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술 5년 뒤 중국 다 쫓아온다… 슈퍼 사이클 안주 말고 체질 개선을"
"中 반도체 '차보즈' 목록에 빈칸 드물어
기술 우회로 파괴적 혁신 가능성 있지만
권위주의 체제는 장기적 한계 드러낼 것
우리가 잘해서 잘나간다는 생각은 착시
공정 혁신 투자, 선진적 보상제 도입하고
스타트업·소부장 키울 공공 파운드리를"

‘중국의 삼성이 아니라 한국의 화웨이?'
반도체 기정학(技政學)을 연구해온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중국 반도체 기술의 부상을 다룬 신간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에서 도발적인 질문으로 포문을 연다. 화웨이가 '중국의 삼성'이라 불리며 한국을 추격해왔지만, 이젠 언제든지 반대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인공지능(AI) 기술 전반을 내재화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역시 배터리 기술처럼 추격당할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 기업들의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역전 경고는 기우라 여겨질 수 있다. 더욱이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50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2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난 권 교수는 그러나 한국 메모리 기업들이 역대 최대 실적을 누리는 지금이야말로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시기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따른 호황이 '우리가 잘해서 잘나간다'는 착시와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격차를 벌리기 위한 전략으로 권 교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모험적 투자"를 주문했다. 메모리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이 호황을 기회로 보고 AI 컴퓨팅 주도권을 메모리로 가져오기 위한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갈등 역시 차세대 반도체 산업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라며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도입을 검토하는 등 선진화한 보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적절한 시기에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혁신을 한 걸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AI 발전이라는 환경 요인이 없었다면 최근의 실적은 불가능했다"며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여 년 전 일본 반도체 산업에서도 ‘한국의 부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현실을 무시한 일본 기업들은 정상 자리를 뺏기고 회복 기회조차 놓쳤다"며 일본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 수준은 현재 어느 정도인가.
“범용 반도체 기술은 거의 다 갖췄다. 차량·국방 등 내수 시장에 필요한 건 직접 만들수 있는 수준이다. 설계나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선 한국보다 더 앞서가는 측면도 있다. 미국 제재에 맞선 기술 자급 노력, 거대한 내수시장 덕에 성숙의 기회가 많았다.”
-10나노1 이하 미세 공정도 따라잡힐 상황인가.
“향후 5~10년 내에 D램과 낸드플래시 등 주요 제품에서 상당 부분 추격하고 핵심 기술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 미세 공정의 경우 마지막 병목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기술 확보까지 15년은 걸릴 것이다. EUV를 만드는 곳은 네덜란드 ASML이 유일한데, 들어가는 부품만 10만 개, 공급 업체는 5,000개에 이른다. 이 생태계를 관리하는 게 ASML의 차별점이고, 중국이 따라가기 어렵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의 ‘목을 조르는 기술’이라는 뜻의 ‘차보즈(卡脖子)’ 목록을 관리한다. 10년 전만 해도 목록의 기술 대부분을 중국이 보유하지 못했지만, 최근엔 빈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EUV가 몇 안 되는 빈칸인데, 이마저도 중국은 ‘우리 식으로 우회한다’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파괴적 혁신’이 등장해 중국에 모멘텀이 넘어가는 게 한국에는 가장 두려운 상황이다.”
-중국식 ‘톱다운 기술 발전’ 전략이 앞으로도 성공할까.
“혁신 기술 하나를 얻으려면 100만 개의 아이디어와 1만 번의 시도가 필요하다. 중국 정부가 2010년대부터 이를 보장한 것이 기술 발전의 추동력이 됐다. 과거 한국과 일본도 기술 추격에 쓴 방식이다.
권위주의 체제는 그러나 목표를 벗어난 혁신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장기적으로 중국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최근 딥시크 V4 모델이 예상보다 늦게 출시됐는데, 성능이 기대 이하인 것도 이와 관련 있어 보인다. AI 모델 강화를 위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쓰고 싶어 해도, 자국우선주의 탓에 중국 정부는 화웨이 같은 자국 기업이 개발한 AI 반도체를 쓰도록 강요 아닌 강요를 할 것이다. 현지에서도 이런 제약에 대해 고민이 시작되는 분위기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미래를 위해 어떤 혁신을 해야 하나.
“AI 추론 수요가 늘면서 맞춤형 메모리 생산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메모리 병목 현상을 줄이기 위해 '터보퀀트'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은 물론, 하드웨어 개선을 위한 여러 주문을 할 것이다. 범용 메모리 양산에 익숙했던 두 기업은 이제 공정 상당 부분을 맞춤형으로 바꾸는 모험적 투자를 해야 한다. 이 수요를 못 맞추면 대만이나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 현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다. AI 컴퓨팅 주도권을 메모리로 가져오기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기업 체질을 바꾸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숙제다. 그간 반도체 하강 국면을 함께 버텨왔던 직원들을 위해 보상을 현실화하되, 설비 투자를 위한 현금 여력도 확보해야 한다. RSU를 주되, 현금 가치보다 더 쳐주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가동되는 2030년대 중반엔 생산량은 두 배가 되고 인력도 더 많이 필요하다. 반도체에 인재를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선진화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뭘 해야 하나.
“AI 생태계를 갖추려면 설계 스타트업과 소부장 기업도 키워야 한다. 이들이 제품을 검증하고 실적(트랙 레코드)을 쌓을 수 있는 '공공 파운드리'가 필요하다. 제품 하나 검증에 1년 이상이 필요한데, 지금 같은 슈퍼 사이클일 때 수익 감소 리스크를 안고 스타트업이나 소부장 기업에 생산 라인을 제공할 대기업은 없다. 제품 실증 자체가 어렵다보니 차라리 중국 제조사에서 트랙 레코드를 쌓는다는 기업도 있다. 이는 기술을 내주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가 공공 상생 파운드리 구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40나노급에 그친다. 국산 AI 반도체를 키우려면 공공 파운드리가 10나노급 설비를 갖추도록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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