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서편제’ 이자람 “송화처럼 인생 고비마다 ‘완창’으로 이정표”

이태훈 기자 2026. 4. 2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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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초연부터 30일 개막하는 여섯 번째 시즌까지, 30대 초입에 처음 들어섰던 ‘서편제’의 소릿길에서 이자람도 어느덧 40대 후반에 이르렀다. 그는 “서편제는 소리꾼 이자람을 뮤지컬과 이어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했다. /PAGE1

“살다 보면 어리석고 못난 사람, 미친 사람을 안 만날 수 없어요. ‘송화’라는 소리꾼은 그래도 뭐가 닥쳐오든 개의치 않고 자신이 원하는 단 하나를 위해 힘 있게 걸어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달 30일 개막을 앞둔 뮤지컬 ‘서편제’에서 다시 주인공 ‘송화’를 맡은 이자람(46)을 만났을 때, 그는 “송화는 흔히 생각하듯 비극적 운명에 수동적으로 휩쓸린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소리에 미친 아비 ‘유봉’이 온 기운이 소리로만 쏠리게 하겠다고 멀쩡한 딸 눈에 청강수(염산)를 부어 눈을 멀게 하는데, 피해자가 아니라니. “송화의 인생에 대단한 어리석음과 무지가 덮쳐오죠. 하지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있는가’ 싶은 억울함 한 번 당하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어요.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씹어서 뱉어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느냐일 겁니다. 송화한텐 눈 머는 것, 변비 한 번 걸리듯 별 일 아니에요. 소리 통해 철이 들고, 소리 통해 삶을 배우고, 소리 통해 제 아비를 측은히 여기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창작 뮤지컬 '서편제' 포스터. /PAGE1
2026 뮤지컬 '서편제'에서 주인공 '송화'를 맡은 소리꾼 배우 이자람. /PAGE1

마치 소리를 방편으로 깨달음에 이른 부처같다고 했더니 이자람이 “맞다. 송화는 소리로 득도한 사람”이라며 웃었다. “그래서 ‘한(恨)’은 송화의 소리에 담긴 수많은 것들 중 하나일 뿐이에요. 강도 산도 담고, 슬픈 것도 웃긴 것도 담고, 달도 우주도 담은 소리에 ‘쾌(快)’도 ‘한’도 담는 것 뿐입니다. 저는 공연 막바지에 ‘심청가’를 하는 송화가 누구보다 자유로워보이길 바랍니다.”

자유롭기로 치자면 이자람도 만만치 않다. 인디밴드, 정극 연기, 뮤지컬과 판소리까지, 어느 한 모습으로 규정되지 않는 전방위 예술가. 그는 “술도 못하고 말도 서툴고 하염없이 진지하기만 해서 늘 심심하다. 남보다 진짜 운이 좋았던 거라면 호기심이 줄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궁금해서 해 본 게 다 일이 됐어요. 호기심이 죽지 않도록, 화초를 기르는 마음으로 일상을 돌보려 노력합니다.”

그런 그에게도 ‘서편제’는 특별하다. 2010년 초연부터 여섯 번째인 이번 공연까지 한 시즌도 빠짐없이 ‘서편제’ 무대에 섰다. 30대 초입에 따라가기 시작한 아비 유봉과 눈 먼 소리꾼 딸 송화의 소릿길에서, 그는 어느새 40대 후반에 다다랐다. 대극장 뮤지컬 무대는 여전히 “호화로운 남의 집에 놀러 온 듯” 하지만, ‘서편제’는 “소리꾼 이자람을 뮤지컬과 이어준 고마운 작품이자, 판소리와 21세기 대한민국 관객들 사이에 다리 놓아준 작품”이다.

2026 뮤지컬 '서편제'에서 주인공 '송화'를 맡은 소리꾼 배우 이자람. /PAGE1

‘서편제’의 가장 유명한 노래는 ‘살다 보면, 살아진다’로 이어지는 ‘살다 보면’이다. 공연권 문제로 다들 마지막이 될 거라 생각했던 2022년 공연 때 “이제 ‘살다 보면’ 부를 날도 며칠 안 남았다”고 했었다. 그는 “이제 딱 22번 남았다”며 웃었다. 뮤지컬 배우 차지연, 이봄소리, 시은까지 ‘송화’만 4인 캐스팅인 이번 시즌 공연에서 그에게 주어진 공연 회차가 22회다. “죽은 연인이 심폐 소생해 되살아온 느낌이랄까요. 공연과 역할을 복기하고 감각을 정조준하는 데 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이번이 마지막 ‘송화’가 될 테니까.” 그는 지금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정확하게 도움닫기 발판처럼 딛고 힘찬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누가 뭐래도 이자람의 본업은 소리꾼. 그는 스무 살에 최연소로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렇게도 힘들다는 판소리 완창을 그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까지 해냈다. 무형문화유산 ‘춘향가’와 ‘적벽가’ 이수자이기도 하다. 이자람은 “어떤 명인 명창이 오셔서 ‘너, 소리나 제대로 해’ 하시더라도, 맛깔나게 제대로 된 전통 판소리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늘 준비돼 있는 게 목표”라고도 했다. “제게 판소리 완창은 인생의 길목마다 말뚝을 박고 이정표를 세우는 일 같아요. 그래야 내가 창작 판소리 할 때도 떳떳하니까요. ‘내가 지금 쓰는 게 판소리 맞나’, ‘장단을 이렇게 비틀어도 소리가 되나’, 그런 의심을 단박에 해결해 주는 것이 전통 판소리니까요.”

이자람 판소리 '눈, 눈, 눈'. /LG아트센터

올해 그에겐 멋진 일이 또 하나 생겼다. 7월 세계 최대 공연 예술 축제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공식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아비뇽 오페라극장에서 톨스토이의 소설을 바탕으로 직접 각색한 창작 판소리 ‘눈, 눈, 눈’을 공연한다. LG아트센터 서울 초연 등에서 호평받으며 매진 사례가 이어졌던 작품이다. “판소리 ‘사천가’(2015)와 ‘이방의 노래’(2016)로 아비뇽 비공식 축제 ‘오프’에 초청받아 갔었지만 공식 프로그램 초청은 처음입니다. 해외에서 판소리를 공연하면 늘 관객과 접점이 잘 만들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 공연도 잘 준비해 가려고요.”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이자람 ‘송화’의 ‘서편제’는 30일부터 7월 19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 6만~1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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