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한 방울 안 나는데 '쓰봉' 왜 석유로 만드나?"... 전국서 주문 쇄도한 공장
'재생 원료' 봉투 생산 비중 6%에 그쳐
인테크, '100% 폐비닐' 재생 봉투 특허
"기술 전수로 자원 순환 체계 구축 앞장"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한 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봉투를 굳이 비싼 석유 원료로 만들 필요가 있나요?”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포장재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 위기에도 나프타 없이 잘 돌아가는 비닐 생산업체가 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있는 재생 원료 종량제 봉투 생산 업체인 인테크.
지난 21일 공장에서 만난 이영상(70) 인테크 대표는 “비싼 나프타를 들여와서 쓰레기봉투로 만드는 건 국가적 낭비”라며 “전국에서 쓰는 1년 치 종량제 봉투를 나프타에서 추출한 원료로 생산하면 약 750억 원이 들지만, 재생 원료로 대체하면 30%가량 저렴한 520억 원으로 줄일 수 있다”고 장담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일반용 종량제 봉투는 14억4,672만 장. 이 중 재생 원료로 만든 봉투는 8,478만 장으로 5.9%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원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기반으로 한 폴리에틸렌 등으로 생산된다.
합판처럼 겹쳐 안 터지는 '쓰봉'
인테크는 비닐하우스용 농업 비닐과 철판 보호용 공업 비닐 등 네 가지 재생 원료로 종량제 봉투를 만든다. 이날 찾은 공장에서 재생 원료 펠릿(알갱이)이 투입구로 빨려 들어가자, 거대한 압출기가 낮은 굉음을 내며 펠릿을 녹였다. 이내 반투명 필름이 길게 뽑혀 나왔다. 일정한 폭으로 절단된 필름은 봉투 형태로 가공돼 완성된다.
이 대표는 갓 뽑아져 나온 봉투를 양손으로 힘껏 잡아당기며 “재생 원료는 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중요한 건 원료 자체가 아니라 제각각인 물성을 잘 배합해 안정화하는 가공 기술”이라며 “종량제 봉투에 가장 많이 쓰이는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은 단단한 대신 잘 찢어지는 특성이 있는데, 우리는 재생 원료로도 HDPE보다 비싼 선형저밀도 폴리에틸렌(LLDPE)의 질긴 성질을 구현해 ‘봉투 터짐’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랑했다.


어린 시절 마산 한일합섬 등에서 비닐을 수집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비닐 산업에 자연스럽게 발을 들인 이 대표는 1982년 비닐 생산 공장을 설립한 이후 줄곧 재생 원료 활용에 관심을 가졌다. 2007년부터는 재생 원료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렸고, 2015년에는 100% 폐비닐만으로도 신 재 수준의 강도를 구현한 종량제 봉투를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현재 국내 122개 종량제 봉투 제작 업체 가운데 100% 재생 원료만 사용하는 곳은 인테크가 유일하다.
인테크가 순수 재생 원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장 강도(당기는 힘을 견디는 정도)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은 봉투 안팎의 필름을 다르게 쌓는 ‘이중 공압출’ 방식에 있다. 마치 합판을 겹쳐 강도를 높이듯 안쪽에는 탄성이 뛰어난 재생 원료를 배치하고 겉면에는 인쇄와 마찰에 강한 소재를 입혀 두 겹의 필름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구조다. 한쪽 면에 미세한 흠집이 생기더라도 다른 층이 격자 구조처럼 단단히 버텨주기 때문에 봉투가 쉽게 찢어지거나 터지지 않는다.
나프타 대란에 주문 쇄도… 기후부와 '기술 전수'
독보적인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벽은 높았다. 재생 원료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지역 업체 우선 공급 관행 등 기존 조달 체계 탓이다. 실제 전국 226개 시·군·구 중 인테크가 봉투를 납품하는 곳은 서울 영등포구와 경남 함안군·의령군, 충북 제천시·보은군·괴산군 등 9개 지자체에 불과하다.
상황이 반전된 건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나프타 공급망이 흔들리면서부터다. 원료 수급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나프타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재생 원료가 대안으로 급부상하면서 정부와 지자체들이 앞다퉈 인테크를 찾고 있다. 이 대표는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50여 곳에서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면서 “전 직원 8명이 24시간 2교대로 쉴 새 없이 기계를 돌려도 20리터 기준 하루 20만 장인 생산 한계를 넘어선 상태”라고 말했다.

쏟아지는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이 대표가 선택한 길은 '독점'이 아닌 '상생'이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그는 재생 원료 배합 비율부터 전용 설비 노하우까지 올해 안에 다른 업체에 모두 전수할 계획이다. 정부도 재생 원료 전용 설비 교체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138억 원을 긴급 편성했다.
이 대표는 “이번 나프타 대란이 우리 사회가 자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전국 어디서든 버려진 폐비닐이 다시 종량제 봉투로 돌아오는 완벽한 ‘자원 순환 고리’가 완성될 때까지 기술 전수와 연구를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창원= 글·사진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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