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싸우는 사람들 ③] “당신은 덜 힘들길” 다섯 유족을 모았다

이수연 기자 2026. 4. 2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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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덕준씨 산재 은폐 의혹 계기 … 쿠팡 물류센터 2주간 순회
▲ 지난 21일 경기 용인시 쿠팡 신선센터 앞에서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가 쿠팡의 노동환경 개선과 김범석 대표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수연 기자>

쿠팡은 문제적 기업이다. 대규모 개인정보 누출 사건 이후 쿠팡의 대응이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미국 정치권에 거액을 들여 로비를 했고 실제 그 로비가 먹혔다는 현실 역시 황당하게 한다. 우리 국민은 그 일뿐이 아닌 것을 안다. 거듭되는 산재, 그리고 은폐 의혹, 거기에 김범석 의장이 은폐를 직접 지시한 정황이 담긴 이메일이 세상에 드러났다. 정부와 검찰·경찰 수사에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횡행한다.

산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가슴을 친다. 몇 년이 지났든 뻥 뚫린 심장에 바람이 지날까 무섭지만, 또 자신이 겪은 일이 반복될까 봐 가슴을 친다.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과를 요구하며 다시 거리로 나왔다. 물류센터를 돌며 위험하면 얘기하라고 전단지를 돌린다. <매일노동뉴스>가 다시 거리로 나온 유가족들을 만났다. <편집자>

"이곳에 계신 당신들이 올여름 힘들지 않게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집으로 건강히 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21일 오후 4시30분께 우리나라 최대 규모 쿠팡 신선센터가 있는 용인 남사물류센터 앞. 2020년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고 장덕준(사망 당시 27세)씨의 어머니 박미숙(58)씨가 퇴근 차량을 향해 마이크를 들었다.

곧이어 장덕준씨 아버지 장광(64)씨의 목소리가 담긴 40초짜리 녹음이 흘러나왔다. '김범준은 사과하고 책임지라'는 요구와 함께 유급 휴게시간 보장과 냉난방시설 설치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길 건너에는 장광씨가 트럭 적재함 위에 올라 피켓을 들고 있었다. 물류센터에서 나오는 차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다. 그는 "피켓을 안 들고 있으면 아내한테 혼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 옆에는 이곳에서 일하다 숨진 고 최성낙씨의 아들 최재현(39)씨가 같은 자세로 나란히 서 있었다. 그날은 장광씨 생일이었지만 본인도 아내도 모르고 지나쳤다가 뒤늦게 알았다. 선전전을 마친 뒤 식사 자리에서 최재현씨는 "아버지, 생신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아들 또래에게 허리 숙여 유인물 건네

이들의 쿠팡 물류센터 선전전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22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쿠팡 동탄1센터 앞. 트럭에서 내린 박미숙씨와 장광씨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한 사람이 도로변에 현수막을 걸면, 다른 한 사람은 유인물과 마이크를 챙겨 물류센터 앞으로 향했다.

노조나 시민단체 활동가도 아니지만 장덕준씨 부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유인물을 건네받는 사람이 한 손에 쥐기 쉽게 반으로 접어두고, 바람에 쓰러지는 피켓을 펜스에 케이블로 고정했다. 오후 5시쯤 물류센터로 출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탄 대형버스가 들어서자 박미숙씨는 마이크를 잡고 쿠팡의 노동환경 개선을 외쳤다. 이후 퇴근자들이 몰려나오자 유인물을 한 움큼 쥐었다. 흑백으로 인쇄된 유인물에는 장덕준씨 죽음과 쿠팡의 조직적 산재 은폐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씨는 아들 또래의 청년들을 향해 유인물을 건네며 몇 번이고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바삐 움직이는 이들에게 한 장이라도 더 유인물을 전달하기 위해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더 깊이 숙였다.
▲ 지난 21일 경기 용인시 쿠팡 신선센터 앞에서 고 장덕준씨 장덕준씨 아버지 장광씨가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이수연 기자>

'산재은폐 의혹' 불씨, 유족들을 모았다

지난해 12월 쿠팡이 장덕준씨의 과로사를 은폐하려고 했던 일이 드러난 게 계기였다. 박미숙씨는 각자 버티고 있던 다른 유족들에게 연락해 "함께 다시 싸우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다섯 유족이 모였다.

그보다 앞선 2025년 1월, 박씨는 쿠팡과 '사과 없는 합의'를 했지만 남은 것은 해소되지 않은 감정뿐이었다. 그는 "합의 이후 더 비참하고 분했는데 이미 합의했다는 이유로 말도 못하고 혼자 속을 끓였다"고 말했다. 이후 산재은폐 의혹이 드러났고, 합의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에 "피가 식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쿠팡을 고발했지만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4개월째 조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박씨는 "가만히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려 하는구나 느꼈다"며 "그대로 두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합의와 별개로 다시 싸워야 할 이유가 생겼고, 이번에는 함께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큰아들이 먼저 떠난 뒤 6년. 부모가 생업을 내려놓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 매달리는 동안 가족의 일상은 무너졌다. 집을 팔았고, 은퇴 후 차린 목공방을 정리했다. 신용불량자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으며 몇 년째 방에서 못 나오는 가족도 있었다. 다른 유족들과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다.

설득은 쉽지 않았다. 이미 지쳐서 다시 싸울 자신이 없다는 말이 먼저 돌아왔다. 그러나 매번 통화는 길게 이어졌다. 유족들은 기본 두 시간씩, 어디에도 말 못한 이야기를 박씨에게 털어놓았다. 박씨는 계속해서 "이렇게 계속 살 수 있겠냐" "나는 힘들어서 못 견디겠는데 괜찮겠냐"고 물었고 망설이던 이들은 몇 차례 거절 끝에 마음을 바꿨다.

쿠팡이 돌연 소송을 취하한 뒤 불안 속에 지내던 유족, 돈이 없어 민사소송을 망설이던 유족, 그리고 박씨와 2024년부터 꾸준히 만나온 두 유족이 다시 연결됐다. '쿠팡 산재피해 유가족모임'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고 박현경씨 남편 최규석씨가 쿠팡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청구한 지난 14일 쿠팡 본사 앞을 시작으로 14박15일간 순회 투쟁에 나섰다.
▲ 박미숙씨가 지난 24일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허리 숙여 유인물을 건네고 있다. <정기훈 기자>

"나보다 덜 다치고 덜 아팠으면"

"다른 유족들은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으면 했어요"

박미숙씨는 혼자 싸워야 한다는 막막함을 견뎌왔다. 국회의원실을 돌며 자료를 요청하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겨우 CCTV 영상을 받아 1년 가까이 홀로 분석했다. 아들이 일하던 모습을 수백 번 돌려보며 중량물과 발걸음수를 세고, 위성사진으로 면적과 동선을 계산해 화면에 담기지 않은 노동시간까지 유추했다. 그는 "5년 넘게 싸워서 좋은 점은 다른 유족에게 공유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자료가 쌓인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의 목표는 김범석 쿠팡 대표의 사과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다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는 결심이다. 박씨는 "이기고 지는 건 하늘이 정하는 문제고, 제가 할 일은 다른 유족들이 이 싸움에서 더 상처받지 않도록 화합하는 일"이라며 "도중에 누군가 상처받는다면 멈출 수도 있다"고 전했다.

장광씨는 사이렌 소리만 들리면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린다고 했다. 그는 한동안 술과 약에 의지해 버텼지만 아내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부터 혼자 싸우던 박씨 곁에 서기로 했고, 부부는 '동지'가 됐다. 장씨는 "피켓을 들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 10명 중 7명은 '힘내시라'고 한다"고 말했다. 때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반응도 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서'다. 이번 순회 투쟁에는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도 함께했다. 김씨는 "자식 잃은 부모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느냐"며 "억울해서 뭐라도 해야지, 그 마음 안다"고 말했다.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기도 한 28일, 유족들은 마지막 순회 일정을 마쳤다. 이들은 이후에도 간담회 등으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말했다. "길게 가려고 해요. 5년 넘게 버틴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라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망설이고 있을 사람들, 다른 일터의 유족들과도 이어지고 싶어요. 주변의 걱정도 있지만 우리 방식대로 잘 해나가려 합니다."

이수연·어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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