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철제 책상 왜 쓰나, 목재 규격 제품을 양산하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사장단 회의록 최초 공개

'검소'. 현대건설 사훈이다. 정주영 회장이 직접 지었다. 정 회장에게 원가 절감은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기술적 방편이 아니었다. 몸에 밴 근검절약에서 비롯한 경영 철학이었다. 사소한 낭비도 허용하지 않는 검약 정신은 생산 공정과 사무 환경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는 동력이 됐다. 법률신문이 단독 입수해 공개하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사장단 회의록>에는 정 회장의 철학이 투영된 구체적인 원가 절감 방안이 담겨 있다.
목재가 철제보다 싸고
만드는 공정도 쉽고
시설비는 3분의 1이다
현대는 창립 이래 연평균 35%
부진해도 25%는 성장했는데
1984년에는 이익 늘지 않았다
수익은 대외 요인뿐 아니라
내부 관리로도 올릴 수 있다
원가를 절감해야 하는 이유다
"현대종합목재는 확인 안 해봤어요? 새 건물을 지으면 따라가서 납품할 게 있나 보고, 협력하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현대전자에서는 아무런 추진이 안 됐더군요."
1984년 7월 9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장단 회의장. 정주영 회장이 입을 열었다.
이틀 전, 주말에 정 회장은 현대전자 신축 건물을 둘러봤다. 현대전자는 외부에서 철제 사무용 책상을 사들였다.
"같은 값이면 철제보다 나무 책상이 더 고급스럽습니다. 그렇게 공급하자고 했는데 왜 실행 안 하셨어요? 현대전자와 현대종합목재는 시말서를 제출하세요."
정 회장은 나무 책상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라고 했다. "책상 하나에 들어가는 원자재는 철판보다 나무가 더 쌉니다. 만드는 공정도 나무가 훨씬 쉽죠? 비쌀 이유가 없어요. 현대종합목재는 일반 상품을 규격화하고, 사내에 규격품을 공급하세요. 사원용, 과장급, 관리자용 책상을 일정하게 양산해서 공급하세요."
책상 문제는 4개월 후 다시 거론됐다. 11월 26일 사장단 회의에서 정 회장이 말했다. "책상을 양산 체제로 바꾸세요. 목재가 철제보다 싸고, 생산 능률은 같고, 시설비는 3분의 1밖에 안 듭니다."
책상 하나에도 원가를 따진 정 회장이 유류, 전기, 물 등을 방만하게 쓰도록 놔둘 리 없었다. 1984년 9월 17일 사장단 회의.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에너지 절감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정 회장은 만족하지 못했다. 실적이 떨어지는 계열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감이 가장 안 된 회사가 인천제철이던데 이유가 뭡니까?"
"시설 보완을 하느라 어려웠습니다." 보고자가 대답했다. 정 회장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시설 보완 중이라도 절감은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
대한알루미늄의 부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보고자가 기름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정 회장은 수긍하지 않았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는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현장에 가면 구경만 하지 말고, 반드시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하세요."
정 회장은 각오를 새롭게 다지라고 말했다. 1984년 11월 19일 사장단 회의. "수출 계획만 세워놓고, 원가 절감을 위한 실질적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계획은 항상 미달됩니다. 조선, 자동차, 건설 모두 더 줄일 여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83년에 아파트를 1평(3.3㎡)당 얼마에 지었다면 원가를 철저히 따져보고 줄일 부분은 줄여야 합니다."
해법도 제안했다. "공장 책임자들이 돌아가면서 세미나라도 열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재 문제든 절감 사례든 서로 나눠보면 장점은 배우고, 부족한 점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정 회장은 왜 틈만 나면 원가 절감을 강조했을까. 1984년 12월 17일 사장단 회의에서 이유를 말했다. "현대는 창립 이래 고용, 매출 모두 평균 35%씩 성장해 왔고, 침체된 해도 25%는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1984년에는 이익이 전혀 늘지 않았고, 매출도 전체적으로 저조했습니다. 1985년에 현대가 이익을 더 내려면 모든 제조 공장에서 원가를 절감해야 합니다. 원가를 10%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발언이 이어졌다. "10% 줄이자고 하면 실제론 7%밖에 못 줄입니다. 거기서 끝낼 수는 없어요. 반드시 2~3%씩이라도 더 줄일 수 있도록 상시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정 회장은 에너지는 물론 원자재 재고도 30%까지 줄이라고 했다. "우리가 1,000억 원의 이익을 냈다고 해도 비효율적인 자재 관리 때문에 이자만 2,000억 원을 내고 있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이자 줄이는 게 바로 원가 절감입니다."
계열사들도 정 회장의 열성에 호응했다. 1984년 12월 24일 사장단 회의. 1984년 현대그룹 전체 에너지 절감률이 9.5%를 기록해 목표를 넘었다는 보고가 나왔다. 정 회장이 말했다. "이번 성과에서 보듯 수익은 대외 요인뿐 아니라 내부 관리로도 올릴 수 있습니다."
정 회장의 원가, 특히 에너지 절감에 대한 관심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됐다. 1985년 1월 7일 사장단 회의. 정 회장이 말했다. "현대건설은 국내 현장의 에너지 절감을 실천해 주세요. 현대중공업도 현장마다 목욕탕, 세면장의 물 낭비를 줄이세요. 물을 데우는 데 쓰는 에너지를 줄일 방안도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사는 에너지 절약 지도반을 만들어서 실질적인 효과가 있도록 해 주세요."
구체적인 에너지 절감 방안 수립도 요구했다. 1985년 1월 28일 사장단 회의. 계열사들의 에너지 사용 계획을 보고받은 뒤 현대상선을 따로 언급했다. 소극적인 목표를 밝혔기 때문이었다.
정 회장: 현대상선은 에너지 절감 계획과 관련해 선박별로 일일이 점검하고, 선장과 기관장을 직접 대동해 운영 실태를 파악하세요. 1984년에 현대상선이 기름을 얼마나 소모했는지 면밀히 조사하고, 앞으로 어떻게 절감할지 방침을 세워야 합니다. 선박 운항 계획도 다시 짜세요. 다른 일은 제쳐두고 선박 운항을 직접 관리하세요. 과거에는 선장을 신뢰하고 맡겼지만, 이제는 더 치밀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선박별 일람표를 작성해 내게 보내세요.
중장비 때문에 유류를 많이 쓰는 현대건설도 언급했다. "내가 직접 전화로 연결할 수 있는 현장에는 이미 지시했습니다. 전화 연결이 안 되는 현장은 본부장들이 에너지 절감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다른 계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 사 사장이나 담당 임원, 간부들이 소신 있게 접근해야 합니다. 책임 의식이 부족한 회사가 있습니다."
1984~1985년 한국은 고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기업들에 녹록한 환경은 아니었다. 1985년 2월 25일 사장단 회의. 정 회장은 위기를 느꼈다. 유럽 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절하하는 바람에 현대그룹의 수출 경쟁력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정 회장은 구두쇠 작전을 주문했다.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까지 아끼세요. 섭외 비용도 과거보다 절약할 수 있는지 살피고, 해외여행 비용 역시 줄일 수 있는지 재검토해야 합니다."
이자 부담이 큰 사채도 경계했다. "무분별하게 자금을 조달하면 안 됩니다.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