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강경론자 빅터 차조차… “北비핵화, 달성 어려운 목표 됐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6. 4. 29.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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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협상 관여한 최고 한반도 전문가
“비핵화 구호로 아무 성과 없었다“
‘진실의 순간’ 마주하는 북핵 문제
‘구성’ 논란엔 “사실 바로 잡은 것일 뿐”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28일 워싱턴 DC의 CSIS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28일 “북한 비핵화는 단시일 내 달성이 어려운 목표가 됐다”며 “미국은 북한과의 ‘차가운 평화(cold peace)’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차 석좌는 이날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열전(hot war)을 피하는 최선의 전략은 냉전(cold war)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부시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장으로 대북(對北) 협상에 관여한 차 석좌는 “빅터 차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워싱턴 DC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다. 지난 20년 넘게 대북 강경론자로 분류됐는데, 최근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그간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며 ‘핵 보유’ 현실을 인정하고 군축·핵무기 비확산을 위한 미·북 대화를 시작하는 방향으로 대북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석좌가 이런 인식 변화에 이른 것은 지난 30년 동안 점증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북한을 ‘핵 보유 세력(nuclear power)’이라 부르는 것과 맞물려 현재 미 조야(朝野)에는 북한 비핵화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차 석좌는 “대다수 미 정보기관은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우리의 요격 미사일 숫자를 능가하는 핵·미사일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며 “북한이 계속 핵 능력을 증강하는 동안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비핵화 구호에만 집중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좋은 방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우크라이나와 중동 두 개의 전장(戰場)에 관여하고 있는 미국이 “국가 안보 관점에서 너무 많은 적(敵)을 상대하고 있다”며 “그래서 이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도 했다.

차 석좌는 자신의 포린 어페어스 기고 관련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기사를 쓸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며 “북한에 대해 강경파로 알려져 있지만, 나 자신을 항상 실용주의자라 생각해 왔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취해 온 어떤 접근 방식도 성공할 것으로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전 세계에 걸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살펴보면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너무 많은 적대국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군사적 의미가 아니라 외교적 의미에서 적의 숫자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북한은 러시아·중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단순히 북한 비핵화만을 요구하면 결코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미국 방문 당시 워싱턴 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존 햄리 회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 석좌는 이런 주장이 북핵을 사실상 용인하자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인식에 대해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마냥 기다리는 것이 해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비핵화가 언제나 중요하고 우리가 계속 추구해야 할 목표”라며 “협상을 오직 비핵화 문제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차 석좌는 이런 전략 조정 주장과 함께 억지력, 방어 체계 강화는 필수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미·일 3국 안보 협력 강화를 위한 일본의 해상 이지스 플랫폼과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간 원활한 연동, 저고도 순항미사일·드론 동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 더 많은 요격 미사일 공동 생산 등이 필요하다고 차 석좌는 설명했다. 한·미·일이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을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집단 방위’를 선언하는 것도 이상적인 시나리오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다만 차 석좌는 유사시 북핵 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킬체인(Kill Chain)’에 대해 “북한의 핵무기 발사를 초래할 수 있어 (한국은) 킬체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킬체인은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과 함께 한국군의 3축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차 석좌는 트럼프가 어떤 정책 관례도 믿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지도자고, 이재명 대통령 역시 전임과 달리 한국 없는 미·북 대화에도 열려 있어 자신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정치적으로 실현할 수도 있는 시점에 와 있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 인사들이 북한에 대해 전혀 얘기하려 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이재명 정부는 이 전략에 동의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북한의 경우 제재 완화,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시작으로 하는 미·북 관계 정상화 같은 ‘당근’을 더 이상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겠지만 “북한은 언제나 미국과 군축을 논의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한편 차 석좌는 정동영 장관이 CSIS 보고서 등을 토대로 북한의 무기급 우라늄 농축 시설이 ‘구성’에 있다고 언급했다는 통일부 주장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아는 정 장관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비칠 것임을 알고 있었다”면서도 “우리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나는 장관이나 통일부가 CSIS 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은 것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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