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나 사장에게 필요한 것들 [뉴스룸에서]

이훈성 2026. 4. 2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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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음악가가 예술경영인으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례를 찾다가 베벌리 실스(1929~2007)에 닿았다.

미국 뉴욕 태생으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초고음·초절기교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활약하며 마리아 칼라스, 조앤 서덜랜드와 함께 동시대 최고 디바로 각광받았던 실스는 은퇴 직전 해인 1979년 뉴욕시티오페라단(NYCO) 총감독을 맡았다.

NYCO는 실스가 1955년 데뷔해 1980년 고별 갈라 공연을 열기까지 내내 무대를 지킨 예술적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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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 대한 헌신, 책임감·의지로
오페라단 살린 스타 성악가 실스
예술의전당 경영에 귀감 되기를
장한나 예술의전당 사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으로 첫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타 음악가가 예술경영인으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례를 찾다가 베벌리 실스(1929~2007)에 닿았다. 미국 뉴욕 태생으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초고음·초절기교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활약하며 마리아 칼라스, 조앤 서덜랜드와 함께 동시대 최고 디바로 각광받았던 실스는 은퇴 직전 해인 1979년 뉴욕시티오페라단(NYCO) 총감독을 맡았다.

NYCO는 실스가 1955년 데뷔해 1980년 고별 갈라 공연을 열기까지 내내 무대를 지킨 예술적 고향이었다. 같은 뉴욕에 있는 굴지의 오페라단, 메트로폴리탄오페라(메트)에 가린 2인자였고 재정난으로 종종 파산 위기에 내몰리는 단체였지만 실스의 충성심은 굳건했다. 그가 세계 오페라 중심 무대인 이탈리아 라 스칼라와 영국 코번트가든에 데뷔한 해가 1969년과 1970년. '줄리오 체사레'의 클레오파트라(1966), '마농'의 타이틀롤(1968)을 열연하며 NYCO를 흥행 반석에 올린 이후로, 실스 개인 기량은 하향세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실스 부고 기사에 이렇게 썼다. "진취적이지만 2류였던 오페라단에 대한 헌신이 실스가 더 일찍 성공하는 걸 막았을지도 모른다."

총감독직도 영예와 거리가 멀었다. "나는 오페라단 재정이 그렇게 나쁜지 전혀 몰랐다. 집에 가져온 재무 기록을 검토한 남편은 '당신들 파산이야'라고 말했다."(국내 미출간 자서전) 언론인 남편은 400만 달러 빚더미에 앉은 오페라단에서 당장 사임하라고 다그쳤지만 실스는 단호했다. "내가 벌어올 거야." 이후 10년 재임기는 악착같은 기금 모금의 시간이었다.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어떤 때는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우리 회사를 도와야 한다고." 창고 화재로 무대 의상 1만 벌이 소실되는 재앙에도 꺾이지 않았다. 그렇게, 많을 땐 한 해 1,000만 달러 가까이 모았다. 1989년 실스가 총감독에서 물러날 때 NYCO의 연간 예산은 900만 달러에서 2,600만 달러로 늘었고, 재정수지는 300만 달러 흑자로 전환했다.

실스의 경영 수완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1983년 NYCO는 마스네의 '상드리용'을 무대에 올리면서 미국 오페라 공연 최초로 자막을 설치했다. 무대 상단 스크린에 영사기로 노래 가사의 영어 번역문을 비추는 슈퍼타이틀 방식이었다. 중국에 갔다가 공연 무대에서 자막을 쓰는 걸 본 실스가 당장 오페라단에 적용한 것. 비평가들은 이탈리아어 등 원어 그대로 감상하는 고급예술 오페라의 격을 떨어뜨린다며 기함을 했지만, NYCO는 그해 좌석판매율(86%)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고 다른 오페라 극장들도 곧 뒤를 따랐다. 티켓 가격을 20% 인하한 실스의 파격 조치도 오페라 관객의 저변을 넓히며 재정 개선 효과를 냈다.

강한 소속감과 헌신, 불굴의 의지, 대중과의 호흡. 실스가 예술경영자로 성공한 요인들을 뒷받침한 건 넉넉한 성품이었다. 흙수저 출신에 청각장애 딸과 자폐증 아들을 건사해야 했고 자궁암의 시련을 겪었지만, "인간이 계획하면 신은 웃는다"는 낙천주의를 두르고 삶의 무대를 누볐다. 동료 성악가 수잔 마시는 "실스의 최대 장점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라며 "모든 사람을 오래전 헤어진 친구처럼 반갑게 맞았고, 특유의 명랑 쾌활한 존재감을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세계적 첼리스트와 지휘자 경력을 잠시 내려놓고, 1979년의 NYCO와 여러모로 닮은 데가 있는 2026년 예술의전당에 부임한 장한나 사장에게도 필요한 덕목들인 것 같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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