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발견] 임의후견, 내가 쓰는 노후의 각본

장은영 변호사(법무법인 리우) 2026. 4. 29. 05: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가정법원 재직 시설 담당한 임의후견 사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임의후견은 법원이 그 내용을 정해주는 법정후견과 달리 본인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노후의 사무 안에 그대로 새겨 넣을 수 있고, 법정후견에 우선하며, 공정증서 작성과 등기,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이라는 이중의 안전판을 거쳐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3자에게 노후 맡기는 임의후견
자기결정권과 존엄 지키는 제도
도입 13년 됐지만 활용도 낮아
원스톱 지원 창구 등 보완 시급

가정법원 재직 시설 담당한 임의후견 사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사건본인은 80대 여성으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었고 형제자매와도 장기간 교류가 없는 처지였다. 다만 수년간 사찰음식을 함께 배우며 알게 된 한 지인이 늘 곁에 있었고, 그를 깊이 신뢰한 여성은 그와 임의후견계약을 체결하고 등기까지 해두었다. 

그러다 치매 등으로 인지가 점점 저하되자 그 지인이 사건본인의 동의를 받아 법원에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을 청구한 것이었다. 가족이 아닌 이가 임의후견인이 된 흔치 않은 사례였지만, 어쩌면 임의후견의 본령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었다.

임의후견계약은 본인과 임의후견인이 쌍방 당사자가 되어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 있거나 부족하게 될 상황에 대비하여 본인의 재산관리 및 신상보호의 전부 또는 일부에 관하여 임의후견인에게 맡기고 대리권을 수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다. 임의후견은 법원이 그 내용을 정해주는 법정후견과 달리 본인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노후의 사무 안에 그대로 새겨 넣을 수 있고, 법정후견에 우선하며, 공정증서 작성과 등기,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이라는 이중의 안전판을 거쳐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 고령사회 진입은 물론 1인 가구와 비혼·만혼이 보편화되고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 시대에, 각자의 사정에 맞게 본인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노후 설계를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한층 무거워진다.

그러나 후견제도 도입 13년이 지나도록 임의후견 활용은 매우 저조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무엇보다 후견을 '질병으로 인한 인지 저하나 치매 진단 후의 사후 처리'쯤으로 여기는 통념이 여전한 듯하다. 그나마 건강할 때 미리 준비해 두는 자기 위임이라는 발상 자체가 아직 낯선 것이다. 막상 그 필요를 체감할 무렵에는 이미 판단 및 결정능력이 부족해 유효한 계약 체결이 어려워지는 '타이밍의 역설'도 걸림돌이다. 계약서에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식으로 작성해야 하는지 일반인이 단독으로 설계하기 어렵고, 공증·등기·감독인 선임으로 이어지는 절차적 부담도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이제는 임의후견에 대한 인식과 그 유용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보완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 잠재적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임의후견의 의의와 방법 등을 적극 알리는 일부터 시급하다. 법조 등 관련 직역과 정부 차원에서 법률에 친하지 않은 일반인이 보기 편하면서도 내용형성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표준계약서 모델을 보급해 설계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제도 안내, 계약 작성, 임의후견 운용 관련 상담 등 전반을 도울 수 있는 원스톱 지원 창구를 마련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존엄한 노후는 맑은 정신으로 직접 써 내려간 자기 삶의 각본 위에서 비로소 피어난다. 임의후견은 그 각본의 기본 틀이자, 법조인이 의뢰인의 내일을 함께 설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장은영 변호사(법무법인 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