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일본 백화점…틈새 파고든 ‘K백화점'의 역발상
K백화점, K패션·뷰티로 현지 공략
내수 침체에도 K콘텐츠 저력 굳건

일본 전통 백화점들이 줄지어 문을 닫는 '유통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백화점들은 오히려 이를 기회 삼아 일본 중심부에 잇따라 깃발을 꽂으며 승부수를 던졌다. 낡은 방식을 고수하다 침체에 빠진 일본 시장의 빈틈을 'K콘텐츠'로 파고들며 일본 젊은층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줄줄이 폐점
현재 일본 백화점 시장은 수십 년간 지역을 지켜온 상징적인 점포들이 사라지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나고야역 앞의 랜드마크였던 메이테쓰백화점 본점이 문을 닫았다. 1968년 오픈해 도쿄 시부야의 중심을 지켰던 세이부백화점 시부야점도 오는 9월 폐점을 예고했다. '일본 패션의 성지' 시부야에는 앞서 도큐백화점 본점과 도요코점이 문을 닫은 데 이어 세이부마저 철수하게 됐다.
백화점이 사라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소비 기반의 급격한 약화에 있다. 일본 가구 중위소득은 1993년 550만엔에서 2023년 410만엔으로 30년 사이 약 25% 감소했다.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백화점의 핵심 고객층도 함께 붕괴됐다. 이는 곧 경영 지표의 악화로 이어졌다. 실제로 일본 백화점 업계 전체 매출은 지난해 5조7000억엔을 기록하며 2008년 대비 약 23% 줄었다. 같은 기간 백화점 점포 수 역시 280개에서 176개로 감소했다.

이런 체력 저하는 시부야 상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세이부 시부야점의 매출은 최근 5년 만에 약 30%가 증발하며 폐점의 결정타가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백화점들이 차별화 없이 비슷한 상품만을 나열하는 데 그치며 입지가 약화된데다, 그사이 급성장한 온라인 쇼핑과 중저가 브랜드에 시장 주도권을 완전히 뺏겼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본 백화점들이 정체된 사이 한국 백화점들은 역발상 전략으로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024년부터 도쿄와 오사카에서 K콘텐츠 수출 플랫폼 '더현대 글로벌' 팝업스토어를 세 차례 운영했다. 지난해 9월에는 파르코 시부야점에 더현대 글로벌 정규 매장 1호점을 오픈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1~2개월 단위로 브랜드를 교체하는 유연한 로테이션 방식을 도입해 보수적인 일본 유통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해외 진출 지원 플랫폼인 '신세계 하이퍼그라운드'를 통해 일본 핵심 상권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사카 한큐백화점 우메다본점에서 두 달간 팝업을 진행하며 현지 잠재력을 확인한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일본 백화점 매출 1위인 이세탄 신주쿠점에서 팝업을 열어 기록적인 집객력을 입증했다.
침체 시장도 뚫었다
한국 백화점들이 침체된 일본 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은 K콘텐츠의 강력한 시장 지배력 덕분이다. 과거의 한류는 특정 연예인에 열광하는 일시적 팬덤 현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Z세대를 중심으로 한국인의 화장법, 스타일, 생활 문화 전체를 동경하고 따라하려는 강력한 수요로 진화했다. 특히 '한정된 소득을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쓰겠다'는 가치 소비 트렌드가 일본 젊은 층에 확산하면서 경기 침체에도 K브랜드에는 기꺼이 지갑을 여는 추세다.
이런 현상은 실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파르코 시부야점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에서는 총 23개의 K브랜드를 선보였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2개 브랜드가 매출 1억원을 돌파했다. 매출 상위 5개 브랜드의 평균액은 3억1300만원이었다. 팝업 운영 기간이 단 일주일에 불과했음을 고려하면 일본 백화점 중위권 정규 매장의 한 달 매출(1억~2억원 수준)을 단 며칠 만에 가볍게 뛰어넘은 셈이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팝업을 통해 K콘텐츠의 인기를 입증했다. 일본 백화점 매출 1위인 이세탄 신주쿠점의 핵심 공간 '스테이지2'에서 진행한 팝업에는 하루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특히 일부 브랜드는 하루에만 수천 명의 고객을 끌어모으며 현지 인지도를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 백화점들은 일본 시장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공략을 펼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은 일본에서 정규 매장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다. 우선 시부야 1호점을 기점으로 올해 안에 패션 성지인 오모테산도에 660㎡(약 200평) 규모의 '더현대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기로 했다.

이를 기점으로 5년 내 일본 핵심 상권에 총 5개 매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일본 Z세대 중심 패션 플랫폼 '누구(NUGU)' 운영사인 메디쿼터스에 300억원을 투자해 온·오프라인 연결 고리를 완성했다.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 200만명 중 70%가 20대인 이 플랫폼에 '더현대관'을 열고 450여 개 K패션 브랜드를 선보이며, 현지 젊은 층 맞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한 '랜드마크 선점'과 '상호 교류'에 집중할 계획이다. 일본 최대 유통 대기업 도큐그룹과의 업무협약(MOU)을 통해 시부야109, 시부야 히카리에 등 도심 핵심 상업시설에 진입 장벽 없이 팝업스토어를 지속적으로 열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아울러 일본의 인기 패션·캐릭터 IP를 국내로 들여오는 상호 교류 모델도 추진 중이다. 양국의 콘텐츠를 교차 공급함으로써 집객력을 극대화하고 장기적인 윈-윈(Win-Win)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는 생각이다.
결국 K백화점의 해외 공략은 국내 유망 중소 브랜드의 성장을 이끄는 '수출 플랫폼'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브랜드 소싱부터 통관·물류·현지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통합 지원해 해외 진출 문턱을 낮추고 큐레이션 역량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이 단순히 자리를 빌려주는 임대업에서 벗어나 유망 중소기업의 글로벌 성장을 돕는 '인큐베이터'이자 '엑셀러레이터'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검증된 큐레이션 역량을 바탕으로 현지 리테일 기업과 대등한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K콘텐츠의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다이 (neverdi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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