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yter] 중국에서 집행되지 않는 한국 판결

손덕중 법무법인 지평 상해사무소 지사장·변호사 2026. 4.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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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소재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가장 익숙하게 선택되는 분쟁해결 조항 중 하나가 '한국 법원 전속관할'이다. 익숙한 법정, 한국어 절차, 신뢰할 수 있는 사법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당연해 보이는 선택이지만, 이 조항이 실무상 얼마나 치명적인 함정이 될 수 있는지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 법원에서 어렵게 승소 판결을 받아낸다 하더라도, 채무자의 주된 재산이 중국에 소재한다면 그 판결을 중국 법원에서 강제집행하는 것은 오랫동안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양국 간 사법공조의 구조적 공백에 있다. 한중 양국은 2003년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민사 및 상사사법공조조약'을 체결하여 2005년 4월 이를 발효시켰으나, 해당 조약은 문서송달과 증거조사만을 규정할 뿐 판결의 상호 승인·집행에 관하여는 아무런 근거도 마련하지 않았다. 중재판정의 경우 양국 모두 뉴욕협약 가맹국이므로 국경 간 집행이 사실상 담보되지만, 법원 판결은 이에 대응하는 다자조약이 존재하지 않아 공백 상태에 방치되어 왔다. 결국 중국 민사소송법 제299조에 따라 양자조약·다자조약·호혜관계 중 어느 하나의 근거가 필요한데, 조약이 없는 이상 남는 길은 호혜원칙(互惠原)뿐이었다.

문제는 중국 법원이 오랫동안 호혜원칙을 극도로 엄격하게 해석해 왔다는 점이다. 이른바 '사실적 호혜(事實的互惠)' 기준, 즉 한국 법원이 이미 중국 판결을 승인·집행한 선례가 축적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호혜관계가 성립한다는 입장이었다. 한국 법원은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부터 중국 판결 승인 사례를 축적해 왔음에도, 중국 측이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불분명한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2019년 이전까지 중국 법원이 한국 판결을 승인·집행한 사례는 사실상 전무하였다. 

두 차례의 돌파구
이러한 상황에 의미 있는 균열을 낸 것이 2019년 3월 청도 중급인민법원의 (2018)02外6号 결정이다. 동 법원은 수원지방법원의 금전지급 판결을 호혜원칙에 기하여 최초로 승인·집행함으로써, 양국 법원 간 사실상의 호혜관계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그로부터 약 3년 뒤,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에 걸쳐 또 하나의 결정적 전기가 마련되었다. 북경시 제4중급인민법원이 한국 대법원의 상표권 등록취소 및 손해배상 판결을 승인·집행한 것이다. 북경시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한국 민상사 판결 승인·집행 사례일 뿐 아니라, 중국 전국적으로도 지식재산권의 등록 변경을 집행 대상으로 한 최초의 외국판결 사법공조 사례였다. 더욱이 중국 국가지식재산권국 상표국이 실제로 협조 이행하여 상표권자를 한국 원고 회사 앞으로 변경등록을 완료함으로써, 사법공조의 범위가 단순한 금전채권 집행을 넘어 이른바 '행위이행'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남아 있는 리스크
그러나 이러한 선례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실무적 불확실성은 여전히 상당하다. 우선 중국은 판례법 국가가 아니어서 선행 사례가 후속 사건을 구속하지 않는다. 지역 법원별 편차가 남아 있고, 최고인민법원의 통일적 지침이 정립되기 전까지는 예측가능성이 제한적이다. 게다가 공공질서 위반, 소송절차의 적법성, 송달의 적법성 등 실체적 심사의 여지는 넓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의 상호 승인 기준은 여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 대법원은 이미 2022년 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이라 하더라도 우리 공서양속에 반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승인·집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였으나, 중국 법원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한국 기업 실무에의 시사점
이러한 구조는 계약 협상 실무에 분명한 과제를 던진다. 상대방의 주된 재산이 중국 내에 소재할 가능성이 높다면, 한국 법원 전속관할 조항은 집행 단계에서 도리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뉴욕협약 체계를 통해 중국 내 강제집행이 가능한 대한상사중재원 중재나 국제 중재 기관에서의 중재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고, 중국 내 가압류가 필요하다면 중국 내 소송을 분재해결 방식으로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 이미 한국 판결을 확보한 사안이라면, 최근 축적되고 있는 선례에 힘입어 중국 내 집행 신청이 과거보다 훨씬 실효성 있는 선택지로 부상하였다는 점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법공조 조약의 확대 체결 필요성
그럼에도 근본적 해결을 개별 사건의 '운'에 맡길 수는 없는 상황이다. 양자조약 차원의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2003년 조약을 개정하거나 별도 의정서를 체결하여 판결의 상호 승인·집행을 조약의 적용 범위 안으로 편입시키는 방안, 또는 중국이 가입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 온 '국제민상사판결의 승인·집행에 관한 헤이그협약' 논의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이 모두 열려 있다. 한중 간 경제교류의 규모와 분쟁의 빈도에 비추어 볼 때, 양자협정 확대 체결 논의는 이미 늦은 감이 있다.

지식재산권 영역에서 의미 있는 돌파구가 마련된 지금이야말로 그 성과를 제도적 틀로 공고히 할 적기이다. 한국 기업이 한국 법원의 판결을 들고 중국으로 건너갔을 때 더 이상 집행 단계에서 멈춰 서지 않도록, 입법·외교 차원의 관심과 후속 조치가 긴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덕중 법무법인 지평 상해사무소 지사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