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강경론자 빅터 차 “북한 비핵화는 먼 미래 목표, 군축 협상해야”

미국 내 대표적인 대북 강경론자로 꼽혀온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북한 비핵화를 단기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로 규정하며, 대북 전략의 근본적 전환을 제안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을 지내며 6자회담에 관여했던 그는 지난 20여년간 ‘비핵화 우선’ 기조를 지지해왔다.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 글에서 기존 정책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방향 전환을 주장한 바 있다.
차 석좌는 28일(현지시각)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북한 비핵화는 단시일 내 달성이 어려운 목표가 됐다”며 “미국은 북한과의 ‘차가운 평화(cold peace)’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 석좌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대북 전략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과도하게 의존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계속 핵 능력을 증강하는 동안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비핵화 구호에만 집중하는 것은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좋은 방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현재 약 5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추가 생산 능력까지 갖췄으며, 300회 이상의 미사일 시험과 6차례 핵실험을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차 석좌는 “비핵화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지만, 이제는 ‘먼 미래의 목표’가 됐다”며 “이를 전제로 정책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정책 전환을 제안한 배경에는 미국의 과도한 전략 부담이 있다. 차 석좌는 “미국은 현재 중국, 러시아, 이란 등과 동시에 갈등을 겪고 있다”며 “국가 안보 관점에서 너무 많은 적을 상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적의 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북한 문제를 그 사례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비핵화 전제 협상’ 대신 군축, 시험 제한, 위기관리 등 현실적 목표를 중심으로 협상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배치 제한,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 핵·미사일 실험 금지 등을 협상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이 이미 보유한 핵능력을 당장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추가 증강을 억제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에 더 즉각적인 이익이 된다는 논리다.
이런 전략 변화에 한국, 일본 등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선 미국이 더 강화된 억지력을 제공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억지력을 약화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의 전략 변화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에 그는 “한미동맹은 초기의 혼란을 지나 ‘현대화’ 방향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과거처럼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는 상황도 아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 제기됐던 ‘주한미군 감축’이나 ‘대폭 증액 요구’ 우려와 달리, 현재는 동맹이 구조적으로 재정비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그는 이런 안정된 기반이 오히려 북핵 정책 전환의 조건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사일 방어 협력 강화, 한·미·일 안보 협력 확대, 요격 미사일 공동 생산 등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석좌는 이번 제안이 단순한 학술적 논의가 아니라 현실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책 관례에 얽매이지 않는 지도자”라며 “필요하다면 어떤 접근이든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을 “놀라울 정도로 실용적”이라고 평가하며 “전임자와 달리 한국이 빠진 미·북 대화 가능성에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정치적으로 이런 전략이 가능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 전략에서 가장 어려운 변수는 일본”이라며, 미사일 방어 협력 강화 등을 통해 일본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접근이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선을 그었다. 차 석좌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마냥 기다리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북한은 핵무기를 계속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핵화를 장기 목표로 유지하되 협상을 그것에만 묶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선제타격 개념인 ‘킬체인’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차 석좌는 “킬체인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촉발할 수 있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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