로 앞에 첩첩이 들어선 산그리메가 펼쳐진다. 오직 그 조망 하나를 보고 봉화로 왔다. 지금은 농사도 짓고 목수 일도 병행하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체험농장도 운영하며 이를 SNS와 유튜브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이름은 '깊숲@gipsoop'이다.

"동서트레일이 저희 집 근처를 지나거든요. 귀촌하기 전부터 원래 등산이나 캠핑을 좋아했고, 기대감이 커서 이번에 한 번 직접 걸어보려고 왔어요."
꽤 야심찬 계획도 있다. 동서트레일의 알베르게(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의 순례자 숙소)를 만들 셈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하고 있는데, 다른 민박집과 달리 백패커들이 머물며 서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하나의 장과 같은 공간을 올해 안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12선경 숨어 있는 낙동강 따라 걷는 길
이번 트레킹은 양원역에서 분천역으로 51구간 역방향 진행이다. 51구간은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크게 상관없는데 차량 회수가 용이한 역방향을 택했다. 양원역에 도착하자 텅 빈 대합실과 승강장에 음성경보기 소리만 요란하다.

"양원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역사이자 세계에서 가장 작은 역이란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작은 대합실이 끝이에요."
양원역에 얽힌 역사는 좀 더 복잡하다. 봉화에서 장을 보고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인근 주민들은 승부역에서 내려 수km를 걸어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지금 승강장이 만들어진 자리에서 창밖으로 보따리를 내던지는 것. 그러면 승부역에서 돌아올 때 짐무게는 덜 수 있었다. 빨리 짐을 회수하려고 기찻길을 그대로 되짚어 오기도 했다. 당연히 위험천만하다. 그래서 10여 명이나 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역의 필요성이 그제야 조명돼 지금의 양원역이 만들어졌다.

길은 양원역 아래로 향한다. 여기서 승부역까지 동서트레일은 줄곧 낙동강과 기찻길을 양 옆구리에 낀 채 걷게 된다. 기찻길 옹벽에는 고래와 별자리 그림들이 가득하다. 승부역에 관한 시구절도 쓰여 있다. 유명한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다. 승부역에서 근무한 김찬빈 역무원이 역사 담벼락에 휘갈긴 시다. 그만큼 협곡이 비좁아 하늘도 작게 보이고, 평평한 땅도 얼마 없다는 의미다. 오로지 절벽, 절벽과 소나무뿐이다.
기찻길을 따르는 길은 이따금 허리 꼿꼿한 억새가 물결치는 낙동강으로 드리워진다. 그럴 때면 건너편 울진 금강소나무들이 훤하다. 마치 강물에 머리를 감으려는 듯 한참 고개를 쭉 빼고 나뭇가지를 늘어뜨렸다.

곳곳에 선경仙境 12개가 숨어 있다. 멋진 풍광에 지역에서 구전되는 전설들을 부연해 놨다. 아름다운 쌍 봉우리는 연인봉이라고 하여 첫눈에 사랑에 빠진 커플의 이야기를 녹여 냈고, 낙동강변에 거북이 모양 바위는 구암이라고 부르며 원래 두꺼비로 달에 살고 있었다가 선녀를 꾀어낸 죄로 거북바위가 됐다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품었다.
북사면과 남사면, 전혀 다른 두 얼굴의 배바위재
승부역이 가까워지자 지형이 거칠어진다. 마치 중국에 온 것 같은 절벽잔도길이 펼쳐지기도 하고, 송이 모양의 출렁다리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다 터널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영동선을 보내고 낙동강을 지조 있게 따른다. 영동선에선 볼 수 없는 비경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낙동강을 U자 형태로 감싸 안은 잿빛 절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그 위에 땅에서 자랐는지 하늘에서 소환됐는지 모를 금강소나무들의 향연.
이제 길은 기분 좋은 소나무숲길이다. 이윽고 다리를 통해 낙동강을 건너면 곧 승부역이 나온다. 길을 서두르는 통에 멀리 외관만 슬쩍 본다. 짓다만 굴뚝처럼 생긴 게 보인다. 영암선 개통기념비다. 광복 후 미국의 원조자금으로 착공했다가 한국전쟁, 험난한 산악 지형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1955년 말 완공됐다고 한다. 86.4km에 달하는 노선 중 가장 공사가 어려웠던 승부역에 기념비가 만들어졌다.

이제 숲길이다. 낙동강변을 따르는 길은 대체로 편하지만 가끔은 강물이 범람해 한 번씩 헝클어뜨려놓은 탓에 발바닥이 좀 아픈 구간이 있었기에 반가움이 더하다. 배바위재로 오르는 길 입구에는 백두대간수목원호랑이, 분천산타마을 이글루와 동서트레일 상징물, 낙동정맥 정승까지 저마다 이 길에 대한 지분을 주장하는 듯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실제 이 길을 만든 이는 따로 있다. 벌목꾼들이다. 이 길은 본래 벌채가 왕성했던 시절에 나무를 운송하기 위해 조성된 길이다. 경사가 급하고 굴곡이 심해서 재무시GMC 트럭만 나무를 싣고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었다.
낙동정맥트레일 안내판은 현 위치를 석포면소재지로 잘못 알리고 있으므로 무시하면 된다. 길은 차가 다닐 정도였으니 좌우로 넓고, 잔돌이 많다. 계속 오르막이라 진이 빠진다. 모두들 땅에 고개를 박고 오른다. 좁은 계곡을 따르는 길이라 시야도 영 답답하다. 그렇게 한참 땀을 쏟으면 배바위재다. 1968년 11월 울진, 삼척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월북을 기도하던 무장공비의 이동경로였다는 설명이다. 이 사건은 민간인을 포함해 18명의 사망자를 남겼다.

배바위재를 기점으로 산은 갑자기 그 얼굴을 바꾼다. 북사면은 치밀하고 어두운 반면, 남사면은 조망도 시원시원하고 나무들도 거대하다. 수령 500년의 배바위산 수호신 엄나무도 볼거리다. 덕분에 내려서는 길이 즐겁다.
한참을 고도를 내리다 보면 민박집들이 보이면서 비동마을이다. 토지가 살쪄 기름지다 하여 '비동肥洞'이란 이름이 붙었고 주로 화전민들이 살았었다고 한다. 마을길을 쭉 따라 내려가면 어느덧 낙동강이 성큼 다가온다. 도로를 따라가면 51구간 야영지인 와유곡. 누워서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으로 유람하는 골짜기란 뜻이다. 20~30m 높이의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평평한 땅으로 어디든 텐트치기 좋다. 여기서 종점인 분천역은 지근거리다. 동행한 이들에게 일문일답으로 소감을 물었다.

Q 51구간 어땠나요?
A 강변을 따라 걷는 평탄한 길과 배바위재로 향하는 산길이 조화로워서 걷는 재미가 컸어요. 파란 하늘 아래 기암괴석 사이를 천천히 걷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난이도도 달라 지루하지 않았고요. 특히 안내판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이 지역의 역사를 좀 더 잘 알 수 있었어요.
Q 지역주민으로서 동서트레일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A 오시는 분들이 동서트레일을 통해 봉화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길의 이야기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하나씩 읽어보면서 여유롭게 쉬면서 걸으셨으면 해요.
또 지자체에도 힘을 내달라고 부탁하고 싶네요. 길이 지나는 마을의 특색을 함께 홍보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또 백패커들이 식당을 이용하거나 비화식도 하겠지만 박지에서 취사도 많이 할 텐데 안전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스탬프 투어를 도입한다면 차량 접근이 쉬운 곳보다는 배바위재처럼 한참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설치했으면 합니다. 그게 훨씬 특별한 성취감을 주죠.
Q 동서트레일을 걷는 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A 최근 백패킹이 눈총을 받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쓰레기 문제입니다. 아름다운 길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머문 자리는 깨끗하게 치우고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가는 성숙한 탐방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작은 배려가 길의 아름다움을 오래 지키는 힘이 됩니다.



산행길잡이
양원역에서 승부역으로 오르는 길은 낙동강비경길, 승부역에서 분천역으로 이어지는 길은 낙동정맥트레일 2구간이란 이름으로 각각 지난 10여 년간 널리 인기를 끌었던 구간이다. 영동선 기차여행의 낭만도 즐기고 분천산타마을, 낙동강 트레킹을 결합해서 즐기기에 배차간격이 딱 알맞다.
길은 크게 헷갈리거나 어려운 구간이 없다. 동서트레일 관련 이정표나 산행리본은 아직 미비한 상태지만 낙동정맥트레일 관련 이정표로 대체돼 있어 이를 따르면 된다. 배바위재를 넘는 고갯길이 경사도가 높아서 큰 배낭을 짊어진 백패커에겐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페이스만 조절하면 크게 무리가 되진 않는다.
한편 동서트레일은 분천역에서 배바위재를 통하지 않고 양원역으로 질러가는 지름길도 계획하고 있다. 과거 체르마트길이라 불렸던 길이다. 겨울에는 이 지름길이, 여름에는 배바위재를 통하는 정식 코스가 각각 악천후로 인한 손상이 잦아 폐쇄 위험이 있어 대안으로 만들어뒀다고 한다.
교통
영주역과 철암역을 오가는 기차시간을 알아두고 이에 맞춰 움직이면 된다. 분천역에서 출발해 양원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는 하루 4회(09:01, 11:45, 20:03, 20:44) 운행한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해당 편이 전부인데 다른 요일엔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와 동해 산타열차가 추가로 운행한다. 백두대간협곡열차는 2회(09:59, 14:25), 동해산타열차는 1회(15:42) 운행.
맛집&숙박(지역번호 054)
분천역에 모든 게 다 있다. 식당과 편의시설, 화장실은 물론 카페, 민박에 마트도 있다. 특히 기존 낙동정맥트레일 안내소였던 곳에서 동서트레일 안내까지 맡게 됐는데 여기서 무료 샤워와 화장실 이용, 휴식도 가능하다.
주의해야 할 건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운행하지 않는 화, 수요일 및 산타마을 비수기(성수기는 한여름과 한겨울이다)엔 식당 운영시간이 주인장 마음대로다. 열 때도 있고, 안 열 때도 있다.
취재진은 봉덕식당(673-6152)에서 먹었다. 맑은 한우국밥, 칼칼한 장터국밥, 깔끔하고 건강한 곤드레비빔밥 모두1 만 원. 단체 예약은 별도로 해야 한다. 이외에도 가마솥 육칼국수(1만 원)와 물가자미 회덮밥과 사골곰탕(1만2,000원) 등을 파는 산타육칼(673-5159), 매생이굴국밥과 소머리국밥, 우거지국밥 등을 1만 원에 파는 산타마을조고집(672-8283)이 있다.
숙박은 분천역 일대에 여럿 있고, 배바위재에서 내려오는 비동골에도 민박집이 있다. 비동스테이민박(0507-1478-1789), 분천비동 짱이네(672-1772) 등이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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