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사는 세상] “한·영 오랜 우정, 농촌 들녘에도 꽃피우길”…‘명예 안동시민’ 주한영국대사
유창한 우리말…남북 대사 모두 지내
어린 시절부터 외국문화 남다른 관심
외교관 첫 해외근무지로 한국땅 밟아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여왕 방한 때 하회마을 직접 안내 기획
“정 많은 대한민국이 제2의 고향이죠”

대한민국에서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을 마주하는 건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남과 북, 두 체제를 모두 겪은 외국인이라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57)는 우리나라와 북한 양쪽에서 대사를 지낸 보기 드문 인물이다. 서울 중구 영국대사관에서 만난 그는 능숙한 우리말로 한국을 예찬했다.
덕수궁 돌담길 곁에 자리한 대사관은 1891년 준공했다. 조선시대 건립한 외교 공관 가운데 오늘날까지 대사관으로 쓰이는 건 여기뿐이다. 건물이 생기고 한세기가 지난 1994년, 크룩스 대사가 첫 해외 근무를 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김포공항으로 들어와 택시를 타고 대사관으로 갔어요. 언덕 위로 다닥다닥 들어선 달동네가 아직도 눈앞에 선하네요. 지금의 서울과는 완전히 딴판이었죠.”
크룩스 대사는 북아일랜드 농촌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문화에 강한 호기심을 품고 바다 건너 세계를 상상하곤 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전공한 후 1992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그는 알파벳을 사용하지 않는 국가의 언어를 배워야 했다. 언어 학습능력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한 외교관에게 주는 일종의 과업이었다. 그의 마음이 향한 곳은 한국어였다. 당시 영국에서 한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 오히려 자극이 됐다. 광활한 중국 대륙과 세계 2위 경제 대국 일본 사이에 있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묘하게 끌렸다.
1994년 서울로 건너와 1998년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그는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이 나라와 사람이 좋았다. 한국인과 결혼하고 아이도 태어났다. 아내는 그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영국대사관 안내 창구에서 일하던 직원으로,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여성이었다.
1999년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한이 예정돼 있던 상황. 크룩스 대사는 이 일을 맡겠다고 상부에 요청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오롯하게 체험하고 싶다는 여왕의 뜻에 따라 그는 영연방의 수장을 경북 안동 하회마을로 안내했다.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로 여왕이 하회마을 고택에 맨발로 들어갔을 땐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왕족이 발을 드러낸 건 전대미문의 대사건이었다.
안동과 여왕의 연은 오래 이어졌다. 그는 안동농협 공판장에서 사과 경매를 지켜보고 그 자리에서 과일을 맛봤다. 2019년 안동농협은 방한 20주년을 기념해 ‘여왕의 사과 애이플’ 브랜드를 개발했고 2021년 95번째 생일 기념 선물로 버킹엄궁에 보냈다. 이듬해 세상을 떠났을 땐 안동 봉정사에서 49재를 치렀다. 크룩스 대사도 절을 찾아 애도를 표했다.
그는 2018년 12월 주북한대사가 됐다. 3년 근무였으나 코로나19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며 중간에 런던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2022년 3월 주한대사로 임명되며 다시 한반도 땅을 밟았다.
“2024년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던 무명용사 네명의 신원을 확인해 헌정식을 치른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영국은 한국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8만여명을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그 희생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양국이 오래도록 우정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그는 양국 협력이 농업분야로까지 확대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애그테크(Ag-Tech·첨단농업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농가소득 증대와 환경보호, 식량안보 강화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으려 고군분투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같은 과제를 안고 있는 만큼 인공지능(AI)·로봇공학·수직농장 부문에서 손잡으면 상승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룩스 대사가 농업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엔 한식 애호가라는 이유도 한몫한다. 특히 불고기·소갈비·돼지갈비·닭갈비 같은 육류 요리를 좋아한다. 북한에선 타조·토끼·염소로 만든 이색 불고기가 인상 깊었단다.
“대한민국은 제2의 고향이죠. 지난해 명예 안동 시민이 되기도 했어요. 한국인은 정(情)을 넘치게 주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정말 좋아요. 한국을 가장 사랑한 대사로 한국인의 기억 속에 오래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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