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마디] 피해자가 정식재판청구 못 하는 나라

조원익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2026. 4.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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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형사고소 했는데도
가해자에게 불합리한 약식기소
피해자는 직접 법정 진술 못해
헌재도 정식재판청구권 부정
한국은 피해자에게 ‘이상한 나라’

오랜 기간 연인관계에서 폭행당한 피해자가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교제하던 도중에 점점 약한 폭행이 이어지고, 점점 폭행이 심해지더니 상해에 이르게 되었다. 피해자는 상해를 당한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했고, 그제야 가해자가 '다시는 그렇지 않겠다면서' 용서를 구하고 합의해 달라고 간청했다. 피해자는 그런 가해자가 미웠지만, 사랑한다고 믿었고 합의서를 써줘서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합의서를 수사기관에 제출한 이후 검사는 가해자를 고작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했다. 그 사이 가해자는 떠났고 피해자는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가해자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에 합의서를 써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에게 가했던 폭력으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써준 합의서 때문에 벌금형으로 끝나는 것이 억울해서 정식재판을 받아 판사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행 형사소송법은 이런 피해자의 목소리가 판사에게 전달될 방법이 없다(이 사례는 필자가 2025년에 직접 수행했던 사례를 가공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제5항은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라면서,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은 범죄로 인한 피해자가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신이 입은 피해의 내용과 사건에 관하여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 이는 피해자 등에 의한 사인소추를 전면 배제하고 형사소추권을 검사에게 독점시키고 있는 현행 기소독점주의의 형사소송체계 아래에서 형사피해자로 하여금 당해 사건의 형사재판절차에 참여하여 증언하는 이외에 형사사건에 관한 의견진술을 할 수 있는 청문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형사사법의 절차적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것'이라고 새기고 있다(헌법재판소 2003. 9. 25.자 2002헌마533 전원합의체 결정).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피해자등의 진술권) 제1항 본문은 '법원은 범죄로 인한 피해자등의 신청이 있는 때에는 그 피해자등을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한다.'라고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453조(정식재판 청구) 제1항은 '검사 또는 피고인은 약식명령의 고지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의 청구를 할 수 있다'라고만 규정하여 형사피해자가 정식재판청구를 할 청구권은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고, 실무에서는 '형사피해자의 정식재판청구권은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형사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판정에서의 진술기회 없이 재판절차가 종료하게 되므로, 형사피해자에게도 정식재판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라면서도, '형사피해자에게 정식재판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자칫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실현되어야 할 형벌권을 피해자의 사적 응보관념에 의존하게 만들어 형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실체적 진실의 발견보다는 형사피해자의 책임 아래 형사소송이 좌우되게 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신속한 재판을 이념으로 하는 형사소송체계와도 불일치할 우려가 있고, 남소로 인한 법원의 업무량 폭증으로 본래 약식절차를 도입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였던 신속한 재판과 사법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한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이라는 목적을 저해할 위험도 있다'면서, '약식절차에서 형사피해자는 공판정에서 진술할 기회를 가질 수 없으나, 수사기관에서 한 형사피해자의 진술조서가 형사기록에 편철되어 오는 것이 보통이고,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도 피해자는 자신의 진술내용을 기재한 진술서나 탄원서 등을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형사피해자에게 정식재판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헌법상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헌법재판소 2019. 9. 26. 선고 2018헌마1015 전원재판부 결정).

그러나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형사사법의 편의성에 치중한 나머지, 헌법이 부여한 피해자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우선,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조서'나 '간접적인 탄원서 제출'이 헌법상 재판절차 진술권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은 위험하다. 형사피해자의 진술권은 단순히 '의견을 전달하는 통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관 면전에서 직접 피해의 실상을 현출함으로써 법관의 양형 판단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절차적 참여'를 핵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약식절차라는 이유만으로 서면 속의 문자로만 존재하는 피해자와, 공판정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의 법적 지위가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피해자의 정식재판청구는 죄의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고, 그에 상응하는 국가형벌권이 행사될 수 있도록 하여 국가의 법익수호의 책무를 완성시키는 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소기관인 검사가 자의적으로 약식기소를 한다고 한다면, 피해자는 자신의 삶을 파괴한 범죄가 법정 한 번 서지 못한 채 소액의 벌금형으로 매듭지어지는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 현 제도의 약점이다. 이는 국가 형벌권의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피해자의 눈물을 외면함으로써 사법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는다.

나아가 '업무량 폭증'과 '사법자원의 효율성'이라는 행정 효율 논리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다. 신속한 재판은 피고인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권리이지만, 그 신속함이 피해자의 재판참여의 지위를 희생시킨 결과라면 이는 '정당한 재판'이라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국가의 형벌권 행사가 공익의 실현이지 사적 복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훼손된 법 감정의 회복 역시 국가 형벌권 행사에서 실현되어야 할 공익이 아닌가?

또한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침해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전면적 금지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기본권 제한을 심사해 왔는데, 엄연히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이라는 기본권이 있고, 형사소송법에서도 피해자의 진술권이 인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식기소된 사안에 대해서 피해자가 정식재판청구의 길이 완전히 막혀있다는 것은 모순이고, 과잉금지원칙의 위반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모든 약식사건이 아닌,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와 법원의 엄격한 요건 심사를 거친 경우에 한하여 정식재판청구권을 허용한다면, 헌법재판소가 우려하는 남소의 위험은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정식재판청구가 불가능한 현 제도에 대하여 합헌을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사례에서, 피해자는 약식기소된 법원에 형사소송법 제450조에서 법관이 약식명령으로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읍소하며, 정식재판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했었다. 그러나 법관은 그저 가해자에 대한 약식기소에 대한 약식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답하며 피해자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여기서 피해자가 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 보았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결국 형사피해자를 형사 사건의 '제3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하는 한, 대한민국은 피해자에게 여전히 '이상한 나라'일 수밖에 없다. 형사소송법의 개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시점에서, 지금이라도 정식재판청구에 관한 형사소송법의 개정을 통해 형사피해자가 정식재판청구를 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 헌법이 선언한 형사피해자의 재판진술권을 보장하는 길이고, 피해자의 눈물에 대한 답변이 될 것이다.

조원익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