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한빛과 함께 걸어 온 10년…‘산재 추모의 날’ 맞은 유가족의 하루

우혜림 기자 2026. 4. 29.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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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노동자 사망 추모의 날을 맞은 28일 산재 유가족 이용관씨(70)가 도심을 걷고 있다. 우혜림 기자

28일 오전 8시52분 천안아산역에서 KTX를 타고 오전 9시40분 서울역에 도착한 이용관씨(70)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산업재해근로자의 날’을 맞아 서울에서 열리는 기자회견과 추모식 등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2016년 아들 ‘한빛(고 이한빛 PD)’을 떠나보내고 해마다 맞이하는 이날은 지난해 처음으로 법정기념일이 됐다.

그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선 수많은 유가족이 산재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었다. 첫 일정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이었다. 산재 유가족 모임인 ‘다시는’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한 그도 대표발언을 할 참이었다. 기자회견장 앞에 도착하자 산재 피해 유가족들과 노동단체 활동가들이 하나둘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손을 맞잡고, 어깨를 끌어안는 모습이 익숙하다. “아직도 많이 아파?” 이씨가 손을 잡으며 한 유가족에게 안부를 물었다. 유가족은 웃으며 이씨 손을 맞잡았다.

오전 10시30분.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마이크를 잡은 이씨는 휴대전화에 적어온 발언문을 보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산재 사망 추모의 날은 단순히 슬픔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한 다짐의 자리여야 합니다.”

담담하고 단호한 이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리셀 화재 참사로 딸 엄정정씨를 잃은 이순희씨, 쿠팡 물류센터에서 과로로 숨진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의 발언도 이어졌다. 서로 다른 사고였지만 “왜 죽었는가”라는 물음은 같았다. 이씨는 지난 10년 동안 이 질문을 수없이 들어왔다.

산재 노동자 사망 추모의 날을 맞은 28일 산재 유가족 이용관씨(70)가 다른 유가족의 손을 잡고 있다. 우혜림 기자
산재 노동자 사망 추모의 날을 맞은 28일 산재 유가족 이용관씨(70)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이씨의 아들 한빛씨는 2015년 12월 CJ E&M에 드라마 PD로 입사했다. 한빛이 소속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제작팀은 첫 방송 직전, 사전 제작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갑자기 해고했다. 한빛은 그들을 ‘정리해고’하고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돌려내라고 독촉하는 ‘악역’을 떠맡았다. 한빛은 “통장 정리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빈곤사회연대 등 몇 개 단체에 후원금으로 내 달라”는 말을 남긴 뒤 입사 10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다.

아들을 잃은 뒤 이씨는 2018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만들었다. 2021년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나섰다. 산재로 누군가 숨졌다는 소식이 들리면 현장을 찾았다. 조문하러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됐다. 최근 대전 안전공업 화재로 노동자들이 숨졌을 때도 그는 현장을 찾았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는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이씨는 한빛이 세상을 떠나고 지난 10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고 돌아봤다.

산재 노동자 사망 추모의 날을 맞은 28일 산재 유가족 이용관씨(70)가 다른 유가족과 대화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기자회견을 마친 산재 유가족들은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은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했다. 소개에는 자신의 이름보다 먼저 떠난 사람의 이야기가 붙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였던 고 김치엽씨의 아버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숨진 고 오요안나씨의 어머니,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홍수연양의 아버지 등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이씨는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한 유가족이 “요즘 왜 이렇게 사람이 늘었느냐”고 묻자 테이블 한쪽에서 “우리는 사람이 늘면 슬픈 건데”라는 말이 나왔다.

식사를 마친 이씨는 아리셀 참사 책임자인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형량을 대폭 낮춘 2심 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간담회에 들렀다. 숨돌릴틈 없이 오후 3시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으로 이동했다.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산재근로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산재 유가족이 정부 공식 기념식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대에 오른 이씨는 준비해온 추모사를 읽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기업은 여전히 이윤을 앞세우고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정부의 관리 감독도 현장에 충분히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형식적인 기념식을 넘어 산재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재 노동자 사망 추모의 날을 맞은 28일 산재 유가족 이용관씨(70)가 아리셀 참사 2심 판결 규탄 기자간담회에 참여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산재 노동자 사망 추모의 날을 맞은 28일 산재 유가족 이용관씨(70)가 추모사를 읽고 있다. 우혜림 기자

최근 이씨는 ‘다시는’을 법정 단체로 전환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후원 회원을 모집해 단체 활동의 기반을 갖추려는 목표였다. 단체의 기틀을 다지는 게 우선 아니냐는 구성원들을 하나하나 설득해나갔다. 단체가 법적 토대 위에 굳건히 자리 잡아야 산재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봤다.

쉬지 않고 활동을 이어온 이씨를 두고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하고 당신 삶을 살아라”는 말도 했다. 오는 10월이면 아들을 떠나보낸 지 정확히 10년이 된다. 이씨는 “그동안 한빛을 붙들고 살아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앞으로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년도, 이날도 이씨의 곁엔 늘 한빛이 있었다.

이씨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 오후 6시48분 천안아산역으로 향하는 KTX를 타기 전 마지막 일정으로 국회 앞에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피켓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대통령 한 명만으로 달라지지 않아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고 바뀌기 위해선 추모해야 합니다.”

소년공 시절 산재를 겪은 이재명 대통령은 산재 근절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추진해왔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은 이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더는 삶의 터전이 죽음의 현장이 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산재 사망자들을 추모했다.

산재 노동자 사망 추모의 날을 맞은 28일 산재 유가족 이용관씨(70)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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